주가는 실적이 운명을 결정한다. 매스미디어에 온갖 소음이 넘쳐나도, 이익과 매출이 성장하는 기업은 제 갈 길을 간다. 실적이 좋은 기업은 들고 가고, 실적 나쁜 기업은 골라내며,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관리하면 우수한 성적표가 뒤따른다. 이렇듯 뻔한 정답지가 나와 있지만, 이를 실천하기 어렵다. 누구나 다 아는 과거 실적보다 앞으로 나올 미래 실적이 앞으로의 주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과거 실적은 얻기 쉽지만, 미래 실적은 구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투자자의 시선은 과거에 머무른다. ‘백미러를 보고 운전하지 말라’는 월가의 오래된 격언은 이런 투자자들의 경향을 빗댄 것이다.
지난 2년간의 삼성전자 흐름은 좋은 사례다. 2021년 4월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65조원 매출에 영업이익 9조3000억원을 기록했고, 당시 반도체 가격은 반도체 대란 속에 2분기에 더 오를 거란 기대가 높은 상황이었다. 실제 실적도 컨센서스보다 높은 성적을 거뒀지만, 주가는 실적 발표 당시 8만6000원 전후를 기점으로 기나긴 조정에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실적이 좋았고, 전망이 나쁘지도 않았지만, 주가는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 좋았던 과거는 이미 다 반영됐기 때문이다. 주가는 이때를 전환점으로 계단식 하락을 2022년 가을까지 이어갔다.
2023년 4월 7일, 삼성전자는 매출액 63조원, 영업이익 6000억원으로,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QoQ) 86.1%, 전년 동기 대비(YoY) 95.7% 급감한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발표 당일 최악의 실적에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종목이 모두 강세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1분기 삼성전자가 영업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오갔던 것에 비해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고, 특히 실적 발표 자료에서 메모리반도체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며, 감산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재고 레벨에 대한 우려가 큰 시점에서 감산 결정은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재고가 많으면 반도체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고가 줄기 시작해야 고객사들의 주문이 늘면서 가격 하락이 진정된다. 당장은 적자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삼성전자가 생산 조정을 시작한다는 것은 길게 보면, 재고 조정의 시기가 다가온다는 의미로 시장은 환호했다. 얼마나 멀리까지 시선을 둬야 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연내에 반도체 재고가 정점을 확인할 가능성은 분명히 커졌다. 그것만으로도 투자자는 다음 사이클을 염두에 둔 투자에 나서야 한다.
기업 실적, 올 하반기 반등 예상
컨센서스상 2023년 1분기 코스피(KOSPI) 상장사 매출액은 818조원(2.3% YoY, -8.5% QoQ), 영업이익은 40조원(-43.3% YoY, 107.3% QoQ)으로 예상된다. 2022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파르게 이익이 감소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방향성이다. 지금은 저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권 리스크가 부각되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금융위기가 아니더라도, 최근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는 경기 침체 가능성, 좋게 보더라도 수요의 둔화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코스피 상장사들은 실적의 저점 시기를 지날 수 있을까.
그 답은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2022년 12월 제로 코로나(Zero Corona·코로나19 확진자 제로 위한 봉쇄 정책)를 사실상 폐기하고, 부동산 시장 활성화 등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글로벌 유동성에서 잘 드러난다. 글로벌 유동성 증가율은 2022년 10월을 저점으로 반등 추세에 있고, 올해 1월 플러스 영역에 들어섰다. 이를 주도한 것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 정책의 당위성과 스탠스를 감안하면, 2월의 움직임은 추세적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하락으로 해석해야 한다.
유동성은 곧 수요를 나타내는데, 글로벌 수요의 프락시(Proxy·대리)로 한국의 수출을 꼽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로 돼 있다. 따라서 글로벌 유동성을 통해 한국의 수출을 가늠할 수 있고, 수출은 한국 기업의 매출을 나타낸다. 이러한 관계에서, 글로벌 유동성이 한국의 수출로 이어지는 데 3~4개월이 소요되고, 수출이 기업의 매출로 인식되는 데는 0~1개 분기 정도가 소요된다. 2022년 10월 글로벌 유동성 증가율의 저점이 2023년 1월 한국 수출 증가율 저점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고, 한국 기업의 매출 증가율 저점은 2023년 2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매출 증가율 저점이 2분기에 나타난다면, 기업의 이익은 어떻게 될까. 한국은 중간재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수출 가격이 한국의 판매 가격이고, 수입 가격이 한국의 원재료 가격이라 할 수 있다. 수출 가격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수입 가격은 비교적 명확한 흐름을 보인다. 우리나라는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원자재 가격에 의해 수입 가격이 연동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현시점에 적용하면, 2022년 6월 고점을 기록한 원자재 가격이 2022년 4분기부터 수입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하락한 수입 가격이 기업의 비용으로, 손익계산서에 확인되는 것은 1개 분기 뒤인 2023년 1분기부터다. 원자재 가격의 하락을 감안하면, 2023년 3분기부터는 기업의 비용이 전년 동기 대비 하락하며, 이익에 플러스 효과를 발생시키게 된다.
기업이 주는 힌트에 주목하자
지금은 저점을 지나는 상황에 집중하는 시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기동향지수도 2022년 하반기 마이너스(-) 100의 극단에서 벗어나 방향을 틀었다. 과거 추이로 보면, 기업의 이익수정비율(이익이 상향 조정되는 종목과 하향 조정되는 종목의 비율)도 점점 마이너스 폭을 줄여갈 것이다. 순환론적 사고에서 이익수정비율이 올라서는 구간에서 실적이 부진해도 주가 흐름은 양호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뒤가 고민이다. 당장은 앞으로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지배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주가가 조금만 올라서도 다시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유동성 증가율의 개선을 주도한 국가가 중국이라는 점에서, 개선의 폭에 대한 문제는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대중 수출 비중이 낮아지는 상황이고, 상장사 중에서 중국 수혜주라고 꼽을 수 있는 종목을 떠올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대상국이다. 또한 중국은 현재의 정책 기조가 적어도 2023년 말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개선 흐름이 2023년 말까지는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여전히 한국의 2대 수출국인 미국의 경기 불확실성 역시 개선 폭에 대한 계산을 복잡하게 만든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미국의 고용 관련 지표들이 하반기 수요 둔화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도 우려가 된다. 확실한 것은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지게 된다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더 빠르게 내려올 수 있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미 상당 폭 인상한 기준금리를 인하할 여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선호도 측면에서 ‘중립’ 정도 되는 변화다.
투자는 어렵다. 숫자 외에 사람의 감정이 개입되기에 냉철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그나마 투자자들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미래의 실적이다. 이번 실적 발표 시즌에 많은 기업은 상황을 알려줄 것이다. ‘어디에 집중 투자해 매출을 일으킬 것’ ‘비용 절감을 위해 조직을 어떻게 바꿀 것’ 등 다양한 정보 조각들을 투자자들이 해석하고, 최적의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삼성전자는 실적 시즌의 포문을 열었고, 힌트를 줬다.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고, 실적은 부진하다. 그래서 감산을 한다. 그리고 주가는 반응했다. 지난 투자시장의 역사에서 순풍이 아닌 맞바람을 헤치고 난 뒤에야 새로운 항로로 나아갔다. 어쩌면 지난 2년간의 풍랑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이제 닻을 올리고 나설 때가 되었다. 뱃머리를 돌려 나아가는 것같이, 실적 턴어라운드 기대에 힘입어 한국 증시는 한 단계 더 올라설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