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파란일까, 지각변동의 신호일까.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이 만든 쿠팡플레이가 지난 4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수에서 2위에 올라섰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앱 사용자 수 1위는 넷플릭스(1156만 명), 2위는 쿠팡플레이(467만 명), 3위는 티빙(411만 명), 4위 웨이브(293만 명)였다. ‘콘텐츠 명가’ CJ EMN의 자회사 티빙과 지상파 3사·SKT 연합군 웨이브가 후발주자한테 체면을 구겼다.
1100만 명에 달하는 쿠팡 와우 멤버십 회원을 등에 업은 쿠팡플레이는 OTT 앱 사용률에서도 3위에 올랐다. 와우 멤버십(월 4990원) 회원들은 일부 콘텐츠를 제외하고 무료로 쿠팡플레이를 볼 수 있다.
쿠팡플레이는 ‘SNL코리아’ 한 시즌에 120억원을 쓰고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영국 구단 토트넘 홋스퍼 FC를 100억원 들여 초청했다. 쿠팡이 연간 1000억원대 이상(추정)을 투자하면서 쿠팡플레이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쿠팡 특유의 ‘계획된 적자 경영 방식’인가. 쿠팡플레이의 생각법, 일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김성한 총괄디렉터, 이종록 스포츠 담당 상무, 윤앤드류 프로덕트 담당 상무, 조규동 마케팅 담당 상무 등 쿠팡플레이의 공격수들을 만났다. 김 총괄은 쿠팡 프로덕트 담당으로 일하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을 거쳐 쿠팡에 재합류한 인물. 이 상무는 SPOTV와 CJ ENM에서, 윤 상무는 그랩과 링크드인에서, 조 상무는 넷플릭스 싱가포르·서울 오피스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OTT를 하는 이유는
와우 멤버십이야말로 쿠팡 사업의 알파요, 오메가다. 무료 배송, 30일 무료 반품, 멤버십 전용 할인가 등 와우 멤버십 혜택 목록에 ‘쿠팡플레이 콘텐츠 무료 시청’도 있다. 가입자가 와우 멤버십 혜택을 자주 느끼게 하려면 OTT 서비스, 다시 말해 매일 접속해 보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게 쿠팡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놀라운 것은 쿠팡플레이팀이 일을 처리하는 속도다. 김성한 총괄은 2020년 10월 쿠팡 내 OTT팀을 꾸린 지 3개월 만에 쿠팡플레이 앱을 출시했다. 당시 10여 명에 불과했던 쿠팡플레이 팀원 수는 현재 150명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팡플레이 생각법
1│데이터로 공격 포인트를 잡는다
김성한 총괄은 로켓배송 효율화를 주도하고 데이터사이언스 조직을 이끌었다. A/B 테스트(여러 개선안 비교 실험) 등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을 중시한다. 김 총괄은 “스포츠 콘텐츠 제공 여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판단의 근거가 될 데이터부터 확보했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는 손흥민 선수가 출전하는 토트넘 경기부터 틀었다. 확실한 고객 반응 데이터가 나오자, 물량 공세에 나섰다. 쿠팡플레이는 올해도 K리그, 포뮬러1(F1),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온라인 독점 중계를 이어가고, 영국·스페인 프로축구 명문클럽 내한 경기 주최도 계획하고 있다.
2│“원래 그런 것 없다”
쿠팡플레이는 영화계 ‘불문율’도 깼다. 영화의 방영 순서는 극장→VOD(건당 결제)
→OTT→지상파다. 2022년 8월 3일 극장 개봉한 ‘비상선언’이 쿠팡플레이에서 추가 비용 없이 바로 공개됐다.
쿠팡플레이는 2022년 8월 29일엔 700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단독 공개했다. 또 같은 해 7월 손흥민이 출전하는 토트넘 홋스퍼 FC 초청 경기 티켓도 팔았다. OTT에서 영상이 아니라 경기 티켓을 파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게다가 경기 티켓을 예매하려면 쿠팡의 와우 멤버십에도 가입하도록 했다. 쿠팡 비회원에게 신규 멤버십 가입을 유도한 것이다. 까다로운 티켓 예매 과정에 구매자들의 불만이 폭발했지만, 이를 잠재운 것은 독점 콘텐츠의 위력이었다. 당시 와우 멤버십을 2990원에서 4990원으로 인상, 회원 이탈 우려가 있었는데, 손흥민 이벤트를 계기로 오히려 회원 수가 증가했다.
이종록 스포츠 담당 상무는 “쿠팡플레이에서 ‘원래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안 통한다”면서 “스포츠 다큐멘터리 제작, 경기 티켓 판매, F1 중계 등 기존 방송사에서는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3│‘갓팡’으로 검색…계산법이 다르다
지난 3월 쿠팡플레이는 아카데미 7관왕에 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3일 동안 1000원에 볼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3월 13일(현지시각) 수상작 발표 후 3일 만에 나온 이벤트였다. 조규동 상무는 이벤트 효과 측정을 위해 각종 정량적인 데이터도 보지만, 정성적인 데이터도 찾아본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갓팡(god+쿠팡)’과 이벤트 핵심 키워드를 조합해 검색하는 것이다. 갓팡은 쿠팡에 찬사를 보내는 인터넷 용어다. 조 상무는 “고객 감동 지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쿠팡플레이는 지난해 10월부터 F1 스포츠 경기 중계를 시작했다. F1은 시청자 수가 많지 않고 생중계 시간대도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광고 수익도 크지 않다. 인터넷TV 스타스포츠 채널이 유일하게 F1을 중계하다 채널 송출을 중단한 이유다. 쿠팡플레이의 계산법은 달랐다. F1 중계를 차별화 포인트로 보고 디지털 중계권을 사들였다. 한국어 중계까지 더하니 F1 마니아들이 쿠팡플레이로 몰려들었다.
물론 이런 시도가 다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쿠팡플레이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1년여간 취재하며 만든 다큐멘터리 ‘국대: 로드 투 카타르’는 큰 화제를 불러오지 못했다. 총촬영 시간이 8452시간에 달했지만, 공개 시점이 늦어진 탓이다.
4│고객군을 쪼개고 쪼개라
쿠팡플레이는 이른바 ‘프로덕트오너(PO)’ 문화가 강한 회사다. 서비스나 콘텐츠마다 PO로 불리는 담당자가 제작, 수급, 성과를 모두 책임지는 구조다. 윤앤드류 상무는 쿠팡플레이 웹과 앱을 책임진다. 그는 “영화, TV 프로그램, 스포츠 생중계에 이르기까지 볼 것이 많아지면서 고객이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탐색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고객을 특정 세그먼트(작은 그룹)별로 최대한 작게 쪼개고 머신러닝(기계학습) 등을 동원해 서비스를 개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 앱 초기 화면이 사용자마다 다른 이유다.
김 총괄은 “고객이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 올바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 그 관점에서 보면 쿠팡플레이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면서 “그 최전선에서 PO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플 클럽 나오나…보편적 시청권 침해 논란
최근 쿠팡이 특허청에 ‘쿠플 클럽(Cou-pangPlay Club)’ 국·영문 상표권을 출원했다. 쿠팡플레이가 OTT에 다른 서비스를 묶어 ‘쿠플 클럽’이라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플레이가 넘어야 할 숙제 중 하나는 ‘보편적 시청권’ 이슈다. 스포츠 경기 중계권을 천정부지로 올려 보편적 시청권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쿠팡플레이는 지난해 수백억원을 투자, 도쿄올림픽 온라인 단독 중계권 협상을 벌였으나, 최종 단계에서 철회했다. 보편적 시청권 제약 논란과 당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에 따른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격화하는 쿠팡-CJ 경쟁
전자상거래 스타트업 대표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쿠팡-CJ 경쟁 구도 분석 글이 큰 화제를 모았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은 즉석밥 ‘햇반’ 납품 단가(마진율)에 대한 이견으로 6개월째 갈등하고 있다. 쿠팡은 햇반, 비비고 등 CJ제일제당의 주요 제품 발주를 중단했고 CJ제일제당은 네이버쇼핑 등 다른 채널을 활용한 유통에 주력하고 있다. 이른바 ‘햇반 전쟁’을 두고 박종일 스카이랩 대표는 페이스북에 “쿠팡플레이와 쿠팡라이브의 확대는 티빙(OTT)과 CJ CGV(극장 사업), CJ오쇼핑(홈쇼핑)에 타격을 주고 쿠팡 물류 사업 확대는 CJ대한통운(물류)에 위협이 된다”면서 “쿠팡에서 ‘햇반’ ‘비비고’를 주문하지 못하는 사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올렸다.
쿠팡의 지난해 국내 e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약 24%(판매액 기준, 교보증권 집계)로 1위다. 쿠팡은 지난해 3분기부터 세 분기 연속 영업흑자를 내면서 창사 13년 만인 올해 첫 연간 영업이익(별도 기준) 달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쿠팡이 몸집을 키울수록 CJ, LG생활건강 등 제조 업체 사이에서 ‘반(反)쿠팡’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