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토건업자들의 환경 파괴 사업이라고 낙인이 찍혔던 4대강 사업이 한반도가 맞닥뜨린 가뭄 위기에 재조명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토해양부 장관으로 4대강 사업의 틀을 짜고 총괄 지휘한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現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은 “4대강 사업 이후 10년, 더러운 물이라고 천대받던 영산강이 지금 말라붙은 섬진강을 돕고 있다”면서 “치수(治水)는 국가 존망을 가르는 사업이라는 점을 최근 가뭄은 명확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4대강 사업이 대운하 구상의 다른 버전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4대강 사업의 모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대규모 국가 치수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대운하’ 계획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진보 정권에서 추진하려고 했던 사업을 살려 실행했다는 것이다. 가뭄 대책이 국가적 과제가 된 시기, 국가 치수 계획의 틀을 짠 정 전 장관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호남 지역 취재를 다녀왔는데 섬진강 유역의 가뭄이 심각했다. 혹자는 이를 섬진강이 4대강 사업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섬진강 수계는 우리나라 수계 중에서 1인당 이용할 수 있는 수자원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한강이 907t에 불과하지만, 섬진강은 1만4806t에 이른다. 금강이 2444t, 낙동강이 2445t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수자원이 상당히 넉넉하다. 물론 이런 격차는 수도권이나 영남·충청 지역과 비교했을 때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구상에선 섬진강은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만 들어가고 준설이나 보 설치 등의 계획은 없었다. 섬진강 수계의 용수 수요와 청정 자연환경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당시 섬진강은 용수가 충분하고, 개발보다는 보존이 필요하다고 봤던 것인가.
“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아마존 같은 ‘자연의 강’과 도시와 문명을 탄생시킨 ‘문명의 강’으로 나뉜다. 자연의 강은 방치로 보존한다면, 문명의 강은 치수로 보존해야 한다. 당시 정부는 섬진강을 문명의 강보다 자연의 강에 가깝다고 봤다.”
호남 지역을 덮친 가뭄인데, 섬진강에 비해 영산강은 수위가 꽤 높았다. 4대강 사업을 통해 확보한 수량이 어느 정도인가.
“4대강 사업을 통해 영산강에는 준설을 통해 3000만t의 물을 확보하고, 광주 승촌보, 나주 죽산보, 그리고 저수지 둑 높이기로 총 1억3600만t의 물그릇을 확보했다. 그리고 영산강은 우리나라 강 중 수질 오염이 가장 심각했다. 수량 확보와 함께 하천 수질 개선에 역점을 뒀다.”
섬진강 치수 계획은 아예 없었던 것인가.
“대규모 국책 사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지역 균형 발전이다. 전국에 골고루 혜택이 가야 한다는 원칙이 첫 번째다. 그래서 수도권의 한강, 충청의 금강, 영남의 낙동강, 호남의 영산강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다. 섬진강은 4대강 이후 사업 대상으로 봤다. 당시 정부는 4대강 사업 이후 추진해야 할 국가하천과 주요 지류 하천에 대한 치수 계획을 만들어 뒀다. 하지만 4대강 이후 프로젝트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대동맥만 깨끗하게 해두고 정맥과 지맥의 혈행 개선이 안 된 것이다. 최근 가뭄 때 같은 호남 수계에서 영산강과 달리 섬진강만 유독 가문 것은 4대강 사업 이후 프로젝트로 남겨뒀던 국가하천 관리 사업이 묻혔기 때문이라고 본다.”
홍수 예방과 가뭄 대비가 핵심이었던 사업이지만, 환경 단체에서는 물 흐름을 막아 하천 오염이 우려된다고 지적하는데.
“물은 가둬둔다고 오염되는 게 아니다. 오염 물질이 유입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관건이다. 소양강댐은 물을 29억t이나 담아두고 있지만 깨끗한 수질을 유지한다. 4대강 사업으로 단순히 물그릇만 확보한 게 아니다. 오염 물질 차단을 위한 환경 기초 시설에 들어간 재정이 무려 3조9000억원이다.”
문재인 정부 때 4대강 보를 해체하려고 하자 영산강 인근 농민들이 반대했다. 어떤 감정이 들었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4대강 사업으로 강 주변 농경지의 농업용수 확보가 용이해졌고, 이는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으로 돌아갔다. 보를 해체한다거나 개방하는 것은 농업용수 확보를 어렵게 하므로 농민들로선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을 두고 대운하 사업의 미니 버전이라는 지적이 아직도 계속된다.
“대운하를 하려면 배가 다닐 수 있게 강의 폭과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4대강은 강폭과 수심이 불규칙해 선박 운행이 불가능하다. 또 보와 교량을 그렇게 많이 설치했는데 어떻게 배가 다닐 수 있나. 사실 4대강 사업의 모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대규모 국가 치수 계획이다. 2008년 경제 위기가 닥치자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가용 재원이 30조원’이라며 ‘국토부에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국토부 캐비닛에 쌓인 서류들을 뒤적이다 김대중 정부 때 수립한 24조원, 노무현 정부 때 세운 87조원 규모의 치수 사업 계획을 발견했다. 두 정부 모두 치수 사업의 필요성은 인식했으나 재정 부담에 포기했던 것이다.”
진보 정부에서 세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계획이지만 이어간 것이라는 얘기인가.
“사계절 중 여름을 제외한 삼 계철이 가문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치수는 국가 존망을 가르는 사업이라는 점을 최근 가뭄은 명확히 보여준다. 장마철에 1년 강우량의 대부분이 쏟아지는 한반도의 기후 특성을 고려했을 때 치수 사업은 꼭 필요했다. 정비가 되지 않은 강 유역의 폐기물과 농가와 축사에서 나오는 폐수로 인한 오염 문제도 해결이 시급했다. 최근의 기후변화를 봤을 때 앞으로도 장기적인 가뭄과 장마철 집중 호우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4대강에서 연결되는 주요 하천과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방 하천을 추가로 정비하는 사업을 계획했지만, 여러 이유로 추진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물 부족 국가’라는 게 선동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의 연 강수량이 1300㎜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6~8월 우기에 대부분 내리고 다른 달은 가문 강우 집중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우기에 내리는 비를 자원으로 확보해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물론 환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4대강 사업 이후 10년, 어떻게 됐나? 더러운 물이라고 천대받던 영산강이 지금 말라붙은 섬진강을 돕고 있지 않나.”
문재인 정부 때 물관리가 환경부로 일원화되면서 수자원 관련 정부 대책이 수량보다는 수질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전에는 수자원 관리를 국토부가 하천 유역 정비를 통한 수량 확보를, 환경부가 수질 개선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모든 기능이 환경부로 이관되면서 국토부의 역할은 사라졌다. 환경부가 그동안 해온 역할을 감안하면 앞으로 수자원 관리의 정책 방향이 수량보다는 수질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환경부 공무원들이 준설이나 추가적인 댐·보 설치를 제안할 수 있을까. 조직 논리와 헤게모니를 고려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