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서울 동대문구의 한 마트 신축 건물 지하에서 물탱크 방수 작업(에폭시)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 2명이 질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밀폐 구역에서 페인트칠하다가 중독 증세를 보인 것이다. 다행히 물탱크 외부에 있던 동료에 의해 구조됐지만, 물탱크 내에서 무전기와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자칫 인명 피해가 생길 수 있었다.

4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박철균(53) 지엔테크놀로지스 대표는 “선박이나 물탱크 등 밀폐 구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무전기를 휴대하지만, 정작 전파가 금속을 통과하지 못해 통신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며 “금속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도 원활한 통신을 위해 금속 표면 자기장을 활용한 금속체 통신을 개발했다”라고 했다.

박 대표는 한양대 전자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도쿄공업대에서 무선통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회사의 지원을 받아 2007년까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전기전자공학으로 포스트닥터(박사 후 과정)를 마쳤다.

삼성전기로 돌아온 박 대표는 무선충전사업을 총괄하는 파트장으로 근무하면서 스마트폰 내 제품화를 이끌었다. 2015년 세계 최초로 무선충전 기능을 탑재한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6의 무선충전 기능도 박 대표가 총괄해 개발했다. 박 대표는 “삼성전기에서 파트장 겸 수석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스마트폰 무선충전 솔루션을 개발하고 표준화하는 역할을 총괄했다”라며 “개발, 프로젝트 관리, 설계, 평가, 문제 해결 등을 이끌었다”라고 했다.

박 대표는 무선충전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근거리무선통신(NFC) 모듈, 무선충전 패드가 스마트폰 후면 금속에 막혀 성능이 저하되는 문제에 봉착했다. 그러다가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유사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관련 기술을 개발할 경우 산업 현장에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 사업화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박 대표가 2017년 삼성전기에서 퇴사해 이듬해 지엔테크놀로지스를 창업한 이유다.

박 대표는 지엔테크놀로지스를 창업한 뒤 곧장 울산과학기술원으로부터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독자 기술을 추가해 금속체 환경에서 무선통신이 가능한 ‘메탈복스(metalVox)’를 개발했다. 메탈복스에 대해 박 대표는 “금속 표면에 발생하는 자기장을 활용한 무선통신”이라고 설명했다.

전파는 금속을 통과할 수 없다. 따라서 엘리베이터 같은 금속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무전기나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 박 대표는 “이런 현상은 전파가 금속을 투과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금속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선박과 산업 현장에서는 무선통신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게 상식으로 여겨진다”라며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게 메탈웨이브 기술을 활용한 메탈복스다”라고 했다. 메탈웨이브 기술은 금속체에 직접 전파를 방사해 통신기와 금속체가 전기적으로 결합하는 현상을 말한다. 금속체에 반사된 전파를 자기장을 활용해 금속체 표면으로 흐르게 만들어 통신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대기 중에 있는 전기장은 금속체와 만나 미세한 자기장을 만드는데, 이런 자기장을 통신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라며 “전파를 막는 금속을 전파를 전달하는 안테나로 활용한 기술이다”라고 했다.

메탈복스의 가능성을 보고 빠르게 적용하고 있는 곳은 해운업계다. HMM, SK해운, 현대LNG 등 국내 대표 선사들이 새롭게 건조하는 선박에 메탈복스를 탑재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한국의 주력 선박인 174K급 LNG 운반선의 경우 길이가 270m에 달해 그동안 원활한 통신을 위해서는 20㎞에 달하는 유선 케이블과 수많은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해야 했다”라며 “설치 과정에서 사람 머리 크기의 구멍을 뚫어야 하고 정기적인 케이블 유지·보수도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유선 케이블의 한계로 음영 구역이 다수 발생한 게 사실이다”라고 했다.

박 대표는 이어 “메탈복스를 활용할 경우 5㎏ 단말기 2~3대로 174K급 LNG 운반선에서 음영 구역 없이 무선통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라며 “편의성은 물론 가격도 유선 케이블 3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