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만 
조선비즈 증권부장
‘지금 부자들은 배당주에 
투자한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트렌드 2021(공저)’ 저자
안재만 조선비즈 증권부장
‘지금 부자들은 배당주에 투자한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트렌드 2021(공저)’ 저자

한 자산운용사 대표이사가 2022년 말쯤 친하게 지내던 증권사 임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임원은 “삼천리 주가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기업 관계자 모두 만났는데, 주가가 오를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 혹시 어떻게든 공매도를 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가능하면 공매도하라)”라고 말했다.

이 운용사 대표이사는 “알아봤는데 삼천리는 코스피200 종목이 아니어서 그 어떤 방식으로도 공매도를 칠 수 없었다. 아쉬웠다”고 전했다.

또 다른 펀드매니저 김모씨도 삼천리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삼천리 때문에 다소 불쾌한 경험을 했다. 그는 올해 초 설 연휴 가족 모임에서 장인으로부터 “자네, 삼천리는 얼마나 가지고 있나”는 말을 들었다. 김씨가 “하나도 없는데요”라고 답했더니, 장인은 혀를 끌끌 차며 “주식으로 먹고산다는 녀석이, 요즘 삼천리가 얼마나 잘 오르는지 아느냐”고 했다고 한다. 당시 삼천리는 40만원대 후반으로, 1년 전만 해도 9만원 선이었던 주가가 폭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도시가스 업계에 있는 처남이 매형을 도왔다. “삼천리 그거 말도 안 되는 주가라고 하던데요? 저 거기 직원 아는 사람 있는데, 자기네 회사 주식 있으면 다 팔라고 했어요. 자기들도 ‘공매도하고 싶다’고 한다더라고요.”

한때 가치주의 대명사, 저평가에 우량주를 좋아하는 수많은 펀드 매니저가 추천했던 도시가스 회사 삼천리가 주가조작의 대상이 되면서 그 여파로 3일 연속 하한가(나흘간 75% 추락)라는 희대의 오명을 쓰게 됐다.

주식시장이 시작된 이래, 아니, 거래라는 활동이 시작된 이래 조작이나 작전 같은 행동은 늘 있었기에 이번 사태 또한 언젠가는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인식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짚어봐야 할 포인트가 있기에 삼천리(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좋아했던 가치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이미지 크게 보기

삼천리, 아직 비싸다는 평가 많아 

일단, 삼천리는 어느 정도가 적정 주가일까. 주가 폭락 이후 수많은 개인 투자자가 뛰어들어 5월 9~15일 기준, 계속 13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직 비싼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 평가다.

삼천리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갖고 있지만, 지난해 5월 일찌감치 보유 의견(사실상의 매도)을 냈던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의 보고서를 보자. 그는 당시 삼천리 주가가 16만원까지 오른 상황이었지만, ‘오버슈팅’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썼다. 황 연구원은 당시 목표 주가 11만원을 제시했다. 도시가스 사업이 견조하고, 보유하고 있는 도시가스 배관 시설이 중·장기적으로 수소 사업에 쓰일 수 있고, 현금이 많고, 신사업 기대감이 크고, 자동차 유통업과 요식업마저 잘되고 있지만(이 사업들은 에너지 사업과 동떨어져 있어 진출 당시 핀잔을 받았다), 그럼에도 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황 연구원은 이후 삼천리 주가가 30만원대로 폭등한 상태에서도 목표 주가 11만원을 유지하는 ‘곤조(일본어로 근성을 의미)’를 보였다.

삼천리나 서울도시가스, 대성그룹 천연가스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 회사들은 설령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다고 해도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가 아니다. 재고를 잔뜩 끌어안고 있어 유가가 오르면 재고평가이익이 생기는 정유사와는 사업 방식이 다르다. 천연가스 가격에 맞춰 도시가스 도입 단가와 판매 단가가 결정되기에 중간 마진만 챙기는 구조다. 가치주를 좋아하는 펀드매니저들이 추천해 왔듯이, 크게 쇼크 먹을 일이 없어 좋은 주식인 것이다. 깜짝 서프라이즈 따위는 없다.

5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5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생각해 볼 것 세 가지…목표 주가, 공매도, 피라미드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우리는 투자할 때 적정 주가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대놓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증권 업계에도 삼천리에 ‘물린’ 투자자가 있다. 그는 “많이 먹었다고 생각해서 팔았다가 그 이후에도 계속 오르니 뭔가가 있는가 싶어서 다시 샀다. 이후 폭락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대부분 전문가는 삼천리를 허리, 혹은 어깨쯤에서 이미 팔았다. 가치주를 좋아하고 주식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한 운용사 대표이사는 삼천리 주식을 고점 대비 60% 가격에 팔았다고 한다. 그는 “미리 생각해 놓은 적정 주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 가격이 왔을 때 매도했다. 처음 팔았을 때는 팔고 나서도 계속 오르니 아쉬웠지만, 사실 이는 모든 투자자가 하는 생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아주 ‘일찍’ 팔았다. 지난해 초 10만원대 중반 가격에 모두 매도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모두 꼭지에 팔고 싶어 하지만, 그게 어디 쉽냐”면서 “목표 주가를 터치했으니 팔았던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발언을 되짚어 보면, 이번 사태가 낳은 교훈은 분명하다. 개인 투자자들도 목표 주가라는 개념을 더 확실히 가져야 한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삼천리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 중 ‘이 주식의 실질 가치는 100만원 이상이다’라고 생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냥 많이 오르기에 샀을 뿐이다. 많이 오른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주식을 사면, 거품이 꺼질 때 탈출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펀드매니저들은 비록 너무 일찍 판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현재 주가와 비교하면 많은 이익을 냈다. 목표 주가라는 개념이 있는 개인 투자자들만이 먹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공매도다. 삼천리, 서울가스, 대성홀딩스, 다우데이타 등은 특히 기관이 많이 매매했던 종목이고, 이 종목은 코스피200이나 코스닥150에 편입돼 있지 않아 기관들은 공매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공매도가 전면 재개돼 있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과열이라고 생각하면 일부 기관은 비싼 대차 이율을 물고서라도 주식을 공매도 쳤을 것이고, 주가가 조금이나마 진정돼 라씨 일당(주가조작 세력)은 피곤했을 것이며, 지금처럼 대규모 피해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종목들은 거래량이 많지 않고, 대주주가 대차(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려주는 것)에 나서지 않는 이상 공매도 또한 활성화하진 못했을 것이나, 어쨌든 공매도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았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공매도의 존재 목적 첫 번째가 바로 과열 억제다.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짚고 넘어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의 모든 작업은 끝이 있다는 점이다. 설령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지분을 팔지 않았어도 늦어도 올해 상반기에는 폭탄이 터졌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라씨 일당은 처음에는 자산가한테서만 돈을 받았으나 막판엔 청소부 등으로부터 온갖 돈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이게 바로 폰지 사기, 즉 다단계다. 아무리 거래량이 없는 주식이라고 해도 돈이 끊기면 적정 가격으로 돌아간다. 피라미드를 더 높이 올리려면, 맨 밑단에는 더 많은 벽돌을 쌓아야 한다. 라씨가 점점 더 많은 돈을 영원히 대지 않는 이상, 터질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