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스마트폰에서 가전, 자동차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Made In Japan) 제품’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는 제품 가운데 하나가 필기구다. 우리나라에서도 학생이나 사회인들 사이에 일본 볼펜이나 샤프펜슬의 인기는 여전하다. 필기구는 섬세한 손맛이 있는 소비재여서 ‘촉감’에 한번 길들여지면 다른 제품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디지털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일본은 장인의 손기술이 요구되는 ‘아날로그식’ 제조산업에선 경쟁력을 유지한다. 일본 대표 문구업체 미쓰비시연필(三菱鉛筆)은 1887년 창업 이후 품질이 뛰어난 연필, 볼펜 등 다양한 필기구를 생산하고 있다. ‘uni’ 브랜드 필기구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창업 150주년을 앞두고 ‘세계 최고 표현 혁신 기업’을 장기 비전으로 내세운 미쓰비시연필의 현재와 미래를 추적한다.


이미지 크게 보기

필기구 사업 136년, 해외시장서 돌파구

IT화와 저출산으로 어려웠던 일본 문구 시장은 지난해 6년 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사라질 걸로 보였던 잉크를 찍어 쓰는 구식 펜이나 만년필이 잘 팔리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문구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은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많지만, 아날로그 제품은 개인적 취미나 기록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쇠퇴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해외시장에서도 일본산 필기구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미쓰비시연필의 2022년도 해외 사업 매출은 전년보다 20% 증가했다. 유리 위에 글자를 쓰는 펜인 ‘포스카’ 판매가 특히 많이 늘어났다. 미국, 유럽에서 스트리트 아트, 크라프트 아트 용도로 사용되는 덕분이다. 회사 측은 “해외 매출을 지난해 300억엔(약 2970억원)에서 오는 2036년까지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1887년 연필 제조를 시작한 ‘마사키연필제조소’가 미쓰비시연필의 뿌리다. 이 회사는 연필을 시작으로 샤프펜슬, 볼펜, 사인펜 등 다양한 필기구를 제조·판매한다.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유니볼(uni-ball)’ 브랜드 볼펜 제품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1.5% 증가한 689억9700만엔(약 6830억원), 경상이익은 21.9% 증가한 101억2800만엔(약 1002억원)을 기록했다. 미쓰비시 재벌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기업이다. ‘미쓰비시(三菱)’ 상표 등록도 미쓰비시그룹보다 10여 년 앞선다. 

미쓰비시연필은 1901년 일본 최초로 양산형 연필 3종을 생산, 연필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1952년에 회사명을 ‘미쓰비시연필’로 정식 변경했다. 1980년대 초 수출에 나서 해외 비중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대표 브랜드는 우리나라에도 광팬이 많은 ‘uni’이며, 기업 로고로도 사용된다. 어원은 영어 ‘unique’다. 볼펜 제품에는 ‘uni-ball’ 명칭을 사용한다. 이 브랜드는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개개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필기구의 제조 노하우를 살려 1985년 화장품 사업에 진출, 펜 타입 화장품을 개발, 판매 중이다.

미쓰비시연필은 창업 150주년을 맞는 2036년까지 세계 최고 필기구 업체에 올라선다는 계획이다. 스하라 시게히코(数原滋彦·44) 최고경영자(CEO) 겸 사장은 ‘세계 제일 표현 혁신 기업’을 장기 비전으로 내걸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진 개성이나 재능 등 ‘독창성’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시게히코 사장은 “고객이 요구하는 가치를 계속해서 제공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항상 강조한다. 그는 젊은 경영인답게 지구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선 환경 보호와 사회 공생(共生)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해양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볼펜 몸체(케이스)를 만들고, 장애인과 환경 단체에 많은 기부를 하는 이유다.

스하라 시게히코(数原滋彦) 미쓰비시연필 최고경영자(CEO) 겸 사장. 사진 미쓰비시연필
스하라 시게히코(数原滋彦) 미쓰비시연필 최고경영자(CEO) 겸 사장. 사진 미쓰비시연필

고객에게 유일무이한 개성 제공하는 회사

시게히코 사장은 미쓰비시연필의 오너 가문 후예로 지난 2020년 부친 스하라 에이이치로의 뒤를 이어 경영 사령탑을 맡았다. 도쿄 출신으로 게이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노무라종합연구소를 거쳐 2005년 미쓰비시연필에 합류했다. 아날로그 필기구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회사가 지향하는 길은 어디일까. 최근 일본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미쓰비시연필의 제품들. 사진 미쓰비시연필
미쓰비시연필의 제품들. 사진 미쓰비시연필

회사의 장기 비전은.
“필기구는 안정적인 사업으로 매출이 갑자기 반 토막 나는 일은 없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 15년간 일본 인구가 10% 정도 줄어드는 데다 디지털화 영향을 감안하면, 지금대로는 안 된다. 

미쓰비시연필이 고객에게 제공해 온 가치는 ‘독창성’이다. 조부 스하라 요지는 1950년대에 당시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새우갈색(えび茶色)에 와인레드를 섞은 색상을 채용하고,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연필이란 의미를 담아 브랜드 이름 ‘uni’를 만들었다. 유일무이한 개성이 우리가 고객에게 제공해온 가치이며 앞으로 지향하는 ‘모습’이다.”

앞으로 경영 목표는.
“‘세계 제일 연필을 만든다’는 조부의 강한 의지는 부친 스하라 에이이치로에게 계승됐다. 부친이 취임했을 당시 수출은 회사 전체 매출의 10% 남짓이었다. 그래서 세계로 나가려는 의지를 담아 ‘세계 제일의 필기구 업체’를 목표로 내세웠다. 여기서 ‘세계 제일’이란 매출이나 이익의 숫자가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해 세계 최고 ‘Most Admirable Company(존경받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선대 사장은 이런 철학으로 33년간 회사를 경영했다.”

‘세계 최고 표현 혁신 기업’ 의미는.
“필기구 제조 기업의 틀을 넘어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회사의 기업 이념에 ‘새로운 기술로 개개인의 독창성(개성)을 빛내 세계를 물들이고 싶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것이 미쓰비시연필의 존재 ‘이유’다. 우리 회사는 오래전부터 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필기구 업계에서 연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회사는 우리밖에 없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개성의 표현으로 이어질 걸로 확신한다. 개개인은 독특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개성을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 회사의 필기구다. 그 결과로 사회에 공헌하고 세계를 물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기업 이념을 ‘북극성’으로 표현했는데.
“전임 사장은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모두를 이끌어가는 스타일의 경영자였다. 2020년에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 부친에 비해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자각, 비슷한 스타일로 가면 회사가 방향성을 잃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표가 되는 ‘북극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중장기 비전과 기업 이념을 만들었다. 회사 내에서 성과를 내는 직원은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늘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같은 일이라도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북극성’이다.”

2036년까지 매출 1500억엔(약 1조4850억원) 달성이 가능한가.
“일본의 인구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지금 같은 경영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결국, ‘기술력’이 매우 중요하다. 기술은 기본이며, 동시에 무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기술력을 더욱 연마하고 활용해 경쟁사와 차별화할 것이다. 정량적인 수치뿐 아니라 정성 목표도 있다. ‘세계 최고 표현 혁신 기업’이다. 미쓰비시연필을 구성하는 개성 넘치는 3000명의 직원과 함께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