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신실이 제11회 E1채리티오픈FR 
3번 홀에서 아이언 샷을 치고 있다. 사진 KLPGA
방신실이 제11회 E1채리티오픈FR 3번 홀에서 아이언 샷을 치고 있다. 사진 KLPGA
300야드 ‘장타 소녀’ 방신실(19)은 5월 28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강원도 원주시 성문안 컨트리클럽(파72·6520야드)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E1채리티오픈(총상금 9억원)에서 데뷔 첫해 다섯 번째 경기 만에 첫 승을 올리며 새로운 여왕의 대관식을 가졌다. 방신실은 역대급 첫 우승 기록을 남겼다. 투어 첫 우승을 1라운드부터 한 번도 선두를 뺏기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 우승으로 달성한 선수는 2002년 이미나, 2003년 김주미, 2004년 김소희, 2006년 안선주, 2006년 신지애, 2008년 유소연, 2008년 최혜용, 2019년 이승연, 2022년 윤이나에 이어 역대 10번째다. KLPGA투어에서 가장 적은 대회(5개)에 출전해 상금 2억원 이상을 획득하는 기록도 세웠다. 종전 기록은 6개 대회에서 상금 2억원 이상을 획득한 최혜진, 박민지, 조아연이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방신실은 4월 30일 KLPGA 챔피언십(공동 4위), 5월 14일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공동 3위)에 이어 올 시즌 세 번째로 대회 마지막 날 챔피언조에서 경기한 끝에 우승했다. 앞선 두 대회에서도 막판 실수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던 경기력을 보였다. 방신실은 “챔피언조에서 경기할 때는 부담감이 컸는데 두 차례나 경험을 하면서 이번에는 좀 편하게 쳤다”고 말했다.

그전까지 전문 캐디가 없었던 방신실은 E1채리티오픈에서는 베테랑 캐디 진성용씨의 도움을 받았다. 진씨는 2011년 남자 골프 박도규를 시작으로 여자 골프에서는 안신애, 안송이, 장하나, 정윤지와 함께했던 베테랑 캐디다. 지난해 E1채리티오픈에서는 정윤지가 우승하는 걸 도왔다.

방신실이 우승 인터뷰에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은 대목은 우승을 통해 2025년까지 시드를 확보한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그는 “그동안 친구들은 1부 투어에서 뛰는데 혼자 2부 투어를 오가는 조건부 시드여서 속상했다”고 했다.

방신실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2022년에는 대표팀 주장까지 맡은 에이스였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되면서 지난해 10월 프로로 전향했다. 그리고 11월 치른 KLPGA투어 시드 순위전에서 방신실은 40위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시드 순위 40위면 144명 대회와 일부 결원이 생기는 132명 대회만 참가할 수 있다. 이런 대회가 연간 최대 10개 정도 된다. 방신실은 E1채리티오픈 우승으로 2025년 시즌까지 풀 시드를 확보했다. 엄청난 장타에 점차 빈틈없는 경기력을 갖춰가는 ‘역대급 신인’ 방신실의 도약에 힘을 보탠 전문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신실이 제11회 E1채리티오픈FR 18번 홀에서 우승이 확정된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 KLPGA
방신실이 제11회 E1채리티오픈FR 18번 홀에서 우승이 확정된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 KLPGA

비거리 30야드를 늘린 이범주 코치

방신실은 “2022년 평균 드라이버 샷이 250야드에 불과했는데 동계 훈련 이후 30야드 이상 늘어났다”며 “태국에서 두 달 반 동안 매일 한 시간 이상 스윙 스피드 늘리는 훈련을 한 효과 덕”이라고 말했다. 티샷이 30야드 이상 늘어났다는 이야기는 6번 아이언 클럽으로 두 번째 샷을 하던 코스라면 9번 아이언이나 피칭 웨지를 잡으면 된다. 그만큼 홀 가까이 붙일 수 있고 버디를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범주 코치가 방신실을 만난 것은 2021년 겨울이었다.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방신실은 그해 갑상샘항진증 판정을 받았다. 갑상샘항진증은 갑상샘 호르몬이 과잉 생성돼 이유 없이 체중이 감소하고 과도한 땀이 나며 극심한 피로, 무기력증 등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당시 해외로 동계 훈련을 할 수 없던 방신실이 국내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던 이범주 코치를 찾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이 코치는 이렇게 설명했다. “국가대표에서도 워낙 잘하는 친구인데 컨디션 때문인지 다운스윙 때 몸이 미끄러지는 슬라이딩 현상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몸통 회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손목을 돌려서 공을 맞히게 돼 샷 실수가 크게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몸을 중심에 잡아두고 왼쪽 손목의 힌지(꺾임)를 최대한 유지하다가 몸통 회전과 함께 임팩트 때 풀어주는 동작을 많이 연습했다. ”

지난해 동계 훈련은 쾌적한 날씨인 태국 치앙라이 지역을 선택했다. 이범주 코치는 미국에서 스피드 스틱 등 도구를 활용한 비거리 향상 방법을 연수한 스윙 스피드 전문가이다. 방신실은 둥그렇게 구부러진 모습을 한 도구인 ‘턴 라이너’와 고무줄 달린 ‘스피드 스틱’, 부드러운 고무로 만든 ‘스피드 바머’ 등 비거리 향상 3총사를 갖고 매일 한 시간 반씩 놀았다. 이 코치는 “많은 친구가 스피드 스틱 훈련을 했지만 신실이만큼 효과가 큰 경우는 보기 힘들었다”고 했다.

방신실은 내리막 코스나 좌우로 휜 도르레그 홀에서는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드라이버 샷을 날리면서도 페어웨이 적중률이 90%를 넘는다. 아이언 샷에도 빈틈이 없어 보인다. 앞으로 향상시킬 부분은 무엇일까.

이 코치는 “스윙의 큰 부분은 잘 정리가 돼 있다”며 “100야드 이내 거리를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홀 옆으로 보내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자용(왼쪽) LS네트웍스 회장과 방신실이 제11회 E1채리티오픈FR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KLPGA
구자용(왼쪽) LS네트웍스 회장과 방신실이 제11회 E1채리티오픈FR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KLPGA

딱 맞는 클럽을 만들어 준 아쿠쉬네트 김창균 피터

방신실은 임성재와 김주형이 공과 골프클럽을 사용하는 골프 용품사 아쿠쉬네트의 풀라인 선수다. 볼과 클럽, 골프화, 골프장갑을 모두 쓴다. 아쿠쉬네트 김창균 피터는 방신실이 고교 시절부터 클럽 피팅을 맡아온 전문가다.

방신실의 스윙 데이터는 남자 선수에 가깝다고 한다. 김 피터의 설명이다. “방신실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는 평균 시속 109마일, 볼 스피드는 평균 시속 160마일이다. 국내 여자 선수 스윙 스피드 평균은 94마일이고 남자 선수는 113마일이다. 여자 선수의 헤드 스피드가 100마일을 넘고, 볼 스피드가 147마일을 넘으면 장타 선수에 속하는데 방신실은 그런 범주를 넘어선다. 더 중요한 것은 공의 탄도다. 드라이버 샷의 최고점(APEX)이 35m에 이르는데 이는 남자 선수급이다. 멀리 치면서 탄도가 높을수록 자신이 원하는 곳에 공을 세울 수 있다. 아이언 샷도 워낙 탄도가 높기 때문에 롱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할 수 있고, 쇼트 아이언이나 웨지 샷으로는 공을 그린에 내리꽂을 수 있다.”

방신실이 올 시즌 기록한 최장타는 4월 KLPGA 챔피언십 4라운드 13번 홀에서 기록한 320.1야드(약 292m)다. 우승을 차지한 E1채리티오픈에서는 2라운드 16번 홀에서 306.5야드(약 280m)의 드라이버 샷을 날렸다. 방신실은 KLPGA 공식 드라이버 샷 거리에서 259.6야드(5월 28일 기준)를 기록했다. 드라이버 샷은 드라이버가 아닌 우드나 아이언으로 티샷한 것까지 포함한다.

방신실의 고탄도 아이언 샷을 보여주는 것은 5월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4번 홀이다. 197m를 남기고 4번 드라이빙 아이언으로 친 샷이 나무를 넘겨 홀 옆에 붙였다. 방신실은 4번 드라이빙 아이언으로 185m의 캐리 거리(구르는 거리를 뺀 거리)를 보낸다. 김 피터는 “방신실은 여자 선수로는 압도적인 헤드 스피드에 강한 손목 힘으로 공을 눌러치기 때문에 장타자이면서도 방향성이 좋다”며 “페어웨이가 좁고 러프가 깊은 코스 컨디션이 어려운 곳에서도 꾸준히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