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아파트 전세 고점 계약이 2021년 4분기부터 1년간 많았던 만큼, 역전세난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사진 뉴스1
전국 아파트 전세 고점 계약이 2021년 4분기부터 1년간 많았던 만큼, 역전세난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사진 뉴스1
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아파트 시장이 다소 온기가 돌고 있다. 시장 주도 지역인 서울에선 아파트 매매와 전세 가격지수 모두 주간 기준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지방은 여전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지역별 편차가 큰 상황이다. 전세 시장도 아파트와 비(非)아파트 간 온도 차가 심하다. 주택 시장이 지역별 동조화보다는 각개전투 양상으로 펼쳐질 것으로 점쳐진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일단 반등세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지역 아파트값은 표본조사 통계 기준으로 5월 넷째 주 들어 전주 대비 0.03%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으로 돌아선 건 지난해 5월 2일 이후 1년여 만이다. 이처럼 표본조사 통계가 상승한 것은 지속적인 규제 완화 효과에 15억원 대출 제한 폐지, 특례보금자리론 출시로 저점 매수세가 유입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 아파트는 지난해 실거래가로 22%가량 급락했으니, 낙폭 과대에 따른 자율적 반등이 나타났을 수도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도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가 급락했지만, 그다음 해인 2009년에는 반등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행지수 격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가 3개월간 상승(올 1분기 누계 4.74%)한 데다 4월 잠정치도 1.22%로 비교적 높기 때문이다. 시장은 관성의 법칙 혹은 경로 의존성이 작용하므로 반등세는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다만 9억원 이하 주택 구입 때 빌릴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이 소진되면 분위기가 다소 정체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아파트 매입자 연령대별 거래 현황에 따르면 3월 서울시 전체 아파트 매매 가운데 20·30대 비중이 35.9%에 이른다. 최근 서울시 아파트 반등에 특례보금자리론이 일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에 이어 경기와 인천, 지방 광역시 아파트값도 곧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남, 전남 등 일부 지방은 4월 실거래가 잠정치가 약세로 접어들어 상승 반전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 아파트값이 1년여 만에 상승 전환했다. 사진 뉴스1
서울 아파트값이 1년여 만에 상승 전환했다. 사진 뉴스1

추세적 상승 전환인가

​지금은 아파트 시장이 추세적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보기는 이르다. 높은 기준금리, 역전세난, 경기침체, 미미한 통화량(M2) 팽창, 소득 대비 집값 고평가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할 때 W 자형으로 급반등하기는 녹록지 않다. 앞으로 주택 시장 흐름은 여러 유형이 나타날 수 있다. 우선적으로 2008~2012년의 W 자형 더블딥이 거론된다. 한동안 오르다가 다시 떨어지는 모양새다. 가령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 1차 바닥을 찍은 뒤 잠시 상승하다가 다시 떨어져 4년 뒤인 2012년 12월에 가서야 2차 바닥을 찍었다. 흔히 말하는 쌍바닥이다. 혹은 바닥이 넓은 U 자형, 완만한 기울기가 있는 욕조형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유형의 회복세를 보이든, 곧바로 큰 상승 사이클로 접어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앞으로 금융시장 이슈에 따라 출렁이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전세 시장은 각개전투

향후 전세 시장 회복이 집값 향배의 풍향계가 될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급락했던 전세 가격은 하락세가 둔화되거나 일부 지역에선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1% 상승세로 돌아섰다. 매매 시장처럼 낙폭 과대에 따른 반등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부동산원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전년 말 대비 10.1% 하락했다. 아파트 매매가격 하락 폭(-7.7%)보다 깊다. ​물론 아파트 시장에서 매매에 숨통이 트이면 전세도 영향을 받는다. ​매매와 전세는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

요즘 현장에서 전세를 찾는 사람도 제법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전세 가격이 많이 하락한 데다 전세 대출 금리가 최저 연 3%대까지 낮아지는 등 금융 부담까지 줄어들고 있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서울 아파트 월세 전환율은 연 4.8% 수준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 부담보다는 전세 대출이자가 싸므로 전세를 선택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금리가 전월세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세 시장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회복되려면 기준금리 인하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 고점은 표본조사 통계 기준으로 2022년 1월이다. 고점 계약은 2021년 4분기부터 2022년 3분기까지 많았다. 재계약이 돌아오는 2년 뒤가 올해 4분기부터 내년 3분기까지다. 이 여파로 역전세난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렵고, 특히 비성수기에 심해질 수 있다. 아파트 매매 시장이 활기를 띠면 역전세난은 다소 완화될 여지가 있으나 시장이 확 살아나려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또 전세 시장은 상품별로도 온도 차가 날 수 있다. 다세대, 빌라, 다가구주택 등 비아파트 시장은 ‘전세 공포’ 여파로 아파트보다는 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질 것으로 보인다.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 미반환 가능성을 우려해 전세보다 월세나 보증금을 낮춘 반전세, 반월세를 선호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세 세입자를 구해야 한다. ​따라서 비아파트 시장일수록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당분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실수요자의 대응 방법은

주변에서 올 연말에 아파트값 바닥이 온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유튜브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고수나 전문가의 전망대로 시장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혹시 연말에 바닥이 오지 않을 것이면 어떻게 될까. 스마트폰이 삶의 표준이 된 포노사피엔스 시대에는 부동산시장은 생각보다 빨리 움직인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예측한다고 해도 잘 맞지 않는다. 시장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의 흐름에 귀를 열어놓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 실수요자는 표본조사 통계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게 좋다. 

가령 한국부동산원에 발표하는 서울 기준 아파트 표본조사 통계(월간)는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보다 1~8개월 늦다. 가령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2023년 1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표본조사 통계는 5개월 뒤인 6월 정도 상승세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내 집 마련 실수요자는 표본조사 통계보다 아파트 실거래가를 보는 게 낫다.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이나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R-ONE)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실거래가지수는 거래된 아파트를 모두 전수조사해 만들어 바닥 지수에 더 가깝다. 실거래가지수는 거래량이 적거나 특정 단지 위주로 거래량이 많을 때 전체 시장과 따로 노는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표본조사 통계보다는 현장 흐름을 정확하게 반영해 개인 입장에서는 유용한 지표다.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를 보기 힘들다면 KB선도 50지수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시가총액 상위 대단지 50개를 모아놓은 지수이므로 비교적 빠르게 흐름을 포착할 수 있는 바닥 지표다. 이런 지표를 볼 수 없다면 인근 2000가구 이상 랜드마크 아파트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좋다. 랜드마크 아파트는 거래가 잘 포착돼 하락기에는 먼저 떨어지고, 상승기에는 먼저 오르는 등 시장 흐름의 풍향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