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사진 AP연합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사진 AP연합
5월 6일(현지시각), 인구 5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미국 네브래스카주(州)의 중소도시 오마하는 갑작스럽게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연례 주주 총회가 시작된 날이기 때문이다. 매년 한 번씩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총회가 열릴 때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주주와 투자자들로 오마하는 북새통을 이룬다. 올해 총회는 5월 6일부터 3일간 일정으로 열렸다.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인 작년에도 약 4만 명이나 모인 총회엔 올해는 더 많은 사람이 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행사장은 ‘투자의 귀재’ 버핏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올해 92세 노인인 버핏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작은 도시 오마하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올해 주주 총회를 위해 마련된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올해 주주 총회를 위해 마련된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기회는 언제나 존재한다”

‘투자자들을 위한 슈퍼 콘서트’로 불리는 연례 주주 총회에서 버핏은 인사이트 담긴 조언을 연발했다. 그는 투자 환경이 예전보다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투자 기회는 널렸다고 강조하면서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회는 다른 이들이 바보짓을 할 때(other people doing dumb things)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CNBC는 이에 대해 “버핏의 가치 투자 철학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이라고 평가했다.

가치 투자는 일반적으로 저평가된 주식이나 기업을 사들이는 투자 행위를 일컫는다. 투자 심리가 위축돼 다른 투자자들이 헐값으로 자산을 팔 때 그것을 매수해 장기간 보유하는 것이다. 버핏은 이러한 방식으로 수익을 냈던 것으로 유명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지분을 싼값으로 대거 사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BOA는 지금도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남들이 공포에 떨며 매도를 시도할 때 버핏은 적극적으로 매수한 덕분에 버크셔 해서웨이는 1965년부터 작년까지 무려 378만746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2만4708%)의 무려 153배다.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실적도 순항을 기록 중이다. CNBC 등 외신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체 영업 실적과 투자 수익은 모두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에 보험사 가이코, 철도 회사 벌링턴노던산타페(BNSF)를 비롯해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분 100%를 소유한 기업들의 영업 이익은 80억6500만달러(약 10조6474억원)로, 그 전해의 71억6000만달러(약 9조4540억원)에 비해 12.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험 영업 이익 역시 1억6700만달러(약 2205억원)에서 9억1100만달러(약 1조2030억원)로 다섯 배 넘게 뛰었고, 보험 가입자들의 돈을 굴리는 보험 투자 수익은 작년 11억7000만달러(약 1조5446억원)에서 올해 19억6900만달러(약 2조5994억원)로 68% 급증했다.

“미국 경제의 황금기는 끝나간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올해 미국 경제에 대한 버핏의 예측은 비관적이었다. 그는 “미국 경제에 있어서 믿을 수 없는 시간(incredible period)이 끝나가고 있다”면서 “버크셔 해서웨이 사업체 대부분의 올해 실적이 작년보다 감소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철도와 보험, 에너지, 소매업 등 광범위한 사업을 소유하거나 이런 분야에 투자하고 있어 미국 경제의 바로미터로 꼽힌다.

버핏이 내놓은 비관론의 배경은 수요 악화다.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면서 수요가 서서히 줄어드는 반면, 코로나19가 끝나갈 당시 늘어난 수요에 맞춰 생산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과잉 재고가 쌓였다는 것이다. 버핏은 “고용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은 아니지만,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6개월 전과는 현저히 다른 분위기”라고 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 은행 위기 역시 비관론에 무게를 더했다. 버핏은 파산한 은행 경영진을 질책하며 “경영진이 실수를 책임져야 한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보장 한도를 넘어선 SVB 예금 보호 조치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미국엔 큰 재앙이 닥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비관론에 따라 버핏의 투자 역시 신중함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올해 1분기 133억달러(약 17조5560억원) 상당의 주식을 매도했지만, 신규 주식 매수는 29억달러(약 3조8200억원)에 그쳐 104억달러(약 13조7280억원) 순매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작년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순매도다. 작년 1분기 510억달러(약 67조32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한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FT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 경제에 대한 비관적 예측과는 달리, 버핏은 달러 위기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버핏은 “달러는 기축통화이고, 다른 어떤 통화도 (달러 대신)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인공지능(AI)은 원자폭탄”

최근 버핏은 지정학적인 긴장 고조를 이유로 투자 대상 국가를 대만에서 일본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 지분을 팔고 일본 5대 종합상사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것이 그 한 사례다. 버핏은 “TSMC는 세계에서 가장 잘 관리되고 중요한 회사지만, 그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만을 둘러싼 정치적 위기가 투자를 줄인 이유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반면 애플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애플 주식을 5.8% 보유한 최대 주주다. 애플의 주가 급등으로 작년 말 버크셔 해서웨이의 미국 주식 포트폴리오 중 애플 비중은 38.9%에 달했다. 버핏은 “애플은 우리가 소유한 어떤 기업보다 더 나은 기업이다. 만약 소비자들이 (자기들이 소유한) 두 번째 차량과 아이폰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차를 포기할 정도로 아이폰은 대단한 제품”이라고 치켜세웠다.

최근 오픈AI의 챗GPT 등 AI가 화제인 사회 분위기답게 총회에선 AI에 대한 질문들도 쏟아졌다. 하지만 버핏은 AI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AI가 세상 모든 것을 바꾸는 날은 오겠지만,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또한 파죽지세로 발전 중인 AI 개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버핏은 AI 기술을 원자폭탄에 비유하면서 “원자폭탄 개발은 엄청난 진보였지만, 그로 인한 피해도 엄청났다”고 덧붙였다. 버핏이 영국 찰스 3세에 빗대 “우리 회사의 찰스 왕(King Charles)”이라고 소개한 ‘버핏의 오른팔’ 찰스 멍거(99)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도 “개인적으로 AI 기술에 대한 일부 과도한 기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면서 “(AI가 아닌) 옛날식 지능도 아주 잘 작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부고 기사를 미리 써 봐라”

주주 총회에서 버핏은 투자에 대한 조언 못지않게 90년 넘게 살면서 체득한 인생에 대한 조언도 공유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부고 기사 쓰기’다. 버핏은 “자신의 부고 기사를 써 본 뒤 그 기사를 통해 기억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투자계의 거물답지 않게 “투자에 대해 걱정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는 건 바보짓이다. 버는 것보다 조금 덜 쓰면 항상 풍족하게 살 수 있다”라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선 주택담보대출 외의 부채는 되도록 지지 말 것을 조언했다.

오윤희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