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오피스·상업 단지 1층의 매너커피 매장(왼쪽)과 매너커피 창업자 한위룽(韓玉龍). 
사진 베이징=김남희 특파원·중국 Sohu
중국 베이징 오피스·상업 단지 1층의 매너커피 매장(왼쪽)과 매너커피 창업자 한위룽(韓玉龍). 사진 베이징=김남희 특파원·중국 Sohu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오피스·상업 단지인 왕징소호(望京SOHO) 1층 카페 매너커피(Manner Coffee). 최근 찾은 이곳은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시끌벅적했다.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 안의 매너커피(이하 매너) 미니 프로그램을 열어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먼저 주문한 41잔을 제작 중이라 16~20분 후 커피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떴다. 기다리는 동안 메이퇀 배송 기사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했다. 바리스타 4명이 음료 수십 잔을 만드느라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매너는 커피 격전지 중국에서 또 다른 창업 신화를 써가고 있는 커피 전문점이다. 2015년 상하이의 1평(3.3㎡)도 안 되는 2㎡ 크기 가게에서 시작한 지 7년여 만에 중국 주요 대도시에 600개 이상(올해 2월 말) 매장을 연 커피 체인으로 성장했다. 매너는 2021년 6월 중국 영상 플랫폼 틱톡·더우인 운영사 바이트댄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을 당시 기업 가치 평가액이 45억달러(약 5조9000억원)에 달했다. 매장 수가 지금의 절반 정도일 때의 얘기다.

현재 중국 커피 시장은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스타벅스를 필두로 팀호튼·피츠·라바차·코스타·아라비카·블루보틀 등 웬만한 외국 커피 브랜드가 모두 중국에 진출했다. 여기에 루이싱·매너·싱윈카·눠와·쿠디·M스탠드 등 중국 커피 브랜드, 맥도널드·KFC·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체인 커피 등이 가세해 시장 점유율 다툼을 벌이고 있다. 매너는 싼 가격으로 매장 수 늘리기에만 골몰하는 저가 커피와는 결이 다르다. ‘미국 스타벅스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 맛은 더 좋은 중국 커피’가 매너가 공략하는 시장이다. 상하이·베이징 등 대도시 오피스·쇼핑몰 안이나 주변에서 주로 매너를 볼 수 있다. 적당한 가격에 품질 좋은 커피를 원하는 젊은층이 주 고객이다. 매너 창업자 한위룽(韓玉龍·38)은 1980년대생이다. 한위룽·루젠샤(陸劍霞·30) 부부는 중국 후룬연구원이 3월 23일 발표한 ‘2023 후룬 세계 부호 명단’에서 자산 가치 67억위안(약 1조2700억원)으로 공동 2923위에 올랐다.

1 매너커피는 루이비통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해 커피를 판매하는 등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사진 매너커피 2 2015년 10월 중국 상하이 징안구 난양루의 2㎡ 공간에 문을 연 매너커피 첫 매장. 사진 매너커피 3 중국 베이징의 오피스 단지에 스타벅스 매장과 매너커피 매장이 나란히 있다. 사진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1 매너커피는 루이비통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해 커피를 판매하는 등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사진 매너커피 2 2015년 10월 중국 상하이 징안구 난양루의 2㎡ 공간에 문을 연 매너커피 첫 매장. 사진 매너커피 3 중국 베이징의 오피스 단지에 스타벅스 매장과 매너커피 매장이 나란히 있다. 사진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1평 안 되는 가게서 창업

한위룽은 20대 때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2년 고향인 장쑤성 난퉁에서 사진을 주제로 한 카페를 열었다. 장사가 썩 잘되진 않았다. 가게를 접고 커피의 도시 상하이로 갔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없어 경쟁이 없는 곳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고 경쟁도 치열한 곳에서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상하이로 가 1년간 융캉루의 작은 카페에서 일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2015년 10월 아내와 함께 징안구 좁은 찻길 거리의 낡은 3층짜리 건물 1층에 카페를 열었다. 2㎡ 공간에 출입문 없이 창문만 겨우 있는 가게였다. 당연히 커피를 앉아서 마실 공간은 없었다. 가게 밖에서 커피를 받아 가져가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했다. 테이블 회전율이 낮은 카페 사업의 특성을 감안한 공간 선택이기도 했다.

한위룽의 전략은 커피 한 잔 값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가격에 맛은 뛰어난 커피를 파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흔치 않던 이탈리아 라마르조코의 반자동 에스프레소 추출기를 들여놨다. 루이싱 등 많은 경쟁사가 전자동 커피 머신을 사용하는 것과 대조된다. 스타벅스보다 싼데 맛은 스타벅스보다 낫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 밖에 긴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금세 하루 수백 잔씩 커피를 팔았다.

스타벅스보다 싸게, 더 맛있게

매너에선 아메리카노, 라테 같은 기본 커피 가격이 대부분 15위안(약 2800원) 또는 20위안(약 3800원)이다. 매너가 인기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대체로 컵 크기나 우유 첨가 여부와 관계 없이 가격이 같다는 점이다. 아메리카노는 작은 컵(237), 큰 컵(355) 모두 15위안이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톨 355 27위안)의 절반 수준이다. 우유를 넣는 뜨거운 라테도 작은 컵(237)이 15위안으로, 아메리카노 가격과 같다. 라테는 아메리카노보다 500원 더 비싸다는 ‘공식’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부러운 가격 체계다. 소비자가 개인 컵을 갖고 오면 5위안(약 1000원)을 할인해 주기도 한다.

매너의 커피 맛은 꽤 좋다. “이 가격에 이 정도면 괜찮네”라기보단 “이 가격에 이런 맛을?”이란 반응이 나오곤 한다. 매너 매장에서 커피를 만드는 직원은 전문 교육을 받은 바리스타다. 매너는 국제스페셜티커피협회(SCA)가 인증한 바리스타 훈련 기관 ‘매너 랩’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바리스타를 양성하고 있다. 중국에선 흔치 않은 방식이다. 매너는 커피 원두 산지로 유명한 중국 남서부 윈난 지역 원두를 주로 쓴다. 한위룽은 첫 몇 년간은 원두 선별과 로스팅을 직접 했다. 회사 규모가 커진 후엔 장쑤성에 5000㎡(약 1500평) 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이곳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전국 매장과 이커머스 플랫폼에 공급한다.

빅테크도 투자…매장 600개 돌파

매너는 매장 수가 아직 10개가 채 안 되던 2018년 10월, 중국 사모펀드 금일자본으로부터 8000만위안(약 151억원)을 투자받았다. 시리즈 A(창업 시드머니 이후 첫 투자금 유치) 펀딩에서 유력 투자사를 투자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매너는 2019년 쑤저우·베이징·청두·선전에 차례로 매장을 열며 본격 확장에 나섰다.

매너는 여러모로 중국 최대 토종 커피 체인 루이싱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루이싱은 2018년 1월 1호점을 낸 후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리며 스타벅스를 위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20년 초, 루이싱은 분식회계가 발각되며 위험 기업으로 낙인찍혔다.

될성부른 중국 커피 브랜드를 찾던 자본은 그다음 스타벅스 도전자로 매너에 베팅했다. 2020년 12월 중국 사모펀드 H 캐피털과 뉴욕 투자사 코우투가 매너에 1억달러(약 1300억원)를 투자했다. 2021년 들어 싱가포르 국부 펀드 테마섹, 메이퇀 산하 드래곤볼캐피털, 바이트댄스가 차례로 투자했다. 매너는 지난해 대확장기에 돌입했다. 10㎡(약 3평) 안팎 초소형 점포부터 주력인 20~50㎡(약 6~15평) 크기 점포, 80~100㎡(약 24~30평) 크기의 베이커리 매장, 150㎡(약 45평) 규모의 식사 매장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모두 직영점이다.

브랜드 협업으로 가치 높여

매너는 다른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적극적이다. 요즘 Z 세대(1997~2010년생) 소비자의 소셜미디어 인증샷 욕구를 공략했다. 매너는 지난해 9월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와 협업해 가을 한정 장미 라테를 출시했다. 카페인도 충전하고 전기차도 충전하란 얘기다. 커피를 구매하고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테슬라 굿즈(브랜드 관련 물품)를 선물로 줬다. 프랑스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은 2021년 7월 베이징 싼리툰의 한 건물 전체를 팝업 스토어로 꾸미면서 커피와 차를 갖다 놨는데, 매너가 커피 판매를 맡았다. 프랑스 로레알 산하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헬레나 루빈스타인은 20만원대 세럼 제품 홍보를 위해 매너와 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