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우주인
카이스트 기계공학 학·석사,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 박사,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 사진 위즈덤하우스
이소연 우주인
카이스트 기계공학 학·석사,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 박사,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 사진 위즈덤하우스

여러 우주 시공간에 흩어져 사는 자아의 빅뱅을 그린 멀티버스(Multiverse)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메시지는 ‘어느 우주에서 만날지 모르니 다정하라’였다. 어느 날 나는 이소연의 에세이 ‘우주에서 기다릴게’라는 책 뒷면 표지 추천사에서 천문학자 심채경과 SF 소설가 김초엽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다른 우주에 사는 이들의 긴밀한 연대에 감동했다.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실제로 가보고 만져보고 두드려 본 공학도 출신의 우주인 이소연, 우주의 스케일과 흐름을 파악하는 자연과학자 심채경, 시공간을 추월한 상상의 이야기를 만드는 김초엽⋯. 

완전히 다른 차원을 사는 사람들임에도, 이들에게선 ‘다정함’의 삼위일체가 느껴졌다.

정권이 바뀌는 과정(노무현 정부에서 계획하고 이명박 정부 때 실행됐다)에서 일어난 우주인 사업 ‘손절’의 진실, ‘먹튀’ 프레임, 미국 시민권자라는 가짜 뉴스(이소연은 대한민국 국적자다)까지. ‘우주에서 기다릴게’라는 다정한 인사로 중력 그 넘어의 안부를 묻는 이소연 박사를 만나 물었다. 이소연은 2021년부터 혈액으로 말라리아 등을 판별하는 체외 진단 기기 회사의 해외 사업 부문을 맡아 미국에 거류 중이며, 올봄 잠시 방한했다.

이소연 우주인.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이소연 우주인.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책을 보면 터프하고 고압적일 것 같은 러시아 사람들이 당신을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에서도 남녀 차별이 심해서 놀랐는데 의외였다.
“(미소 지으며)사실 우주 비즈니스는 굉장히 남성 중심적인 성역이다. 성 역할도 분명하고 여성은 투명 인간 취급도 당한다. “넌 어차피 우주에 안 갈 거야.” “네가 가도 다른 사람이 다 해야 하니, 넌 웃기만 해!”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자기 딸은 그런 차별을 안 받았으면 하지 않나. 동양에서 온 중학생처럼 보이는 쪼끄만 애가 최선을 다하니까, 본능적으로 애틋함이 발동한 것 같다. 못할 줄 알았던 애가 해내고, 좌충우돌하면서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응원하는 마음이랄까. 나는 탁월하게 타고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약함이 오히려 강점이 된 것 같다.”

약함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힘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 거 아닐까.
“그런가? 나는 평생을 마이너리티(Minority·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소수자)로 살아서 그런 ‘약자의 자세’가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카이스트에서나 러시아에서나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떠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가만히 보면 그때그때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같다.
“(반색하며)물론이다. 무엇보다 힘을 빼면 좋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의도하는 바도 없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몸을 띄우는 거지. 일례로 매년 4월에 모여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유리스 나이트(Yuri’s Night)’ 행사도 그랬다. 시작은 냉전 시대 최초로 발사된 유인 우주선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기리기 위해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만든 모임이다. 한국은 내가 사비를 털어서 카이스트 친구들과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웃음). ‘술 한잔하면서 우주 얘기하자’가 다였다. 그런데 지금은 교복을 입고 유리스 나이트에 왔던 친구가 자라서 우주 스타트업 대표로 이 행사 후원을 한다. 그동안 욕도 많이 먹고 힘들었지만, 이런 결실을 보면 행복하다.”

무중력의 우주에서도 힘을 뺄 수 있나.
“하하. 우주선에서는 내려놓은 물건이 붕붕 떠다녀 찾으러 다니기 바쁘다. 유리가루 같은 게 호흡기나 귀에 들어가도 치명적이라 늘 긴장한다. 몸은 맘대로 제어가 안 돼서 ‘우주 바보’가 따로 없다. 고문받는 것처럼 신경과 근육이 늘어나서 키도 3㎝ 정도 커진다. 우주 멀미도 괴롭고, 뇌압이 높아져 두통이 심하고 중력이 없으니, 소화도 잘 안된다(웃음).”

그런데도 우주에서 찍은 모든 사진에서 다 활짝 웃고 있어서 신기했다.
“나는 과자 하나를 먹어도 좋아서 까르르 웃는 사람이었으니까. 오히려 우주에 다녀온 뒤의 일들을 감당하느라 시니컬(cynical)해지고 영혼이 좀 나갔었다.”

돌아온 후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 침묵하다)아침에 광주, 점심에 부산, 저녁에 인천… 빽빽한 스케줄들이 몇 년간 이어졌다. 그렇게 몇 년간 무대에 서서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면 번아웃이 온다. 나중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면서 ‘이러다 죽겠구나’ 경고가 오더라.

대한민국 우주인 사업의 목적은 공식적으로 두 가지였다. 첫째 우주인 배출을 통해 유인우주인 기술을 습득하고, 둘째 국민에게 우주 개발에 대한 관심을 넓힌다. 그런데 첫 번째 기술 개발 목적은 처음부터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

우주인 사업을 제안한 정부와 우주인을 보낸 정부가 달라서 예정된 좌초였다고 했다.
“항공우주연구원 소속으로 예산을 요청하기 위해 부처 관계자를 만나면, 기운이 빠졌다. ‘우주 다녀와서 유명해졌으면 됐지, 왜 자꾸 뭘 더 하려느냐’는 말을 들으니.”

관료 사회의 ‘손절’ 분위기가 우주까지 닿을 줄은 몰랐다.
“한쪽에선 과학기술계의 아이돌, 우주쇼를 만들고 싶어 했고, 다른 한쪽에선 이 사람은 과학자인데 왜 후속 실험을 안 하냐고 비난하고. 기획한 사람과 이어받은 사람이 서로 마음이 달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문제에 시니컬한 사람은 아직도 묻는다. 이소연이 우주인이라는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었느냐는 거다.
“엄청나게 엄밀한 심사를 거쳐서 대한민국 최고의 우주인이 뽑혔다고는 볼 수 없다. 3만6000명의 신청자 중 토너먼트를 거쳐 30명 안에 든 사람은 다 훌륭했다. 그런데 그조차 더 적합한 이가 독감에 걸렸거나 다른 사정 때문에 못 왔을 수도 있잖나. 기회의 많은 부분은 결국은 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항공우주연구원 의무 복무 기간 2년을 넘겨 4년을 근무한 후 이소연은 UC 버클리로 가서 경영전문대학원 석사(MBA) 공부를 마쳤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마음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감사하게 우주 경험을 나누고 있다.


다른 나라의 우주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나라마다 실정이 다르다. 일본 최초 우주인은 산속에서 농사를 짓고 베트남 최초 우주인은 연락도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여성 인권이 상징적이라 장관까지 했고, 캐나다 여성 우주인은 주지사, 오스트리아 우주인은 보잉 임원도 하더라. 어느 나라도 우주인의 인생을 국민이 결정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무엇이 눈에 밟히나.
“(미소 지으며)참 작은 한국… 내가 머물렀던 국제 우주정거장이 지구 주위를 도는 속력은 시속 2만8000㎞다. 그 속도로 돌아야 안 떨어진다. 지구 둘레가 4만㎞니까 90분마다 한 바퀴를 돈다. 돌면서 2~3분에 한 번씩 지나가는 나라 이름을 불러준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여러 번 불리는데, 한국은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나라가 사람 하나를 우주까지 보냈잖나. 그게 참 묘하게 뭉클하다.

우주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너희 나라 너무 쪼끄매’라고 할 때마다 내가 그랬다. ‘네가 아내한테 전화하는 핸드폰, 애들 데리고 다니는 자동차, 다 한국에서 만든 거야’라고 말이다. 러시아의 힘을 빌려 우주로 왔지만, 그보다 일상을 만들어 주는 기술을 가졌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2022년 6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발사체 누리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감동이 남달랐겠다.
“현장에서 부품 만지고 조립하며 로켓을 자식처럼 생각한 그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사실 당장 밥 굶는데 누가 로켓을 개발하겠나. 러시아는 땅에서 많이 터뜨려 봤다. 많이 터뜨려 본 놈이 더 좋은 로켓을 만든다. 스페이스X도 땅에서 많이 터뜨린다. 그런데 우리는 땅에서 한 번도 못 터뜨려 봤다. 왜? 터뜨릴 돈이 없으니까. 그런 악조건에서 한 번에 성공을 해낸 거다. 너무 놀랍다. 이제 한국은 1t 이상을 우주에 시험 발사할 수 있는 일곱 번째 나라가 됐다. 최초의 달 탐사선인 다누리호도 발사됐고.”

보통 사람들은 이번 생애 우주여행을 꿈꿀 수 있을까.
“아! 내가 죽기 전에 우주여행이 싸질 것 같지는 않다(웃음). 우주에서 3분 자유 낙하로 머물고 오는 데 몇십억 달러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가 민간 영역에서 피치를 올리고 있으니, 관광은 좀 더 두고 봐야지. 당장은 위성항법시스템(GPS), 위성 인터넷이 우주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유리 가가린에 이어 1962년 우주인이 된 첫 여성 테레시코바가 2006년 당신이 소유스 우주선 발사대로 갈 때 에스코트를 해주는 사진을 봤다. 근사하더군. 우주인들의 우정은 좀 더 특별한가.
“하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감도 비슷하지 않나. 우주인은 지금까지 600명 정도 된다. 우주를 다녀왔다는 것만 같고 다 다르다. 우주인 중에도 몰상식한 사람도 있고 꼰대도 있다. 모아놓으면 다양한 인간 군상이다. 회의하는 데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는 사람도 다 자기 나라에서는 영웅이다(웃음). 반면 미국, 러시아의 젊은 우주인은 숫자가 많아서 직업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가난한 나라는 자국에서 우주인이 움직이면 경찰이 호위할 정도지.”

대한민국의 두 번째 우주인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글쎄. 최초의 우주인이 왜 필요했나. 이것에 대한 답을 먼저 내야겠지. 처음에는 상징성이라도 있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정밀한 책임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모르겠다. 그 무거운 기회를 이어갈 정부, 정치인이 과연 있을지….”

대중에게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신은 2008년 지구 귀환 도중 사고로 불타는 소유스 우주선에서 간신히 살아나왔다. 혹시 그때 일을 가끔 생각하나?
“그때를 떠올리면 다양한 감정이 든다. 착륙 모듈과 궤도 모듈이 분리되지 않은 채 타면서 사막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런 사고를 당하고 살아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사고조사반 말로는 그 열에 5초만 더 있었어도 불타 죽었을 거라고 한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후, 우주는 그에게 명예로운 출장지로 남았다. 분 단위로 짜인 임무를 수행하느라, 공항과 호텔만 오가다 온 ‘빡센’ 출장처럼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눈에 담아 오지 못해,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출장지. 밤에 깨어 창밖을 바라보면 구부러진 지평선 너머 빨주노초파남보, 검은색으로 휘몰아치는 빛과 어둠의 심연에 가슴이 뛰었다고 이소연은 기억했다.


“정거장 안에서는 하루에 16번 해가 뜨고 진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 잊을 수가 없다. 그저 한 가지 생각만 든다. 운이 좋아 이 시대에, 지구에서 태어나 생명체로 한평생을 누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