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사전 준비는 위기 대응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하다고 인지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위기관리 사전 준비를 조직 전반에 걸쳐 준비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위기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고, 어떻게 발생할 것인지 예측이 어려운 일인데, 기업의 자원을 미리 투입해야 한다는 것은 별도의 의사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통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결정 아니다”
우선, 위기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때, 사실(fact) 정보와 인식(perception) 정보를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인식과 현실 간 차이가 있는 경우, 승리하는 것은 인식이라는 점을 기억해 커뮤니케이션의 범위와 강도를 결정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위기를 잘 해결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진정성을 가졌다고 하지만, 사실 기업의 ‘외부 세계’에선 그것을 알 수 없다. 오히려 그 노력이 너무 늦고 성의가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다. 상황이 더 악화하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을 가할 것이고 대응 조치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해당 회사를 위기로 더욱 몰아갈 것이 틀림없다.
만약 사람들이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조금 외부의 인식 입장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모든 조치와 행동이 얼마나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를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위기에 처한 기업은 위기와 관련해 공중에게 알려야만 하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모르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이유로는 위기가 알려지면, 상황을 더욱 통제할 수 없고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위기관리 현장에서 자주 겪게 되는 상황이 사건·사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 언론에 언제 알릴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괜히 조용히 지나갈 수 있거나 특정 언론에 알려진 것으로만 끝날 일을 많은 사람에게 ‘홍보’하는 꼴이 되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전략적 의사결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매 순간 일정한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발생한 사건·사고의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위기에 대한 우리 입장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은 그냥 스스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음을 알리고,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는 것이 먼저다. 여기서 메시지는 반드시 고도의 전략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작성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고 위기와 관련된 이해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돼 뉴스가 나오고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주장과 의견이 소셜미디어(SNS) 공간에 회자될 수 있다. 위기 커뮤니케이션 목적은 그 하나하나에 대한 대응 이전에 사람들에게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알리는 것임을 명심하자. ‘전략적 침묵’이 필요한 상황이 있지만, 위기 커뮤니케이션 실패 방지법은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견인하는 것이다.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실패 사례
지난 3월, 유통 할인점에서 인기가 많은 카스텔라 빵을 수입 판매하는 한 업체는 돌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를 통해 유해 물질이 기준치 몇 배가 초과돼 판매 중지 및 회수 조치를 취한다는 결정 통보를 받았다. 며칠간 해당 내용의 뉴스가 쏟아지고 소비자의 혼란이 가중됐다. 업체는 해당 유해 물질이 검출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다른 검사기관을 통해 재검사를 했고,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그 검사 내용을 바탕으로 식약처의 판매 중단과 회수 조치는 철회됐지만, 이와 관련한 내용의 기사는 거의 게재되지 않았다. 그사이에 해당 제품은 유통 매장에서 다 빠진 상황이었고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으니 다시 매장에서 판매해 달라는 요청은 반영될 수 없었다. 이미 소비자들 사이에선 그 제품에 대해 ‘먹어도 되나?’라는 부정적 인식이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기업 입장에선 억울한 상황이지만, 이 회사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은 분명 실패했다. 그 기업은 유해 물질 ‘검출 여부’에만 집중했다. 검사기관을 찾아 제대로 검증은 했지만, 그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략적이지 못했다. ‘제품이 안전하다’라는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할 메시지를 강하게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속적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지속적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해야 한다. 위기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정보는 시간에 따라, 상황 전개에 따라 새롭게 생성된다. 그리고 잘못되거나 애매한 추측성 정보도 뒤섞여 수집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지속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위기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실무자는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고 투명하게 무엇을 말하라는 것이냐”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지속적으로 우리가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는 것은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환경적 위기라면 해당 지역 시민과 이해당사자의 안전을 위해 위험 요인을 통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모르고 있는 것,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파악돼야 하는 사실들, 취하고 있는 조치의 내용 등을 일정한 브리핑 시간을 약속하고 그 시간 단위로 반복적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해야 한다. 해당 시각에 다른 정보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추가 정보가 없다는 것과 문제 해결을 위해 전사적으로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까지 전달한다. 이를 통해서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위기 상황을 다루고 위기 상황에 대한 메시지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생한 사고가 예상 가능하고 피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커뮤니케이션 내용을 다르게 구성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보안 기술은 산업계 최고 수준이었다”라는 식의 문장으로 시작되는 위기 입장문은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전형적인 실패 형태다. 그렇게 최고 수준인데, 왜 그 일이 발생했지라는 반대 질문을 만드는 역효과만 있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위기 상황에서 핵심 가치는 책임 있고 윤리적인 가치다. 생명, 건강, 환경보호, 안전, 피해 회복, 정상화, 지속가능성 등이다. 발생한 사건·사고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부정적 영향을 구체화하고 억제, 감소시키기 위해 어떤 조처를 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기업의 명성을 지키고 브랜드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지를 따져야 한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이란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받지 않는 것이다. 기업의 위기에 대한 대응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