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호텔. 사진 통일부
해금강호텔. 사진 통일부

북한이 현대아산 소유 해상 호텔(floating hotel on the sea)인 해금강호텔의 하층 지지대까지 모든 흔적을 없앤(remove all traces)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금강산 고성항에 있던 하층 지지대를 북쪽 약 37㎞ 지점 통천항으로 옮겼었다. 이 지지대는 길이 95m 폭 30m로, 호텔 건물이 해체된(be dismantled) 후 대형 철제 바지선 형태로 남아 있었다.

윤희영 
조선일보 편집국 에디터 
한국외대 동시통역대학원 한국어·스페인어·영어과, 현 조선닷컴 영문판 총괄, 전 조선일보 뉴욕 특파원
윤희영 조선일보 편집국 에디터
한국외대 동시통역대학원 한국어·스페인어·영어과, 현 조선닷컴 영문판 총괄, 전 조선일보 뉴욕 특파원

해금강호텔은 2000년 개관해 한국 관광객이 이용했으나,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장기간 방치됐었다(be left unattended for a long time). 그 후 김정은이 2019년 금강산 시찰 중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해 객실 건물은 지난해 7월쯤 해체됐었다.

금강산 해안가에 정박된 바지선 위(on a barge moored at the seashore) 7층 건물에 객실 160실과 부대 시설을 갖추고 있던 해금강호텔은 현대에서 건조한 것은 아니다. 특이하고 기묘한 운명(bizarre and eerie fate)을 겪은, 기구하고 가련한 존재(hapless and wretched existence)였다.

탄생은 화려했다(be splendid). 세계 최초 해상 호텔로 1988년 문을 열었다. 호주 개발업자가 4000만달러를 들여 싱가포르에서 건조, 호주 타운즈빌 해안에 띄웠던 전례 없는 호화 호텔(luxury hotel without precedent)이었다. 산호초 위에서 숙박을 하는 세계 최초의 시도(world-first attempt to have people staying on the coral reef)였다.

그런데 날씨가 문제였다. 열대성 폭풍 때문에 걸핏하면 걸어 잠가야 했다. 투숙객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begin to dwindle) 운용 비용을 감당할(cope with operation costs) 수 없게 됐다. 초기의 참신함에도 불구하고(despite the initial novelty) 1년을 버티지 못했다. 베트남에 팔려 가는 신세가 됐다. 바닷길 5000㎞를 끌려가 사이공강(江) 어귀에 묶였고, 나이트클럽 간판을 내건 ‘사이공 수상 호텔’로 개명됐다.

거기서도 8년을 넘기지 못했다. 경영난에 시달리다가(be financially strapped) 1997년 또 다른 주인에게 넘어갔다(be offloaded to another owner). 현대아산이었다. 그런데 머나먼 바닷길로 다시 끌려간 곳은 한국이 아니라 북한 금강산 해안가였다.

남북한 관계 해빙에 중요한 역할을 할(play a significant role in the thawing of their relations) 것이라고 했다. 남한 관광객을 맞이하라는 중책을 부여받았다. 비로소 정착 하고(cast its anchor) 제 몫을 하며 여생을 보내는가 싶었다.

그마저 10년이었다. 2008년 또다시 예기치 못한 풍파에 휩싸였다(be caught by an unexpected storm).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 경비병에게 사살당하는(be shot dead) 불의의 사건(unforeseen incident)이 벌어져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이다. 이후 또다시 버림받은 채 거센 파도와 비바람을 무릅쓰며(brave wild waves and rainstorm)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됐다(stand at the crossroads of its destiny). 그리고 끝내 온갖 풍상(all sorts of hardships)을 뒤로 한 채 고철과 쓰레기 더미로 갈기갈기 찢겨 이 세상을 하직하고(leave this world)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