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이클 울프(Michael Wolf)의 ‘밀도의 건축-홍콩(Architecture Of Density-Hong Kong)’의 표지. 2,3,4 책에는 하늘과 수평선 없이 이차원으로 홍콩 건물만 찍은 사진이 담겼다. 건물의 반복적 모양과 형태가 강조되면서 건물을 이루는 각 요소가 프레임 안에서도 반복되지만, 동시에 프레임 밖으로도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시각적 혼돈을 준다. 사진 김진영
1 마이클 울프(Michael Wolf)의 ‘밀도의 건축-홍콩(Architecture Of Density-Hong Kong)’의 표지. 2,3,4 책에는 하늘과 수평선 없이 이차원으로 홍콩 건물만 찍은 사진이 담겼다. 건물의 반복적 모양과 형태가 강조되면서 건물을 이루는 각 요소가 프레임 안에서도 반복되지만, 동시에 프레임 밖으로도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시각적 혼돈을 준다. 사진 김진영

독일 사진가 마이클 울프(Michael Wolf)는 세계 각 대도시의 일상적 풍경에 주목한 작업으로 알려진 사진가다. 일본 도쿄의 밀집한 지하철 속 사람들을 통해 빽빽한 도시의 삶을 담아낸 ‘도쿄 압축(Tokyo Compression)’, 미국 시카고의 고층 건물 창문을 통해 미국 현대인의 삶을 담아낸 ‘투명한 도시(The Transparent City)’, 프랑스 파리의 전통적인 지붕 구조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도시 풍경을 담은 ‘파리 루프톱(Paris Rooftops)’ 등 각 도시를 특징짓는 풍경을 관찰해 담아낸다.

1994년부터 홍콩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마이클 울프는 홍콩에 관한 여러 작업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밀도의 건축-홍콩(Architecture Of Density-Hong Kong·2022)’이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홍콩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아찔할 정도로 촘촘히 들어선 아파트가 만들어 내는 풍경이다. 빼곡하게 높이 들어선 아파트를 보며 우리가 곧잘 비교하며 떠올리는 도시도 홍콩이다. 홍콩이 수직적인 도시 개발을 하게 된 것은 높은 인구밀도 때문인데, 매우 제한된 땅에 많은 인구를 수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평 공간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도시인 셈이다.

홍콩에서 산 지 8년 정도 되었을 무렵, 마이클 울프는 홍콩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홍콩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마이클 울프는 주변 건물의 창문이나 근처 높은 지대에서 망원렌즈를 사용해 반대편 고층 건물을 촬영했다.

처음에 그는 보통의 건물 사진이 그렇듯 하늘과 땅을 포함해 아파트 건물 전체를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그러한 ‘보통의’ 방식으로는 자신이 홍콩에서 느낀 건물들의 엄청난 밀집도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에서 일부를 잘라내어 하늘과 수평선 없이 건물만 남겨보았는데, 그러자 사진이 건물을 단순히 보여주는 걸 넘어 어떤 압도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도 땅도 배제되고 프레임 안에 오로지 건물 모습만 가득 담기자 그것이 바로 홍콩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후 그는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찍어 작업을 이어갔다.

마이클 울프는 자신의 사진적 스타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하늘과 수평선을 제거하는 방식을 사용하면, 건물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한한 크기의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100층이 될 수도 있고 200층이 될 수도 있으며 길이가 1마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무한한 크기라는 환상이 우리가 대도시에서 경험하는 것을 실제로 전달하게 된다.”

삼차원 건물이 이차원의 압축적이고 밀도 가득한 이미지로 전환된다. 그러자 건물의 반복적인 모양과 형태가 강조되면서 건물을 이루는 각 요소가 프레임 안에서도 반복되지만 동시에 프레임 밖으로도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인상과 시각적 혼돈을 준다. 마이클 울프의 말처럼 관객의 상상이 무한한 크기의 느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관객은 주어진 것 이상을 프레임 너머로 상상하게 되면서 더 큰 압도감을 느끼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멀리서 볼 때는 건축물의 반복적 구조가 만들어 내는 패턴만이 눈에 들어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지나 티셔츠 등이 걸려 있고 식물이나 수건 등이 놓여 있으며 빨랫줄이나 에어컨 등이 설치돼 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작은 직사각형 창문 사이사이에 불규칙적으로 화분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그저 기하학적 패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벽 너머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는 이러한 이중성이 사진에 숨어 있다.

획일적인 건축 구조와 그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밀한 흔적이라는 이중성은 도시에서 삶의 방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효율적으로 지어지는, 그리하여 한편으로 몰개성한 건축물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과 색깔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멀리서 보면 똑같은 익명의 장소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 각각은 이렇게 사람들의 작은 삶이 담겨 있는 사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우뚝 솟은 건물은 결국 수많은 사람의 집이라는 사실을, 규칙성 속에 하나의 불규칙성으로 존재하는 도시 속 개인의 존재를 마이클 울프의 사진은 생각하게 한다.

‘밀도의 건축-홍콩’은 도시에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건축 패턴을 담아냄으로써, 도시 환경에 대한 강력한 시각적 표현을 보여줌과 동시에 도시화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