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유튜브에서 이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시골 농가 마당에서 놓아 키우는 닭들이 있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고양이가 한 마리 나타났다. 한가로이 놀고 있던 닭들은 혼비백산했다. 고양이는 아무 닭이나 건드리다가, 가장 약해 보이는 닭 한 마리를 콕 집어 추격하기 시작했다. 

닭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쫓기다가 막다른 데에 이르자 갑자기 머리를 땅속에 처박아 버렸다. 쥐도 쫓기다가 사지에 몰리면 고양이한테 덤벼든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고양이에게 필사적인 반격을 시도해도 모자랄 판에 머리를 땅속에 처박는다고? 닭한테는 미안하지만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다행히 막바지에 농가 주인이 나타나 고양이를 쫓아 버리면서 영상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대체 저 닭은 왜 저런 행동을 보인 걸까. 아마도 천적인 고양이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불편한 진실(uncomfortable truth)’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나 보다. 

닭은 자신이 머리를 땅에 처박아 고양이를 외면하면 이 위급한 상황이 사라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의도적인 진실 회피의 순간을 목도한 셈이다. 불편한 진실이란 무엇인가. 대개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지만 드러내 놓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꺼리는 어떤 사실을 말한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사람들

불편한 진실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감스럽게도 일상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저 닭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장 전형적인 반응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모른 척 쉬쉬한다. 국가나 조직이나 개인이나 양태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외부인들에게 알려지면 그 나라의 국격, 조직의 품격 혹은 그 사람의 인격이 손상된다고 생각한다. 군사정권 시절 인권 탄압이 횡행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두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를 모른 척하거나 쉬쉬했다.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 나중에 출세해서 나라의 세금을 축내는 불법과 일탈을 일삼아도 주위 사람들은 모른 척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것이 전체 민주화운동 세력을 비난하는 빌미가 될지도 모른다는 핑계도 작용했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에 얼굴을 돌리거나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가장 전형적이라면, 그다음은 사실 자체를 왜곡하거나 심지어 조작하는 경우일 것이다. 회사의 경영 비리를 고발하려는 내부고발자가 있다면, 그들의 파렴치한 행각을 증명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오히려 반격당할 수도 있다. 경영진이 비리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 심지어 삭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의 왜곡과 조작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일 것이다. 대다수 선량한 일본 국민과 중국 인민은 국가 차원에서 자행되는 역사 왜곡이나 사실 조작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양국의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역사 교과서의 왜곡은 그 연원이 길고 오래됐다.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는 정치인들이 가장 잘 보여준다. 그들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했을 때, 우선 그 팩트 자체를 부인한다. 그러고는 그걸 가짜 뉴스로 몰아붙인다. 엉터리 통계자료로 반박하기도 한다. 모집단을 왜곡한 자료, 자신에게 유리한 일부만 고의적으로 발췌한 자료를 내밀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증거를 인멸하고, 말맞추기를 시도한다. 그러다가 팩트가 확인되면, 사과를 하기는커녕 외려 다른 사건으로 물타기를 시도한다. 

불편한 진실에 직면했을 때 보이는 이런 반응들이 국가나 정당 혹은 회사 등의 조직 차원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개인 간에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미국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시위 현장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절반의 참가자에게는 이 시위가 낙태에 반대하는 시위라고 말해준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군대를 위해 주민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라고 말한다. 응답자 중 자유주의자인 경우, 낙태를 반대하는 시위자들의 모습이 더 폭력적이고,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고 응답한 비율이 월등하게 높았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군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더 그랬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심지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객관적인 수학 문제조차도, 자신이 지지하는 미국 민주당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 잘 풀더라는 연구도 있다. 물론 자유주의자의 경우에 한해서다. 보수주의자의 경우에는 어떤 문제의 해결책이 총기 규제가 범죄를 증가시킨다는 것을 보여줬을 때 유의미하게 문제를 더 잘 풀었다고 한다.

지식인과 일반인, 다르지 않은 불편한 진실 대응 방식 

일반인보다 IQ가 높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도 재미있다. 개인의 IQ가 높을수록 어떤 특정한 입장을 지지하는 이유나 대책을 더 잘 만들어 낸다. 물론 자신의 신념이나 지지하는 정파의 이익과 부합할 경우에만 그렇다. 이 실험은 대학교수나 신문기자 등 지식인으로 인정받는 이들이라고 해서 불편한 진실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실험이 아닐까 싶다. 

앞에서 언급한 내부 고발을 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개인의 경우 그 고민이 매우 깊을 수 있다.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내부 고발자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그는 자칫 내부 배신자로 낙인찍혀 회사에서 퇴출당할수 있다. 불편한 진실과의 직면이 자신의 생계와 생존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 고발자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회피한다. 

그렇다면 이런 심각한 상황 말고, 미국의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연구에서처럼, 일상에서 불편한 진실과 마주치는 사람들이 편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떤 문제에 대해 추론할 때 사람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는 믿음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이익과 부합하는 사실이나 정보를 모으는 것에 더 익숙하다. 이런 행위가 사회적인 환경에서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확한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일관성 있는 정체성 유지 욕구

심리학자인 뉴욕대 제이 반 바벨 교수는 이런 성향을 ‘일관성 있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욕구(desire for identity consistency)’라고 말한다. 이런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믿음에 반하는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 그토록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 몸부림이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보다는 사회적인 결속에 더 관심이 많다. 사실과 진실보다는 특정 그룹이나 사회 조직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누리려는 욕구가 진실을 압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돈을 벌 기회도 포기한다. 한 실험에 의하면 참가자들은 동성결혼, 총기 소지, 낙태 등의 문제를 다룬 글을 읽고 돈을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받았다. 예컨대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참가자가 그것을 찬성하는 논문을 읽으면 7달러(약 9000원)를, 반대하는 논문을 읽으면 10달러(약 1만3000원)를 받는 식이다. 그런데 참가자의 3분의 2가 자신이 반대하는 의견을 낸 글을 읽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돈을 덜 받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부합하는 신문이나 방송, 동영상만 찾아서 보고 듣는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SNS)에서도 기어코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사람들만 팔로우하고, 그런 기사만 필사적으로 공유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끼리끼리 어울리며 확증편향의 희생양이 되고, 외눈박이 진실의 포로가 되어간다. 인터넷 시대에 집단지성의 장점보다는 집단편향의 부작용이 만연하는 것도 이런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