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은 5월 4일(이하 현지시각)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의 3.50%에서 3.75%로 25bp(1bp=0.01%포인트) 인상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금리 인상 발표 이후 “가족을 먹여 살리는 비용이 치솟아 새로운 고통이 되고 있고, 특히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한 이들이 먹는 데 돈을 훨씬 더 많이 써야 한다”면서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ECB는 치솟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하 인플레)에 맞서 작년 7월, 11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하는 ‘빅 스텝(big step)’을 실시한 데 이어, 작년 9월과 10월에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75bp씩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강행했다. 이후 지난해 12월부터 세 차례 연속 다시 빅스텝을 진행했고, 이번엔 기준금리 인상 폭을 25bp로 낮추면서 인상 속도 조절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작년 초부터 시작된 인플레를 막기 위해 ECB가 더 일찍 금리 인상에 나섰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ECB 초대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오트다르 이싱은 5월 5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전부터 이미 유럽 지역에선 인플레가 진행 중이었다. ECB가 왜 오랫동안 이 위험을 무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필자 역시 칼럼을 통해 ECB를 비롯한 중앙은행들의 실책을 거론하며, 중앙은행들이 대중과 소통을 통해 폐쇄적인 엘리트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왼쪽)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각국 재무장관들과 통화정책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크리스틴 라가르드(왼쪽)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각국 재무장관들과 통화정책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작년 물가 인상의 ① 기저효과(base effect)가 반영됨에 따라 당분간 서구 세계의 물가 상승률은 작년 수준 정도로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물가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물가 안정은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임금 상승, 지속되는 지정학적 긴장과 더불어 인구통계학적 추세 및 탈세계화 같은 장기적인 구조적 요인이 인플레 기대치를 중앙은행 목표치 이상으로 유지해 서구 경제와 사회에 장기적으로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이야말로 중앙은행의 단호한 조치와 커뮤니케이션 전략 개선이 필요할 때다. 정책 입안자들은 현재의 높은 인플레 원인과 결과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조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이러한 소통은 시장 참여자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시민 참여 역시 중요하다. 결국 시민은 인플레와 싸우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호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정책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유르겐 슈타크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
전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회 위원,
전 도이체 분데스방크 부총재
유르겐 슈타크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
전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회 위원, 전 도이체 분데스방크 부총재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상당한 통찰력, 자기비판 그리고 겸손이 필요하다. 과거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기를 지나치게 낮은 인플레로 잘못 진단하는 등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비대칭적인 통화정책으로 인해 금리는 계속해서 낮아졌고, 이로 인해 중앙은행의 잠재적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으며, 시장 왜곡은 심각해졌다. 저금리 정책과 대규모 ② 대차대조표 팽창(balance-sheet expansion)으로 인한 피해의 증거가 속속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들은 이런 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계속 미뤄왔다.

정책 입안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붕괴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의 심각성을 너무 늦게 인식했다. 중요한 경제 및 통화 지표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면서 물가 급등을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 없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했고, 시장과 대중은 2024년까지 금리가 낮게 유지될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에 노출됐다. 이러한 오진과 인플레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인해 중앙은행은 뒤늦게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시장 참여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시장의 왜곡을 초래했다.

한때 영웅으로 칭송받던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이라는 핵심 업무에서 벗어나 본연의 임무와 무관한 정책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유로존 국가 사이에서 중앙은행의 분석 실패와 전문적인 오판은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 및 정부를 향한 권고 신뢰성과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중앙은행은 그들의 통화정책이 (엘리트들만을 위한) 상아탑에만 머무르는 것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정책이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서 강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의 주된 역할은 은행 본연의 역할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 용어로 가득한 학술적 담론은 중앙은행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도움 되지 않는다. ECB는 2021년 전략 검토 보고서에서 향후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어렵지 않은 언어를 사용해 대중을 교육하면서도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ECB는 그 이후로도 그들의 언어를 자신들이 밝힌 방향으로 업데이트하거나 대중 친화적으로 변모하지 않았다.

유럽 20개국에 걸쳐 물가 안정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ECB는 대중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져 있기에 대중과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CB는 주로 영어로 소통하기 때문에 모든 구두 및 서면 성명은 각국 언어로 번역돼야 한다. 대중 소통 임무는 대부분 각국 중앙은행에 있지만, 이 역할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다. 유로화 이전 시대에는 중앙은행이 시민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소통해 현재의 ECB보다 나은 수준의 신뢰도를 유지했는데, 지금은 이러한 신뢰도가 결여돼 있다.

유로화가 도입된 지 거의 25년이 지난 지금 각국 중앙은행은 대중과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 각국의 통화정책 입안자들은 효과적인 정보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는데, 이는 일부 ECB 운영위원회 내부의 의견 불일치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견 불일치를 반대 의견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모으는 기회로 삼는 것은 ECB의 시작 단계에서는 논란을 낳을 수 있었지만, 성숙한 단계에 접어든 지금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같은 고물가 시대에 각국 중앙은행과 대중 사이의 연결성을 다시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은 불필요한 일들을 줄이고, 역량을 확보하고, 중앙은행의 핵심 임무에만 집중하며, 포괄적인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시작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과거의 실수를 책임지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대중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중앙은행들은 자기 성찰이라는 필수적 과정을 꺼리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호주 연방준비은행만이 과거의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고 시민 참여를 높이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다른 중앙은행은 호주의 사례를 따라야 하고, 그들의 과거 실수로 벌어진 충격을 해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경제 지표 증가율을 해석할 때 기준 시점의 위치에 따라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인 경제 지표가 실제보다 부풀려지거나 위축되는 등 왜곡이 발생하는 현상. 경기가 호황기일 때의 경제 상황을 기준 시점으로 해서 현재 상황을 비교할 경우 경제 지표는 실제보다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경기가 불황기일때 경제 상황을 기준으로 해서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경제 지표가 실제보다 부풀려지게 나타날 수 있다.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를 실시했다는 의미. 차변에는 모든 자산을, 대변엔 모든 부채와 자본을 기재해기업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는 기업의 대차대조표처럼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차변엔 자산, 증권, 금융기관에 의한 대출, 대변엔 부채, 현금 통화, 지준(reserves)이 존재한다. 경제 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때 중앙은행은 장기 금리 하락을 유도하고자 국채 등을 매입해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는데, 이러한 양적완화 정책 시행 시 중앙은행은 차변에 속하는 증권을대량 매입하기 때문에 대차대조표가 팽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