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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출간한 ‘크래프톤 웨이’는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경전(經典)과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상황에 따라 비전이 바뀔 수 있다’ 등의 실질적인 조언도 담겨 있지만, 사실 솔직하고 담담하게 망할 뻔했던 위기의 기억을 털어놓는 이야기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과 
‘크래프톤 웨이’. 사진 크래프톤·김영사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과 ‘크래프톤 웨이’. 사진 크래프톤·김영사

모바일 글로벌 가입자 10억 명, PC용 타이틀 전 세계 7000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운 게임 ‘배틀그라운드’도 사실 오랜 기간 버티다 보니 얻어걸렸을 뿐이라는 이야기마저 진솔하게 풀어놓는다(직접적으로 ‘운빨이다’라고 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자서전이 대단한 경영 철학이나 비전이 있어서 성공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과 달리, 크래프톤은 모든 이메일함을 저자에게 건넸을 정도로 진실만을 담고자 했다.

크래프톤은 창업 이후 10년간 배고프고 힘든 길을 걸었다. 이것이 ‘크래프톤 웨이’다. 그리고 2023년 4월 현재의 크래프톤도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 지금 크래프톤이 걷는 이 길은 과연 과거에 걸었던 그 길과 같을까.

안재만 
조선비즈 증권부장
‘지금 부자들은 배당주에 
투자한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트렌드 2021(공저)’ 저자
안재만 조선비즈 증권부장
‘지금 부자들은 배당주에 투자한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트렌드 2021(공저)’ 저자

당분간 반등 이끌 재료는 없다

한 독자는 인터넷서점 사이트의 서평란에 ‘크래프톤 웨이’를 읽은 후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정말 교과서 같은 책이다. 감동했다.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과 경영진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독자는 에둘러 크래프톤의 현 상황을 비판했다. 아마 크래프톤 주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크래프톤의 ‘커리어 하이(career high·최고 기록)’는 상장 전이었다. 상장 전 300만원이 넘었던 크래프톤의 주가는 5 대 1 액면분할을 실시하고 2021년 8월 49만8000원에 상장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최고가가 58만원이다. 액면분할을 고려한 상장 전 가격이 60만원이 넘었으니, 사실상 상장 전이 최고점인 셈이다.

크래프톤 주가는 2023년 4월 현재 18만원대로 추락해 있다. 최고점에 잡은 투자자들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공모가에 들어온 투자자도 60% 넘는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수많은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크래프톤에 대해 좋은 의견을 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 말 이후 나온 크래프톤에 대한 보고서 제목은 다음과 같다. ‘아쉬운 성수기’ ‘2024년을 기다리며’ ‘모바일 매출 부진에 발목 잡혔다’ ‘재정비가 필요한 시기’ ‘늘어난 숙제’ ‘시장을 흔들 다음 게임을 기다리며’ ‘희망을 놓치다’ ‘주가 바닥은 모바일 매출 하락세가 멈출 때’ 등.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신작 ‘뉴스테이트’ ‘칼리스토프로토콜(TCP)’의 연속적인 흥행 실패로 향후 크래프톤 출시 게임에 대한 기대치 하락이 이어질 것”이라며 “기존 게임 배틀그라운드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BGMI)’의 자연적인 감소, 재개 불확실 등으로 향후 실적이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특히 이번 TCP의 흥행 부진에서 드러난 해외 개발 스튜디오(SDS)의 퀄리티 조절 실패는 앞으로 출시될 크래프톤의 게임 흥행(개발력)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며, (배틀그라운드에만 의존하는) 원(one) IP(지식재산권)로 인한 주가 할인(디스카운트)을 지속시킬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올해 이익 예상치는 계속 줄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영업이익 예상치가 1조186억원이었으나 6개월 전 8332억원, 3개월 전 7110억원, 1개월 전 6295억원, 4월 11일 기준 6288억원으로 하염 없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온통 부정적 전망이 팽배하니 주가가 힘을 받기 어려운 국면이다.

소액주주들이 답답해하는 것은 그럼에도 회사 측이 주가 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크래프톤을 제외한 게임사들은 최근 몇 년간 코인 사업에 뛰어들거나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열풍에 편승해 VR(가상현실) 게임을 만들겠다고 밝히는 등 지금 당장은 현실화 가능성이 크지 않음에도 투자자들이 좋아할 만한 뉴스를 뿌렸다. 

일례로 대형 게임사인 엔씨소프트는 2021년 11월 11일,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 대비 14.5%, 56% 감소하는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으나 실적 발표회에서 신규 사업 계획을 밝히며 주가가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당시 홍원준 엔씨소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어 내년(2022년) 중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와 블록체인을 결합한 새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크래프톤은 반대다. 올해 2월 8일 2022년도 실적 발표회에서 “올해는 기대작이 없다”고 공식화해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크래프톤은 이날 공시를 통해 양호한 지난해 4분기 실적과 자사주 취득 등 3개년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해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가, 장 마감 후 진행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는 신작이 없다고 밝히면서 주가를 주저앉혔다. 2월 9일과 10일, 11일 주가는 각각 5.73%, 2.15%, 2.77% 하락했다.

크래프톤 투자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래도 크래프톤이 가난한 시절과 다른 것은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이다. 배틀그라운드의 인기가 줄고는 있으나 그래도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신작이 없어 마케팅비를 덜 쓰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수천억원을 번다는 것은 과거와 분명 다른 점이다. 최소한 대표이사가 돈 꾸러 다니지는 않아도 되니 말이다.

크래프톤은 책에서 직원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노동자가 아니라 인재와 일한다’ 파트에 따르면, 장병규 의장은 “지식산업에서 인재는 노동 시간이 아닌 성과로 평가받으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조직 전체를 고려해야 하며, 스스로 엄격한 규율을 세울 줄 알아야 하며, 동기와 의지가 강력해야 하며, 실패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고, 협업에 특화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좋아할 얘기는 분명 아니나 ‘사장 의식’을 갖고 성과를 내면 보상은 확실히 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 크래프톤은 올해 온갖 비용을 절감하고 있으나, 인건비는 오히려 집행 규모를 늘릴 전망이다. 가장 최근 나온 다올투자증권 보고서에 의하면, 크래프톤은 지난해 인건비 지출액이 3648억원이었으나 올해는 4301억원, 내년에는 4618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인건비 증가에는 임직원 수 증가 영향도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직원들에 대한 보상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게임 업계의 관측이다. 회사 설립 초기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받은 장기근속 직원과 달리 공모가에 주식을 산 최근 입사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끊임없이 나온다.

관건은 투자자다. 장 의장은 책에서 투자자와 신뢰를 무척 강조했다. “투자는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이는 행위’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투자를 받은 사실과 투자 이후의 과정과 결과는 계속 남는다. 

투자는 믿음과 신뢰에 관한 행위이며, 협업하는 사회에서 평판과 이력을 쌓아가는 행위다. 일관된 행동, 믿음과 신뢰가 계약서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2024년, 혹은 그 이후까지 동행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과거 비상장사였을 당시엔 주식을 팔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설령 믿지 않는다고 해도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상장한 지금은 언제든지 주식을 팔고 관계를 끊을 수 있다. 투자자들의 선택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