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월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아시아 국가를 찾은 건 일본이 처음이다. G7 정상회의 의장국인 일본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참석을 위해 공을 들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3월 21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양국 간 소통 채널을 열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매체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G7 정상회의 개막 약 일주일 전 “리스크는 내가 떠맡겠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일을 성사시키자, 일본 국내 여론도 긍정적인 분위기다. 일본 교도통신이 5월 27일부터 28일까지 양일간 진행한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가 G7 정상회의에서 지도력을 발휘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62.3%로 집계됐다. 5월 22일 요미우리신문이 발표한 5월 여론조사(5월 20~21일 실시)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56%로 4월 대비 9%포인트 올랐다. 기시다 총리의 내각 지지율은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30%대를 맴돌았다. 내각 출범 이래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총리 조기 하차설’까지 불거졌지만, 올해 들어 한일 정상회담을 통한 양국 간 관계 개선 같은 외교 성과들을 연이어 내며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 필자는 “최근 외교정책을 통한 지지율 반등을 토대로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고, 조만간 조기 총선을 실시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당내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 조기 해산과 총선 승리로 당내 입지를 강화하지 않으면, 2023년 9월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는 관례상 중의원 수를 기준으로 다수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된다. 256명의 자민당 중의원 중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기시다파 의원 수는 45명에 불과하다. 현재 100명이 넘는 자민당 중의원이 ‘아베파’다.
5월 21일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5월 21일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최근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 가장 눈에 띈 참석자는 G7 국가 지도자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 러시아의 핵 공격 위협을 받고 있는 국가의 지도자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방문한 것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
이토 다카토시 컬럼비아대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히토츠바시대 경제학 학·석사, 하버드대 박사, 현 도쿄대 국립정책대학원 국가정책연구원 
선임 교수, 전 일본 재무성 차관
이토 다카토시 컬럼비아대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히토츠바시대 경제학 학·석사, 하버드대 박사, 현 도쿄대 국립정책대학원 국가정책연구원 선임 교수, 전 일본 재무성 차관
기시다 총리가 이번 정상회의 개최지로 히로시마를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시다 총리의 선거구가 히로시마에 있다는 점이다. 가장 저명한 국제 행사를 자기 고향에서 개최하면 그의 지지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둘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위협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초의 원자폭탄이 사용된 도시 히로시마에 주요국 지도자들을 초청함으로써 이러한 안보 위협을 더욱 크게 상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기시다 총리 내각 지지율은 2021년 10월 총리 임기가 시작된 직후부터 줄곧 하락세를 보였다. 기시다 총리의 ① ‘신자본주의’② ‘디지털 전원도시 국가 구상’ 같은 그의 경제 정책은 일본 국민으로부터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2022년 7월 59%였던 기시다 총리 내각 지지율은 2023년 1월 33%로 급락했다. 그런데 G7 정상회담을 앞둔 4월 기시다 총리 내각 지지율은 46%로 반등했다. 미국과 안보 동맹을 강화하려는 일본 국민의 정서 변화가 G7 정상회의 개최 영향과 맞물리면서 기시다 총리 내각 지지율 상승에 부분적으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의 홋카이도 영해 인근 낙하와 중국 해안경비대의 센카쿠 열도 해역 진입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반일 정권이 친일 정권으로 교체된 것 역시 기시다 총리에게 도움이 됐다. 최근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기업 강제징용에 대해 체결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국 간 경제 보복 제재는 끝났고 양국 지도자의 방문도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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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이 아닌 외교정책이 기시다 총리의 최근 지지율 반등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히로시마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의 이벤트였다. 이러한 지지율 반등을 토대로 기시다 총리가 조만간 조기 총선을 실시할 수도 있다고 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국가들에 즉각적인 경제적 문제를 일으켰지만,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에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일본은 1947년 시행한 ③ 평화헌법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군사 물자를 보내지 않고 있다. 평화헌법에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에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영향이 크다. 결정적으로 일본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G7을 중심으로 협력에 나선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주변국의 침공이 일본과 대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평화헌법만 있으면 적대국으로부터 군사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일본인의 환상을 깨버렸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침략국(러시아) 앞에선 국제법과 유엔(UN)도 무력해 보인다. 

푸틴의 거듭된 핵 위협을 고려했을 때 기시다 총리가 G7 정상들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원폭자료관으로 안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부터 이어진 일본의 평화주의적 역사를 보았을 때, 일본 대중의 우크라이나 지지는 다소 예외적이다. 일본 내 핵 군축 운동은 전통적으로 두 개의 시민 단체가 주도한다. 하나는 공산주의 및사회주의 정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단체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이 궁극적인 세계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이상주의적 단체다. 

전자는 일본 민간인에게 핵폭탄을 사용한 미국을 암묵적으로 비판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좌파 운동이 강했던 시기에는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반핵 운동이 초당적인 성격을 띠게 된 후에야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과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의 진주만 방문을 두고 많은 사람이 양국이 태평양 전쟁과 핵 공격의 잔재를 조용히 종결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무기 사용 위협으로 일본의 핵 군축 운동은 반러시아 운동으로 변모됐다. 

G7 정상회의 첫날 각국 정상들은 핵 군축 관련 내용이 담긴 ‘히로시마 비전’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통한 모두의 안전 보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담겼다.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는 G7과 우크라이나 간 지속적인 연대를 강하게 보여준 것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기시다 총리에게 이번 정상회담은 큰 정치적 성과를 남겼다. G7 정상회의로 인한 지정학적인 파급 효과는 보다 더 긍정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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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바꾸지 않고 국가가 직접 수정을 가해 모순을 완화하려는 사상이나 정책을 말한다. 수정자본주의라고도 부른다. 실업이나 공황 같은 자본주의 모순을 국가의 개입으로 완화하려는 미국의 뉴딜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시다 총리는 2021년 10월 취임 직후 연설에서 ‘신자본주의’ 경제 노선을 강조하면서 경제 재건과 일본 내 소득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시다 내각이 추진 중인 디지털 전원도시 국가 구상은 지역 생활-사회, 교육-연구개발, 산업-경제를 디지털 기반으로 혁신해 대도시의 편리함과 지역의 풍요로움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디지털 전원도시를 구축하고, 웰빙(well-being)과 지속 가능한 경제·사회를 실현한다는 비전을 말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하는 것도 이 비전의 일환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인 미국 주도로 1946년 만들어진 일본 현행 헌법(제9조)에는 전력(戰力) 보유 금지, 국가 교전권 불인정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사실상 일본의 군대 보유를 전면 금지하고 있어 이를 평화헌법이라 부른다. 일본의 헌법은 현재까지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다만, 집단 자위권(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진 국가 가운데 한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자국에 대한 공격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은 헌법 해석을 통해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