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거슬(Gary Gerstle)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021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 40년 동안 미국을 지배한 신자유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조달러(약 1331조원) 규모의 인프라법을 추진하는 등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본주의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봤다. 거슬 교수의 예상대로 바이든 정부는 각종 산업 정책을 부활시키며 자국 경제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 개입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자인 필자는 신자유주의와 개입주의라는 양자택일의 현실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급변하며 예측이 어려운 시대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중국의 발전 모델을 참고할 것을 제안한다. 중앙 정부의 적정한 관리·감독 아래에서 지방 정부가 자율권과 자치권을 누리며 지역 현안에 맞는 즉흥적이며 창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시스템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AFP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AFP연합
개입할 것인가, 개입하지 않을 것인가. 이는 18세기 이래 시장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대표적인 논쟁 중 하나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과 다른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자유 시장, 자유무역, 정부의 제한된 역할, 즉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 근본주의’라는 입장을 옹호해 왔다. 그런데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인 두 가지 산업 정책인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두고 일부 평론가는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함께 개입주의가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위엔위엔 앙 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학 교수
콜로라도 칼리지 정치학, 
스탠퍼드대 정치학 
석·박사, ‘중국은 어떻게 
빈곤의 덫에서 벗어났는가’ 
‘중국의 황금시대’ 저자
위엔위엔 앙 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학 교수
콜로라도 칼리지 정치학, 스탠퍼드대 정치학 석·박사, ‘중국은 어떻게 빈곤의 덫에서 벗어났는가’ ‘중국의 황금시대’ 저자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분법적 사고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자유방임과 하향식(top-down) 계획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와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간과한 ‘제3의 방법’은 정부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즉흥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상향식(bottom-up) 프로세스를 지시하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에서 이에 대한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서구에서 지배적인 정책 결정 패러다임으로 부상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은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복지 프로그램 축소를 추진했다. 정부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정책 왜곡, 국가 보조금 의존, 부정부패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레이건 대통령도 첫 취임 연설에서 “정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자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로 확산했다. 1989년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만든 개념인 ①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규제 완화, 민영화, 자유무역을 수용하도록 압박했다. 정책 입안자와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정책 처방 중 하나는 재산권 확보였고, 재산권과 경제성장 간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가에게 시장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였다. 국가 개입은 완전히 해롭지는 않더라도 불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개발도상국이 이를 따랐던 것은 아니다.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 한국, 대만 등 ‘아시아의 호랑이’ 국가들은 서구의 기조에 반기를 들고 대규모 정부 개입을 선택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공공 인프라에 투자하고, 우호적인 정책으로 성공 가능성이 큰 산업을 선정하고 육성했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놀라운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동아시아 기적’의 근간이 된 이 모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워싱턴 컨센서스가 후발 개발도상국에서 정부의 필수적인 역할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실에 매달린 추처럼 진자(振子) 운동을 하며 변화를 반복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신자유주의가 잠시 우위를 점하며 국가 개입에 대한 비난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흐름이 또 바뀌기 시작했다. 불평등 심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중국과 경쟁에 직면하면서 서방이 아시아의 전철을 밟아 산업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과 자문가들이 늘고 있다. 

이 논쟁에서 누락된 것은 필자가 ② ‘연출된 즉흥(directed improvisation)’이라고 부르는 제3의 방법이다. 필자의 저서 ‘중국은 어떻게 빈곤의 덫에서 벗어났는가’에서 설명했듯, 1980년대부터 2012년까지 중국의 경제 개혁은 이러한 혼합적 역할을 잘 보여준다. 중국의 경제 호황은 정부의 강력한 하향식 계획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권위주의와 중앙 집권 체제가 정답이었다면,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 치하에서 계속 번영했을 것이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의 뒤를 이었고 그가 중국에 조용히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중앙 정부가 독재자에서 감독으로 전환하게 하고, 명확한 국가 목표를 제시하며 적절한 인센티브와 규칙을 수립하는 한편, 지방 정부가 지역 여건과 필요에 따라 개발 전략을 개선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이러한 ③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를 반영한 중국 체제는 아시아식 발전주의와 서구식 자유화 등 (때로는 모순되는)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된 것이었다. 기본 질서는 방향성과 즉흥성의 역설적인 조합이었다. 중국 속담을 빌리자면, 중앙 정부가 마련한 무대에 지방 정부가 연극을 한 셈이다. 

그 결과 중국이란 하나의 국가 시스템 내에서 지역별로 다양한 중국식 모델이 동시에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장성과 장쑤성은 모두 산업 지역이지만, 저장성 경제에서 민간 부문이 더 큰 역할을 하는 반면 장쑤성은 보다 개입주의적인 (경제)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

사회학자 프레드 블록(Fred Block)과 매슈 켈러(Matthew Keller)가 ‘조정된 분권화(coordinated decentralization)’라고 부르는 혁신을 지원하는 미국 정부의 역할은 연출된 즉흥의 또 다른 사례다. 20세기 중반, 미국은 첨단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발명가, 기업, 대학, 연구소의 분산형 네트워크를 육성했지만, 각자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지 않았다. 대신 지식 공유를 조율하고, 이들이 발견한 것을 상업화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는 등 오늘날 우리가 정보·통신 기술 혁명으로 알고 있는 모든 여건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블록과 켈러의 설명처럼 시장 근본주의의 주장에 맞지 않기 때문에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창의적인 프로세스를 지휘하는 정부의 능력은 대량 산업화 초기 단계보다 혁신이 주도하는 개발 단계에서 더 중요하다. 경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정부가 승자를 가리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심지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결국 혁신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예를 들어 1990년대만 해도 온라인 서점이 언젠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소매 업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그들은 혁신이 반드시 불확실한 결과를 낳는 창의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시장이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정부가 이 과정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이를 지시하고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책 입안자들이 신자유주의 대 개입주의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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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 발전 모델. 1989년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당시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 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긴축 재정, 사회 인프라에 대한 공공 지출 삭감, 외환시장 개방, 시장 자율 금리, 변동환율제, 무역자유화, 외국인 직접투자 자유화, 탈규제,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재산권 보호 등 10가지를 제시했다.

중앙 정부의 하향식 지시와 지방 정부의 상향식 대응을 결합한 중국식 하이브리드 경제 모델. 연극에서 감독이 전체 창작 과정을 지휘하고, 배우는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설명이다. 중국의 중앙 정부가 큰 틀에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인센티브를 통해 적절한 대응을 유도하면, 지방 정부는 지역 현안을 지역 특성에 맞게 해결책을 고안하는 식이다.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제시했다. 인민만 잘살게 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상관없다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적 접근이었다.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이른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