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만 
조선비즈 증권부장
‘지금 부자들은 배당주에 
투자한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트렌드 2021(공저)’ 저자
안재만 조선비즈 증권부장
‘지금 부자들은 배당주에 투자한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트렌드 2021(공저)’ 저자

삼성증권은 올해 1분기 주요 증권사 중 영업이익 1위를 달성했다. 341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한국투자증권(2871억원), 미래에셋증권(2817억원), KB증권(2623억원), NH투자증권(2515억원) 등을 앞섰다.

증권사들이 더 의미를 부여하는 지배주주순이익(모회사의 당기순이익을 계산할 때 자회사 순이익을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만큼 반영한 수치)은 2526억원으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예상치를 44% 웃돌았다. 채권 운용 부문의 선전 덕에 운용 손익 및 금융수지는 3139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2851억원 늘었고, 국내 주식 수수료 증가 영향으로 순수탁 수수료는 전 분기 대비 42% 증가했다. 금융 상품 판매 수익 역시 전 분기 대비 11%, 인수 및 자문 수수료는 전 분기 대비 24% 증가했다.

삼성증권이 실적 1위에 오른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사태 이후 대부분 증권사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해 공격적으로 나설 당시,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경영했음에도 선두를 차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3만6000원대(5월 25일 기준) 주가를 기준으로 배당수익률도 7%대 중반에 달할 전망이다. 믿을 수 있고 듬직한 증권사라는 위상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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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관리 전문가 앉힌 삼성증권, 드디어 결실 

현재 삼성증권을 이끌고 있는 장석훈 사장은 2018년 삼성증권 주식 배당 사고 이후 갑작스럽게 직무대행 형태로 대표이사에 올랐다. 최악의 금융 사고 이후 대표가 됐기 때문인지 장 사장은 취임 이후 반복적으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63년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95년 삼성증권에 입사한 장 사장은 처음 팀장을 맡은 곳이 리스크 관리팀이었다. 이후 인사팀장, 전략인사실장, 인사지원 담당 임원, 삼성화재 인사팀 담당 임원, 이후 다시 친정인 삼성증권으로 돌아와 부사장을 거쳐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증권은 다른 증권사에 없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증권사는 투자심의위에서 다수결로 표결한다. 리스크 관리 담당 임원이 반대하더라도 상품 개발 담당이나 영업 담당, 대표이사 등이 찬성하면 상품을 팔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삼성증권 리스크 관리 담당 임원의 권한은 훨씬 막강하다. 모두가 찬성한다고 해도 반대하면 일을 추진할 수 없는 거부권(비토)이 있다. 삼성증권이 라임자산운용 및 옵티머스 사태나 CFD(장외파생상품거래) 부실 관리, 최근 KB증권을 중심으로 불거진 채권 자전 거래 및 통정매매, 타사 파킹 이슈 등을 모두 비켜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

백승목 리스크 관리 담당과 천정환 부동산PF본부장이 지난해 말 나란히 상무로 승진한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백 상무는 리스크 요인을 잘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천 상무는 메리츠증권 출신의 ‘선수’이면서도 삼성 문화에 어울리게 부동산PF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평가다.

장 사장이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글로벌 증시가 급락할 때, 이로 인해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삼성증권은 글로벌 증시가 휘청였던 2020년 1분기 말 기준으로 ELS 발행 잔액이 7조원대로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많았다. 자체 헤지(위험 회피)를 많이 하다 보니 손실을 전가하지 못해 타격이 컸다. 하지만 다행히 큰 잡음 없이 넘어갔으며 이를 계기로 리스크 관리 강화에 나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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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3학번 증권사 사장들의 경쟁 구도

증권가에는 장 사장을 비롯해 1963년생, 82학번 대표이사가 유독 많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박정림 KB증권 사장, 김성현 KB증권 사장, 오익근 대신증권 사장, 김신 SK증권 사장, 권희백 한화투자증권 사장, 황성엽 신영증권 사장 등이다. 여기에다 지금은 지주와 보험을 맡고 있지만 메리츠증권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도 82학번 대표로 자주 거론된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IB 시장이 대폭 커지기 시작할 때 임원직에 올라 장기 집권 중인 ‘행복한’ 세대이기도 하다.

다만 이들 중 장 사장은 상대적으로는 빛을 보지 못했다. IB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 정영채 사장, 김용범 부회장과 자산 관리 전문가 박정림 사장 등에 인지도에서 많이 밀렸다(관리 부문에 주로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기는 하다).

그래도 지금은 장 사장이 동기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탄탄한 우량 고객 기반으로 한동안은 큰 걱정거리 없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장 사장의 경쟁자는 친구들보다는 한 살 아래 대표이사들이다. 박정림·김성현 사장의 KB증권과 정영채 사장의 NH투자증권도 1분기 순탄했고 올해 전체적으로도 호실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으나, 이들은 실적 외 이슈가 많다. 이들보다는 1964년생인 메리츠증권의 최희문 부회장,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이만열 미래에셋증권 사장 등이 올 한해 맞수가 될 수 있는 후보군이다.

메리츠증권은 3사 합병으로 인해 현재는 상장 폐지돼 있다. 지주회사 메리츠금융지주만 거래된다. 그래서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메리츠증권은 주목받는 회사다. 신한금융투자의 증권업 담당 임희연 애널리스트는 메리츠금융지주를 금융권 ‘톱픽(최우선 종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 증권사가 삼성증권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존재감 있는 회사가 메리츠금융이라는 얘기다.

메리츠증권은 1분기 별도 기준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1861억원, 1433억원으로 전년 대비 31.5%, 25.6% 감소했다. 신규 딜 감소로 기업금융 수수료 손익이 줄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PF 충당금은 112억원 적립했다. 올해 1분기는 은근히 증시가 좋았지만, 메리츠증권은 리테일 영업망이 거의 없어 이로 인한 효과도 없었다.

하지만 메리츠증권은 공격적으로 영업하면서도 크게 터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공격적이면서 비교적 리스크 관리를 탄탄히 하고 있는 것이다. 임희연 연구원은 “충당금 적립 이슈는 올 한 해 계속될 전망인데, PF 노출액 대부분이 선순위인 만큼 추후 이익으로 환입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 또한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투자증권은 PF 리스크가 메리츠증권보다는 더 큰 것으로 전해지는데, 어쨌든 공격적인 기질이 있어 부동산 위기만 잘 넘긴다면 다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 과거 미래에셋증권과 이익 1위를 다투었던 저력이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자기자본이 11조원으로 타사 대비 압도적이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다른 회사들은 자기자본이 6조~8조원 수준이다.

미래에셋증권 또한 회사 이미지에 비해서는 비교적 리스크 관리를 잘해오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낮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개선해야 할 과제다. 크게 터지지 않고 고르게 잘하는 것 같은데, 돈을 너무 적게 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