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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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경제학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지 않지만, 오늘날의 화폐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화폐제도인 금본위제(Gold Standard)를 이해해야 한다. 페르낭 브로델이 말했듯이 현존하는 모든 제도는 과거의 기단 위에 쌓아 올린 작은 돌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유럽인은 귀금속(금, 은)을 화폐로 사용했다. 하지만 유럽 내 광물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한 화폐가 중세 시대 내내 유럽의 경제발전을 제약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그러나 스페인이 남미로부터 수탈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유럽 사회에 유입되며 사정이 달라졌다. 유럽 사회가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화폐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산업혁명이 자리 잡으면서 세계경제가 확장됐고 돈의 힘도 함께 커졌다. 화폐와 산업이 서로 자극을 주면서 성장한 것이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기차와 공장에 동력을 공급했듯이, 대영제국의 은행들은 기업과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했다. 19세기 말 대영제국은 국제적 금본위제의 수호자로서 통일적인 국제통화를 만들어 냈고, 영란은행은 대영제국의 금고로 자리 잡았다. 영란은행은 은행 생태계의 중앙 허브 역할을 했으며, 다른 국가들의 표준이 됐다. 각국 왕실은 국부의 원천이자 전쟁 자금으로 거액의 금 보유고를 유지하려고 했다.

금의 자동 조정 기능

이러한 금본위제의 가장 큰 특징은 소위 ‘금의 자동 조정 기능(Goldautomatismus)’이다. 금본위제는 화폐 공급량과 화폐의 구매력 변동이 자동적으로 연결되거나 상호규제되는 기능적 메커니즘이다. 예를 들어 유통 중인 화폐(은행권)가 많아지면(예, 100→200) 화폐의 구매력이 감소(예, 1.0→0.5)하므로 사람들은 화폐를 금과 교환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화폐와 금의 교환 비율(예, 1 대 1)은 법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은행권은 액면가에 해당하는 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채무증서(어음)였다. 이러한 화폐와 금의 교환 과정이 계속되면 유통 중인 통화량이 감소하게 되고 다시 화폐의 구매력이 높아진다. 결국 정부는 금의 가격을 보장함으로써 국내적으로 화폐 구매력을 보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화폐 공급은 궁극적으로 정부의 금 매입 가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본위제하에서는 중앙은행과 통화정책이 필요 없다. 당시 영란은행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가장 규모가 큰 왕실 금고 또는 금 보관소였을 뿐이다.

데이비드 흄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의 모든 교역 상대국들은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외국 화폐는 국내 화폐와 연결돼 있었다. 금의 운송 비용과 주화 주조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금본위제하에서 세계는 사실상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환율은 안정적이고 국제적 통화의 흐름도 자동적으로 조절됐다.

이러한 금본위제의 국제적 메커니즘을 가장 먼저 꿰뚫어 본 사람은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었다. 그는 1752년 자신의 논문 ‘무역수지에 대하여’를 통해 무역수지 불균형이 금본위제하에서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흄의 이론을 ‘가격-정화 흐름 메커니즘(Price-Specie Flow Mechanism)’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가격’은 물가를 의미하고 ‘정화’는 금을 의미하며 ‘흐름’은 수출입을 의미한다. 흄은 “한 국가가 무역수지 흑자를 항구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간파했다. 그에 따르면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하면 정화(금)가 해외로부터 국내로 유입된다. 정화가 국내로 유입되면 화폐(은행권, 종이) 공급이 늘어난다. 화폐의 공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 높은 물가는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한다. 이로 인해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국내의 정화가 해외로 유출된다.

가격-정화 흐름 메커니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가격-정화 흐름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금 1온스 = 20달러이고, 영국에서 금 1온스 = 4파운드라고 가정해보자. 파운드화의 달러에 대한 환율은 양국의 금 가격에 따라 1파운드 = 4달러(20/4)로 자동적으로 고정된다. 미국이 5000만달러 상당의 밀을 영국에 수출하고, 영국은 800만파운드(약 3200만달러) 상당의 농기계를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250만 온스의 금을 대금으로 수취하게 되고,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200만 온스의 금을 대금으로 수취하게 된다. 결국 미국은 금 50만 온스에 해당하는 무역수지 흑자를 얻게 된다. 하지만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금을 수취할 수 없다. 무역수지 흑자를 본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금을 수취하면, 미국 내 통화량(달러, 종이)이 증가하고, 달러가 많아지면 물가가 상승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발생한다. 그 결과 미국산 밀의 가격이 비싸지고 밀의 수출이 감소하기 때문에 무역수지 흑자 폭이 감소한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떨까. 무역수지 적자를 본 영국이 미국에 금을 지급하면, 영국 내에서 유통되는 통화량(파운드, 종이)이 감소한다. 파운드가 감소하면 물가가 하락하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발생한다. 그 결과 영국산 농기계의 가격이 싸지고 농기계 수출이 증가하기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 폭이 줄어든다. 결국 양국의 무역수지가 균형에 이를 때까지 미국의 밀 수출은 감소하고 영국의 농기계 수출은 증가한다.

금본위제의 장단점

대항해 시대를 거쳐 제국주의 시대에 완성된 금본위제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예측가능한 환율과 상당한 정도의 안정성을 제공했고, 정부가 채무 조달을 위해 지폐를 남발하고자 하는 유혹을 막았다. 금이 화폐를 뒷받침함에 따라 화폐에 대한 신뢰감을 줬고, 국민에게 화폐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줬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화폐를 ‘명예와 품위의 상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대 사람들은 귀금속만 돈이고, 종이는 귀금속이 뒷받침되는 경우에만 돈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금본위제는 정치인들의 변덕으로부터 통화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금본위제는 전쟁과 함께 발생하는 무역의 붕괴에 대단히 취약했다. 또 금본위제는 화폐의 양을 유한한 상품(귀금속)에 연계시켰기 때문에, 화폐의 공급량을 경제 규모에 맞게 적절하게 조정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국민경제를 금의 공급량 변화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대규모 광산이 발견되거나 채굴 기술이 개선되면 통화 공급이 너무 많아져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었다. 한편 금의 공급량이 경제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에는 금값이 너무 비싸지기 때문에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부분은 금본위제를 모방한 비트코인의 화폐성을 제약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닉슨의 불태환 선언

현대적 화폐 시스템, 즉 관리통화제도는 종이를 돈으로 사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자연스러운 역사적 진보의 결과가 아니라 강대국의 탐욕으로 불타버린 금본위제의 잔해다. 금본위제도는 화폐 가치를 직접 금의 가치에 연동시키기 때문에 금고에 쌓아높은 금덩어리가 종이돈을 안정시키는 닻의 역할을 한다. 최근 신종 화폐처럼 취급받는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금본위제의 금의 자리에 종이(달러)를 갖다 놓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현대적 화폐제도는 금본위제에서 금을 뺀 것이다. 종이돈은 닻을 잃은 배처럼 대내가치(구매력)와 대외가치(환율)가 끝도 없이 출렁인다. 우리가 닻을 잃게 된 계기는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불태환 선언, 즉 ‘유럽 국가들이 달러를 제시하고 금 태환(교환)을 요구하더라도 미국은 더 이상 이에 응하지 않겠다’는 국가부도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