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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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에서 이뤄진 대량 매도로 8개 종목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한 지 한 달째. 유명 가수도, 기업 회장도 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이른바 ‘SG 사태’는 점점 더 오리무중에 빠지는 모양새다.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실제로 작전 세력을 색출해 내고 처벌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당면하게 될 가장 큰 현실적 문제는 작전 세력을 가담 정도에 따라 구분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피해자 같은 옆집 아줌마가 사실은 가해자로 판명될 수 있는 것이 작전이기 때문이다. 만약 작전 세력의 주식 매매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투자금을 맡겼다 하더라도 어떻게 투자금이 불법적으로 집행되는지 알았다면 투자자들도 주가 조작 공범이 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SG 사태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는 부활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2020년 해체된 뒤 금융투자 사기는 그야말로 활개를 쳤다. 그러나 금번 SG 사태에서 문제가 된 미등록 투자일임업과 무인가 투자중개업 등 불법 금융투자업이 적발돼도 금융 당국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며 금융 사기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전관 특혜 논란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금번 SG 사태에서도 금융위원회에서 수사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이 금융시장 감시가 느슨해지니 합법인지 불법인지 아슬아슬한 형태의 금융투자업이 만연하게 됐다. 예를 들어 장외 주식매매와 같이 법의 규제가 애매한 사각지대에서는 업계가 자발적으로 합법의 테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에 적발된 무인가 투자중개업체는 몸값이 몇억원에 달하는 금융위원회 출신 전관 로펌 변호사를 고용해 업계의 관행을 깨고 매매하는 등 앞장서서 물을 흐려놓았다.

안타깝게도 금융 사기 수법의 진화 속도에 비해 금융 당국의 규제는 한발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투자자가 알아서 작전을 피하는 수밖에 없으니, 투자자는 더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고액 자산가도 당하는 금융 사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금융 역사상 금융 사기를 당한 투자자들이 투자 지식이 없었다거나, 유독 욕심에 눈이 어두웠던 것은 아니었다. 2020년 사모펀드 사태 때도 사모펀드에 가입한 투자자 대부분은 투자 경험이 많은 고액 자산가였다. 폰지(다단계) 사기를 저지른 운용사마저 거액을 미국 펀드의 폰지 사기에 당했을 만큼 투자 사기는 피해자의 투자 지식이 많고 적고를 가리지 않으며, 보유 재산이 많고 적고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최근 드라마 ‘카지노’에서 주인공 차무식만큼이나 인기를 끌었던 ‘호구’로 불린 한 등장인물은 이러한 점에서 무척 현실적이다. 그는 중견기업의 대표이사지만, 차무식의 영업에 당해 도박에 중독돼 가랑비에 옷 젖듯 재산을 조금씩 잃기 시작해 결국 파산에 이른다. 차무식의 능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서사적 장치겠으나, 현실에서도 있을 것만 같은 소재라서 시청자의 공감을 더 많이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금융 사기는 가장 안 당할 것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대범하게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투자 규모가 작든 크든 금융 사기 수법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아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투자자를 속인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투자자에게 작은 성공을 쉽게 맛보게 해서 신뢰를 얻어가며 점점 판을 키운다. 물론 투자자를 현혹하는 사기 수법은 끝없이 진화해 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몇몇 유사 투자자문업체나 무인가 투자중개업체의 홍보물을 보면 그 수법이 너무 교묘해서 업계 전문가가 봐도 그 의도를 한눈에 간파하기 어려울 정도다.

예를 들면 판매사로부터 자사 펀드 판매 정지를 당한 자산운용사가 앞으로는 고객의 펀드 수수료를 절감해 주기 위해 펀드 판매를 직접 하겠다고 태연하게 언론 홍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또 만기 한 달짜리 펀드를 출시해서 고객에게 최단기간에 고수익을 제공하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해 투자자를 모은 뒤 실제로는 운용사의 불법 운용 행위에 그 펀드를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투자자 모집 수단도 과감해져서 SG 사태에서 밝혀졌듯이 불법 운용업체는 전직 프로 스포츠 선수를 동원해 투자자를 은밀하게 모집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유튜버는 투자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

요즘에는 대중에게 마수를 뻗치는 금융 사기 채널들도 너무 많아지고 다양해졌다. 각종 소셜미디어(SNS), 블로그, 유튜브 등에는 투자 정보가 범람 중이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시대다. 만약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를 읽고 투자가 잘못될 경우 ‘책임지라’며 증권사 앞에 드러눕기라도 할 수 있지만, 유튜버의 말을 듣고 투자를 잘못했다면 어디 가서 호소할 수도 없다.

필자는 앞서 전편에서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의 위상이 사뭇 달라진 최근 투자업의 트렌드에 대해 다뤘다. 전편에서 서술했듯이 증권사 애널리스트나 운용사 펀드매니저 등 제도권 인력은 점차 이탈하고 있는 반면 새롭게 부상한 비제도권에는 양질의 인력이 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비제도권의 정보력과 전문성이 향상되다 보니 대중이 간편한 수단으로 고급 정보에 접근하기가 수월해진 건 장점이다. 그러나 정작 모두가 편해진 만큼 권리를 누리는 이들만 있고 책임을 지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당연하게도 유명 가수도, 유명 유튜버도 책임지지 않는다. SG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투자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모든 ‘투자자 유의 사항(Disclaimer)’에 적혀 있듯이 아무리 투자는 투자자의 책임이라지만 투자 정보는 그 파급력이 남달라서 사기 위험이 높을 뿐만 아니라 선의로 관리해도 금융 사고가 발생하기 쉬워 법의 규제가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는 모든 공식적 및 비공식적 활동을 법으로 규제받는다. 최근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를 대폭 강화하며 애널리스트들에게 ‘제발 사고만 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분위기다. 해외 학회 참석 금지, 해외 탐방 금지령을 내리는 곳들도 있을 정도다.

반면 유튜버는 민감한 투자 정보를 자유롭게 전달하는 데 아무런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투자자는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보면 투자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답답하고, 유튜버를 보면 신뢰가 안 가서 불안할 것이다. 어찌 보면 요즘 시대의 투자자는 정보가 많아 편리해지기는 했어도 오히려 금융 사기에 쉽게 노출되다 보니 막상 투자 현실이 녹록지 않은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는 이 시대의 투자자에게 교훈을 남긴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노래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귀를 막고 몸을 결박했듯이 투자자들도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않도록 귀를 막고 몸을 결박하는 수준의 철저한 정신적 무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