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는 물론 연예계와 정·관계까지 떠들썩하게 만든 희대의 주가조작 사태가 드러났다. 3년간에 걸쳐 서서히 주가를 끌어올린 케이스도 희귀하지만, 특히 다우데이타는 작전 대상이 됐으면서도 최대 주주가 최고점에 주식을 팔아 세력을 일망타진했고, 공교롭게도 주식을 판 당사자가 증권사 경영자라는 점 때문에 더 주목받았다. ‘역시 (증권사를 경영하는) 선수는 다르다’는 선에서 끝나는 것 아니라 ‘뭔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그로 인해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자진 사퇴 및 사회 환원을 발표해야 했다.
주가조작을 설계한 H투자컨설팅의 라모씨는 대주주 지분이 많으면서도 승계 등의 이유로 지분을 쉽게 팔 수 없고, 그러면서도 자산 가치 매력이 높은 종목을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사실 다우데이타는 종목 선정 단계에서부터 틀렸다는 것이 여의도에 오래 머물렀던 업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우데이타는 전문가들로부터 저평가 매력이 높지만, 그럼에도 절대 건드리면 안 될 종목으로 꼽혀왔다. 나름 준(準)대기업집단 지주회사임에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다우데이타를 들여다보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왜 다우데이타는 작전 대상 종목으로 어울리지 않았던 걸까. 네 가지 측면에서 이유를 꼽을 수 있다.
1│힘들게 구축한 지배구조, 건드리려는 작전 세력에 분노 컸을 것
다우데이타는 김익래 전 회장과 특별 관계자, 특별 관계인 법인(현 최대 주주 이머니) 등이 지분 63.18%를 보유하고 있다. 이마저 최근 김 전 회장이 3.65%의 지분을 팔았기 때문에 감소한 것이지, 작년 말 기준으로는 지분율이 67%를 넘는다.
언뜻 보면 오래전부터 지배구조를 탄탄히 유지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2006년만 해도 김 전 회장은 당시 계열사들의 정점에 있었던 다우기술 지분을 우호 지분 모두 합해봐야 40% 안 되게 들고 있었고, 순환출자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당시만 해도 현재의 지주회사 다우데이타는 다우기술 밑에 자회사로 있었고, 키움증권도 다우기술 밑에 있었다. 누군가가 다우기술을 공격하면 알짜 자회사를 빼앗길 수도 있는 처지였다. 당시 한 언론사는 다우기술을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이 노릴 만한 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어쨌든 김 전 회장은 이 과제를 해결했다. 오랜 기간 공들인 끝에 비상장 핵심 계열사 다반테크를 다우데이타와 합병하고, 본인도 직접 다우데이타 지분을 사들이면서 다우데이타는 다우기술의 모회사가 된다. 엄마, 자식 관계가 하루아침에 바뀐 셈이다. 다반테크가 보유하고 있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워런트(신주인수증권)를 행사해 다우데이타는 다우기술 지분을 늘릴 수 있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의 지배구조는 김 전 회장과 그 측근들이 몹시 어렵게 쌓아 올린 탑”이라며 “그런데 외부 세력이 불순한 의도로 들어오니 (작전을 인지했든 못 했든) 꾸준히 매집하는 세력을 혼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주가 띄우자 호되게 매도 친 전력도
실제로 외부에서 주가를 끌어올렸던 세력을 호되게 혼내준 경력이 있다. 다우데이타가 2006년 말부터 2007년까지 윈도 비스타 테마주로 엮여 주가가 급등하자 본때를 보여주듯 주식을 내다 판 것이다. 당시 대외협력총괄이사였던 김 전 회장은 2007년 1월 9일부터 11일까지 3거래일 동안 다우데이타 주식 133만2000주(4.15%)를 장내에서 팔았다. 2000원대였던 주가가 한때 5000원 위로 치솟자 차익 실현에 나선 것이다. 당시 김 전 회장의 평균 매도 단가는 4757원. 물량을 세 차례 나눠 팔았음에도 매도 마지막 날인 2007년 1월 11일에는 하한가까지 떨어졌다. 그 이후로도 주가가 하락해 1월 23일에는 원래 가격인 2960원으로 돌아갔다. 증권사 오너의 매운맛을 이미 한 차례 보여줬던 셈이다.
3│지분 충분한 김익래 전 회장, 지금은 다 팔아도 문제없어
라모씨가 종목을 잘못 선정한 또 다른 이유는 다우데이타는 승계가 이미 사실상 끝났다는 점이다. 5월 5일 사회 환원을 발표하면서 자녀들의 증여세 재원 마련이 새로운 숙제가 됐지만, 어쨌든 이 또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김 전 회장은 23.0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아들인 김동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가 6.53%, 장녀 김진현과 차녀 김진이 키움투자자산운용 상무가 각각 1.04%, 그리고 이머니라는 기업이 31.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머니는 2003년 설립된 온라인 정보 제공 업체로 자본금이 8억30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우데이타 지분은 31.56%나 들고 있다. 지난 2021년 10월 김 전 회장이 일부 지분을 자녀들에게 증여하면서 표면적으로 이머니가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는데, 이머니는 아주 오랜 기간 티 나지 않게 다우데이타 지분을 늘려왔다. 김 전 회장이 사실상 보증을 선 덕에 대출받아 다우데이타 지분을 늘린 것이다. 이머니는 다우데이타 지분만 많은 것이 아니라 자사주도 55%에 달하기에 최대 주주인 아들 김동준 대표가 지분 33%만 보유하고 있어도 얼마든지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즉, 김 전 회장은 말 그대로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모두 팔아도 아들 김 대표의 지배력은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만약 세간의 추측대로 라모씨가 “다우데이타는 최대 주주 일가가 주식을 팔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주식을 매집했다면, 완전히 헛짚은 셈이다.
4│주가 싸면 쌀수록 오너 일가는 좋아
다우키움그룹은 주력 계열사가 키움증권이다. 다우데이타의 손자회사지만, 자산 기준으로 그룹 기여도는 70%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키움증권은 5월 3일 기준 시가총액이 2조3623억원이고, 키움증권 모회사 다우기술은 키움증권 지분을 보통주는 41.20%, 우선주는 11.76% 보유하고 있으나 시가총액이 8452억원에 불과하다. 키움증권 보통주만 따져도 1조원의 시가총액을 인정받아야 하나 못 받고 있는 것이다. 다우기술 모회사 다우데이타도 똑같다. 다우데이타는 다우기술 지분 45.20%를 들고 있지만, 현재 시가총액이 6231억원에 그친다.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몸값이 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다우데이타와 다우기술이 합병하면 합병 모회사는 키움증권 지분 가치를 지금보다는 더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에는 키움증권 가치가 더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 ‘김동준 대표→이머니→다우데이타→다우기술→키움증권’의 지배구조가 되면, 주력 계열사 키움증권은 증손자회사가 되기 때문이다.
다우데이타도 여느 대기업 지주회사처럼 저평가받고 있는데, 이유는 바로 오너 일가가 굳이 주가가 비싸 봐야 좋을 일이 없다는 점에 있다. 주가가 오르면 지분 말고는 딱히 재산이 없는 자녀들은 추후 증여세나 상속세 마련을 위해 별도의 현금 나올 구멍을 만들어둬야 한다. 이래저래 더 피곤하기에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주가 상승이 반가울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