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0년 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카스텔로 디 베라자노. 2 카스텔로 디 베라자노의 오너인 카펠리니가 와인을 설명하고 있다. 3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협회 회장 조반니 마네티. 사진 김상미
1 1000년 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카스텔로 디 베라자노. 2 카스텔로 디 베라자노의 오너인 카펠리니가 와인을 설명하고 있다. 3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협회 회장 조반니 마네티. 사진 김상미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이다. 80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 와인은 남다른 개성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상큼한 풍미와 대비되는 탄탄한 질감이 반전 매력을 뽐내는가 하면 진하고 묵직한 것부터 가볍고 신선한 것까지 스타일도 다양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예전에 비해 맛이 한결 더 섬세하고 우아해졌다. 키안티 클라시코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지난 4월 토스카나를 여행하며 그 답을 찾아보았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바이오다이내믹으로 만든 와인

와인 산지라 하면 드넓은 평지에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상상하기 쉽지만 키안티 클라시코는 완전히 딴판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한중간에 자리한 이곳은 산으로 가득하다. 총면적 700㎢ 중 포도밭이 100㎢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산지의 대부분이 숲이다. 그래서 와이너리를 찾아가는 길도 순탄치가 않았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차로 달리자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포도밭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고도 남았다.

카스텔로 디 베라자노(Castello di Verrazzano)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1000년 전에 지어진 베라자노 성은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포도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7세기부터 베라자노 가문이 소유했던 이곳은 16세기에 북아메리카를 탐험한 조반니 디 베라자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카스텔로 디 베라자노의 오너인 루이지 카펠리니(Luigi Cappellini)는 “이곳에 숲이 많아 베라자노(이탈리아어로 멧돼지가 많은 곳)라는 이름이 붙었다.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어 맛이 신선한 포도가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베라자노의 사셀로(Sassello)를 맛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됐다. 싱싱한 야생 베리를 가득 담은 듯 와인의 산뜻한 풍미가 은은한 향신료 향과 어울려 입안을 경쾌하게 채웠다. 사셀로는 수확 철이면 포도밭에 날아드는 개똥지빠귀를 뜻하는데, 와인 이름처럼 포도밭에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청아한 새소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폰토디 포도밭 한편에 자리한 키아니나 소 방목지. 사진 김상미
폰토디 포도밭 한편에 자리한 키아니나 소 방목지. 사진 김상미

키안티 클라시코의 포도밭은 해발 150m부터 650m까지 다양한 고도에 위치한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주 품종은 산지오베제(Sangiovese)라는 적포도다. 똑같은 산지오베제도 기온의 차이 때문에 높은 곳에서 자라면 풍미가 섬세하고 낮은 곳에서 자라면 풍미가 진해진다. 따라서 고도가 다른 곳의 포도를 섞어 만들면 와인이 다채로운 맛을 품고 사셀로처럼 단일 밭의 포도로 만들면 그 밭의 특징을 오롯이 담는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협회 회장 조반니 마네티(Giovanni Manetti)는 키안티 클라시코의 독특함이 전 세계 어느 산지도 모방할 수 없는 이곳만의 특별한 지형과 자연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 유기농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와이너리가 60%에 이르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건강한 자연만이 지역적 특징을 제대로 살린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네티 회장이 운영하는 폰토디(Fontodi)도 이미 30년 전부터 바이오다이내믹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바이오다이내믹이란 유기농에서 더 나아간 개념으로, 지구상의 모든 것이 우주의 영향을 받는다고 믿고 달과 별의 움직임에 따라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점성술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 더 가깝다. 그래서 환경에 민감한 프리미엄 와이너리일수록 바이오다이내믹을 실천하는 곳이 많다.

폰토디는 농약이나 제초제 등 화학 물질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은 물론 포도밭 한편에서는 소도 방목하고 있었다. 온몸이 하얀 토스카나의 토착 소 키아니나(Chianina)인데, 이 암소의 분변을 발효해 퇴비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포도 수확이나 와인 병입도 달이 기울 때만 시행한다. 달이 차오를 땐 모든 것이 활발해지지만 달이 기울 때는 반대로 차분해지기 때문에 포도의 향과 당분이 응축되면서 맛이 더 좋아지고 숙성 중인 와인 속의 찌꺼기도 잘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마네티 회장은 “와인은 하늘과 땅이 만들고 자신은 보조자일 뿐”이라고 말하며 직접 와인을 열어 시음을 권했다. 건강한 자연이 생산한 와인의 진가는 맛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폰토디 와인은 기본급부터 풍미의 집중도와 복합미가 남달랐고 아로마, 균형, 보디감의 3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 폰토디, 키안티 클라시코. 2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3 카스텔로 디 베라자노,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 사셀로. 사진 김상미
1 폰토디, 키안티 클라시코. 2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3 카스텔로 디 베라자노,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 사셀로. 사진 김상미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레이블 읽기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은 고르기가 쉽다. 병목이나 레이블에 붙어 있는 검은 수탉 마크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수탉 마크가 없고 레이블에 키안티라고만 적힌 것은 키안티 클라시코가 아니다. 키안티도 산지오베제로 만든 토스카나산 레드 와인이지만 키안티 클라시코만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원조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등급을 알아두면 취향에 따라 와인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 레이블에 키안티 클라시코만 적혀 있으면 기본 등급이다. 과일 향이 신선하고 맛이 상큼해서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으므로 피자나 파스타처럼 캐주얼한 음식과 즐기기 좋다.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Riserva)는 24개월 이상 숙성시킨 와인으로 보디감이 묵직하고 풍미가 더 깊다. 최고 등급인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는 30개월 이상 숙성시켜 출시한 것으로 복합미가 탁월하다.

리제르바나 그란 셀레지오네는 육류에 곁들이기 좋은 스타일이지만 와인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양념이 너무 진하지 않은 요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등급은 단순히 숙성 기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등급이 높을수록 좋은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와인의 숙성 잠재력도 월등해 셀러에 장기간 보관했다 마시면 한층 더 우아한 복합미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