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호안투자자문업체 대표가 5월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호안투자자문업체 대표가 5월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뉴스1

150년형. 2009년 ‘폰지 사기의 제왕’으로 불리는 미국의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내려진 형량이다. 그는 후속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주는 폰지 사기로 175억달러(약 23조4412억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남겼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이사장까지 지낸 월가 거물은 지난 2021년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가조작 사태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 증시를 둘러싼 여러 환경이 주가조작을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같은 금융 선진국 역시 주가조작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국내처럼 작전 세력이 활개를 치지는 못한다. 높은 형량과 금융 당국의 강력한 권한, 형사처벌 등 일벌백계가 가능한 다양한 제재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는 5월 9일 검찰에 체포돼 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시세 조종과 미등록 투자일임업, 범죄수익 은닉 혐의를 받는다. 범죄수익 은닉이 형량의 하한이 가장 높지만, 이마저도 징역 5년 수준이다. 대법원 양형 기준을 적용해도 최대 15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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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형량에 시세조종 부당이득액 산정도 어려워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불공정거래로 인한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형량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벌금형은 범행으로 얻은 이익의 3~5배로 계산한다. 문제는 부당이득액 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이 없거나 산정하기 곤란한 경우 벌금액 상한은 5억원이다. 이득액이 정확히 계산되지 않으면 법원은 ‘부당이득 액수가 불명확한 경우 위반자에게 유리하게 산정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주가조작으로 인한 거품이 터지면서 상장사 8곳의 시가총액(이하 시총)은 8조원 넘게 증발했다. 주가조작에 가담하지 않은 투자자들도 큰 손해를 입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 기준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의 이득액은 최대 징역 15년까지 양형 기준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잃은 돈이 모두 부당이득액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을 지낸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2018년 작성한 논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범죄의 부당이득 산정기준’에서 “불공정거래 범죄로 인한 부당이득액 규모를 정확히 계산해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일정 기준에 따라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도록 실제 수치에 근접한 ‘추정 수치’를 계산해 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자본시장법을 어겨 징역형을 받는 비중도 크지 않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접수된 피의자 222명 중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57명으로 25%에 불과하다.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각각 26.5%, 21%를 차지했다. 징역형 비율은 2020년(35.9%)과 2019년(22.3%)에도 높지 않았다.

형사처벌로는 한계…과징금 등 행정 제재 도입해야

라 대표가 같은 범죄를 미국에서 저질렀다면, 여생을 모두 감옥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 미국은 유기형 상한이 없고, 범죄마다 형을 더하는 ‘병과주의’를 택하기 때문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근본 형량도 강하고, 유기형의 상한도 없다”며 “또 병과주의를 택하고 있어 모든 혐의를 더하면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형량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형량뿐 아니라 다양한 제재 수단으로 주가조작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징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형사처벌보다 법 위반 행위로 취득한 이익 환수와 위반 행위 억제, 빠른 구제를 주목적으로 한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금융 당국은 과징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해당 국가들은 복잡하고 엄격한 형사 절차보다 비형사적 규제가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금융 선진국들은 이 밖에 △자본시장 거래 제한 △임원 선임 제한 △제재내역 공개 등을 활용하고 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피 한 방울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7억달러(약 9376억원)를 끌어모은 엘리자베스 홈스는 2016년 사건이 발생했지만, 2022년에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며 “경제 사범을 형사 처벌로만 조치하려면 한계가 분명한 만큼 과징금 등 다양한 제재 수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남부지검이 수사한 빗썸 실소유주 의혹을 받는 강모씨와 J사 사주 김모씨, H사 회장 등에 대한 판결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횡령 및 배임 외에도 시세조종 혐의를 받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김모씨 등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을 경우 ‘역시 한국은 주가조작은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겨 다른 인수합병(M&A) 세력들도 활개를 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총 작은 기업 너무 많아…금융 당국 권한도 적어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증시가 주가를 조작하기 수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시총이 낮은 종목들이 많아 적은 돈으로도 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 5월 12일 기준 2712개의 상장 주식 가운데 시총이 100억원 미만은 89개, 500억원 미만은 532개, 1000억원 미만은 1149개에 달한다. 이번 주가조작 대상이 된 상장사 8곳(대성홀딩스·선광·다올투자증권·다우데이타·삼천리·하림지주·세방·서울가스)도 시총이 적은 편이다. 주가조작으로 주가가 오르기 전인 2021년 초 기준 8개 종목 평균 시총은 3900억원 수준이다. 가장 시총이 적었던 선광은 1800억원에 불과하다. 유통 주식 물량은 더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가조작에 필요한 돈은 더 작아진다.

주요 국가들에 비해 금융 당국 권한이 적은 점도 이번 사태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수사 권한이 없다’는 사실이 금융 당국의 안일한 태도를 불렀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증권 규제기관으로서 중심 역할을 한다. SEC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 제재, 고발 권한을 모두 갖고 있다. 법 위반자에게 민사·행정 제재를 가하고, 검찰에 통보해 검찰 기소로 형사 제재를 유도하기도 한다.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시장남용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법적 조사권과 강력한 집행 권한 및 광범위한 징계권을 갖고 있다. FSA는 민사·행정 제재뿐 아니라, 독립적인 형사소추권을 갖고 있어 필요시 FSA가 직접 법원에 형사 기소를 할 수 있다.

남 연구위원은 “금융 범죄는 금융 당국이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 SEC가 기소권을 갖고 있고, 영국이나 일본도 금융 당국이 한국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며 “한국은 금융 당국 내 특법사법경찰 제도로 보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