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회사법인 신선의 박준미 대표가 청주신선주 탁주를 들고, 제조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농업회사법인 신선의 박준미 대표가 청주신선주 탁주를 들고, 제조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농업회사법인 신선 박준미 대표는 충북무형문화재 4호 청주신선주의 19대 전수자이자 대한민국 식품명인이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즐겨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청주신선주는 함양박씨 문중에서 500년 이상 내려온 가양주다. 충북 청주시 산성동 함양박씨 문중 문헌인 ‘현암시문합집’에 신선주의 내용이 쓰여 있고, 대대로 함양박씨 문중에서 신선주를 빚고 있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서울대 독어독문학 
학·석사, 전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장, 
‘한국술열전’ 저자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서울대 독어독문학 학·석사, 전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장, ‘한국술열전’ 저자

‘능히 백발을 검은 머리로 변하게 하고, 노인을 젊은이로 만들어 해가 갈수록 수명을 더하도록 한다'는 술이 청주신선주다. 그 술을 만들고 있는 박준미 대표는 말한다. “이 술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한 약으로 먹었어요. 몸에 좋은 약재 10가지를 넣어 발효시킨 술이어서, 식사 전에 한잔씩 마시면 소화 흡수를 돕고 몸에도 좋기 때문이죠.” 청주신선주는 탁주(12도), 약주(16도), 소주(42도) 3종이 있다. 그리고 각각 도수를 조금씩 낮춘 청주신선주 라이트가 있다. 

실제로 청주신선주에는 귀한 약재가 여럿 들어간다. 숙지황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우슬은 무릎에 좋다고 전해져 온다. 청주신선주에 들어간 유일한 꽃인 국화는 머리를 맑게 해준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약은 약이요, 술은 술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굳이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 곧바로 필요한 약을 복용하면 된다. 약용 술이라고 해도, 많이 마셔서 좋을 리가 없는 게 술이다. 옛날과 달리 몸에 좋은 약이 요즘에는 얼마나 흔한가. 더구나 약재 향이 진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청주신선주도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문중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제조법 그대로 술을 빚으면, 이건 거의 술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엑기스 약재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십전대보탕 같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겠나. 술인지 약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건, 결국 ‘상업용 술'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저런 연유로, 1994년 충북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청주신선주가 세상에 나온 건 무려 25년이 지난 2019년이었다. 500년 동안 문중에서 빚어서 마셨던 술인데, 이를 상업화하는 데 25년이라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청주신선주 3종 세트. 왼쪽부터 탁주(알코올 도수 12도), 약주(16도), 소주(42)순. 청주신선주는 10여 가지의 약재를 부재료로 넣은 약용주다. 사진 박순욱 기자
청주신선주 3종 세트. 왼쪽부터 탁주(알코올 도수 12도), 약주(16도), 소주(42)순. 청주신선주는 10여 가지의 약재를 부재료로 넣은 약용주다. 사진 박순욱 기자

“2019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박남희 명인은 가양주 제법을 그대로 지켜서 청주신선주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500년도 더 지난 지금 소비자가 그때 술을 좋아할 리가 없죠. 숱한 실패와 쓴맛을 맛봤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아버지가 차린 양조장이 부도를 맞기도 했고요. 전통을 계승하되, 현대인의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저도 아버지 곁에서 같이 10년 정도 술을 빚으면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깨달음입니다.”

박준미 대표는 2019년에 지금의 농업회사법인 ‘신선’ 양조장을 차렸다. 청주신선주가 출시된 것도 그해다. 하지만 양조장을 직접 세우기 10년 전부터 아버지와 술을 빚어왔다. 청주신선주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말이다. 그러면서 하나씩 레시피(술 제조 방법)를 수정해 나갔다.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만든다는 ‘법고창신’이 바로 청주신선주 개발 과정이었다. 실제로 청주신선주를 마셔보면 누룩 취도 거의 없고 여러 가지 약재 향도 도드라지지 않는 깔끔함이 느껴진다. 직접 재배한 밀 누룩 덕분인지, 다양한 꽃, 과실 향이 은은하다. 

그렇다면 박 대표는 친정아버지도 못 한 청주신선주의 현대화를 어떻게 했을까. 첫 번째가 술 거르기, 여과다. 청주신선주는 특이하게 술 빚는 도중에 거르기, 여과를 한 번 더 한다. 밑술을 한 지 사흘쯤 뒤에 1차 덧술을 하는데, 이때 밑술을 천 포대기에 거른다. 술 발효가 끝나기 전에 ‘거르기’ 작업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누룩 취를 제거하고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서다. 물론 술 발효가 끝났을 때도 거르기를 한다. 박 대표는 “2차 덧술 때 여러 약재를 넣는데, 그 전에 술을 거르면, 술맛이 훨씬 깔끔해진다”고 말했다. 

두 번째 청주신선주의 현대화는 삼양주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신선주 제법은 원래 단양주다. 밑술, 덧술 구분 없이 한 번에 술을 빚어 완성한다. 밑술을 먼저 하고, 덧술을 한 번 하면 이양주, 덧술을 두 번 하면 삼양주다. 단양주 스타일대로 약용주인 청주신선주를 만들 경우, 쌀과 누룩, 각종 약재를 한꺼번에 넣어야 한다. 단양주의 장점은 한 번에 술을 빚어 경제적이라는 점인데, 반대로 술맛이 가볍고, 특히 단양주로 만든 약용주는 약재 향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 삼양주로 만들 경우, 들어가는 쌀 함유량이 늘어나 단양주보다 단맛이 다소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박 대표는 “단양주로 만든 술은 너무 드라이해서(달지 않아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엇갈린 반면에, 삼양주로 빚은 청주신선주는 대부분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2차 덧술 때 찹쌀을 쓴 것도 술에 감칠맛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박 대표는 단양주인 가양주 제법과 달리, 삼양주로 청주신선주를 빚어 약재 향을 줄이고 술맛을 훨씬 부드럽게 했다. 

세 번째는 약재 함유량을 대폭 줄였다. 문중 가양주 주방문에 나와 있는 약재 양의 30~40%만 사용했다. 절반 이상을 줄인 셈이다. 

“청주신선주 상품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약재 향이 도드라진다는 점이었어요. ‘국내 최고의 약용주’라는 자부심은 지켜야겠지만, 너무 전통 속에 갇혀 있으면, 헤어 나오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우리 술을 즐기려면 약재 향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젊은 소비자들은 누룩 취 이상으로 약재 향을 싫어하거든요.”

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박 대표가 아버지를 도와 본격적으로 술 빚기에 나선 것이 2010년. 거의 10년 만인 2019년에야 자신이 만든 청주신선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고 박남희 명인이 1994년 충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부터 치면 무려, 25년 만에 청주신선주가 가양주 범주를 벗어나 세상에 나온 것이다. 

요즘 박 대표의 시야는 해외로 뻗어 있다. 일본, 중국 등 해외문화교류 행사에 적극적이다. “음식의 일종인 술 역시,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식문화를 해외에 적극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웃 나라 양조장들과 적극 협력해 술 품질을 더 높이는 노력도 하고요. 청주신선주가 세계 명주 반열에 오를 때까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