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유통시장은 지금이 21세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걸 사람이 직접 하고 있다. 영업부터 구매, 배송에 이르기까지 전산화돼 있는 과정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벨루가는 이 과정을 플랫폼으로 옮겨 디지털화했다. 데이터와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1인 창업자도 주류 유통을 할 수 있게 하려 한다.”
김상민 벨루가브루어리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벨루가브루어리는 주류 공급사와 상점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 ‘벨루가’를 운영하는 6년 차 스타트업이다. 전화, 문자메시지, 수기 관리 등에 의존하던 주류 발주 과정을 디지털로 옮겨왔다. 최근엔 HL홀딩스와 손잡고 주류를 전문으로 하는 물류 서비스를 시작했다. 벨루가에는 글로벌 주류 제조사를 비롯해 총 400여 개 공급사가 입점해 있고 1만여 개 상점이 벨루가를 통해 주류를 발주하고 있다. 벨루가에 등록된 주류 브랜드는 2만2000종에 이른다.
두 번의 플랫폼 스타트업 창업 경험이 있는 김 대표는 “앞서 경험한 아쉬운 순간들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그 교훈을 동력 삼아 이번이 마지막 창업이라고 생각하고 벨루가를 시작했다. 주류 산업을 제대로 바꾸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류 산업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하다.
“창업 아이템을 정하면서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 번째는 시장 규모가 크고 쇠퇴기가 없는 분야다. 이전에 창업했던 것들은 시장이 작아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두 번째는 내가 재미를 느끼는 분야여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절대 스타트업이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이었으면 했다. 도전적인 시장에 뛰어들고 싶었다.
주류가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산업이었다. 주류 시장은 쇠퇴하지 않는다. 당장 내일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산업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또 주류 유통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아 여태껏 이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이 없다. 그 말은 시장 발전이 더디다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을 거라고 판단했다.”
기존 시장 환경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먼저 유통 데이터가 모이지 않아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주류 유통은 영업부터 발주, 물류까지 전산화가 안 돼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상점이 도매상에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상품을 주문하면 도매상은 이를 수기로 관리한다. 이 때문에 발주가 잘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공급사는 상품이 정확히 어느 상점으로 얼마나 팔리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데이터가 없으니 공급사 영업사원은 무작정 상점들을 찾아다니며 대면 영업을 한다. ‘왠지 여기는 우리 위스키를 취급할 것 같아’하는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대면 영업을 하는데 그마저도 가게가 문을 닫거나 점주가 자리를 비우면 헛걸음한 것이 된다. 영업사원에게 소금을 뿌리며 내쫓는 점주들도 아직 있다고 한다. 공급사 입장에서는 인건비나 샘플 비용 등을 허공에 날리는 셈이다.
물류 문제도 크다. 주류만 전문으로 하는 물류 시장은 국내에 없다. 예전엔 주류 시장이 소주, 맥주 위주였기 때문에 물류가 어렵지 않았다. 플라스틱 통에 담아 용달 트럭에 실어 배송하면 된다. 비도 맞고 햇볕도 쬔다. 그러다 2015년쯤부터 와인, 위스키 등 프리미엄 주류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시장이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물류는 그대로다. 와인, 위스키는 이런 식으로 배송하면 품질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프리미엄 주류 공급사들은 기존 물류 회사에 배송을 맡기지 못하고 자차로 배송하기도 한다.”
벨루가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세 단계다. 먼저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데이터를 쌓기 위해 주류 발주를 온라인화했다. 상점 사장들은 벨루가 플랫폼에서 자신이 찾는 상품을 검색해 주문할 수 있고 맞춤형 추천도 받을 수 있다. 공급사는 상점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주문받을 수 있다.
그다음은 영업 효율화다. 벨루가는 유통만 돕는 것이 아니라 공급사의 영업을 도울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어떤 유형의 상점이 어떤 술을 얼마나 발주하는지 같은 통계에 그치지 않고, 공급사의 A 상품에 관심을 보이거나 취급 의사를 보이는 상점의 실시간 현황을 점수화해서 제공한다. ‘어떤 상점이 특정 상품에 관심이 많으니 영업해 보라’는 가이드를 주는 것이다. 해당 상점이 어떤 상품을 얼마에 팔고 있는지 같은 데이터도 함께 제공한다. 이런 정보를 알고 영업하는 것과 모르고 영업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벨루가 데이터를 활용하면 영업사원 한 명이 30명분의 일을 달성할 수 있다.
물류 서비스도 제공한다. 최근 HL홀딩스와 함께 주류에 최적화된 풀필먼트 서비스(배송·보관 등 물류를 일괄적으로 대행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운송 경로를 최적화해 효율적으로 콜드체인(생산부터 배송까지 일정한 저온 범위를 유지하는 것) 배송을 한다. 3분기에 개시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예상보다 빨리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 현재 물류 창고가 가동되고 있다. 플랫폼이 아무리 발주를 연결해 줘도 물류가 없으면 거래는 성사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류까지 뻗치게 됐다.”
벨루가의 등장으로 도매상 역할이 사라지게 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도매상은 꼭 필요하다. 도매상은 단순히 중간 유통상이 아니라 여신(대출)의 역할을 한다. 발주에는 공급사와 소매점이 직접 거래하는 직납과 도매상을 거치는 간납이 있는데 각각 체크카드 결제와 신용카드 결제라고 보면 된다. 소매점이 당장 지불 여력이 안 될 때 도매상을 거친다.
도매상은 공급사에 먼저 대금을 정산하고 수금 위험을 지는 대신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벨루가 플랫폼에서도 상점 사장들이 직납으로 받을지 간납으로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 주류 도매상은 국가에서 면허를 부여해 관리하는 시장의 중요한 참가자다. 도매상은 그들만의 역할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벨루가는 매출을 어떻게 내나.
“공급사에 상점 데이터를 유료로 제공한다. 건별로 판매하기보다는 데이터 규모에 따라 월 구독제로 판매한다. 물류 배송비도 수입원 중 하나다.”
국내 첫 온라인 주류 유통 플랫폼으로 알고 있다. 투자받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2018년에 처음으로 투자를 유치하기까지 정말 많은 거절을 당했다. 투자, 대출 모두 어려웠다. 당시에는 주류 관련 스타트업은 제조업뿐이었다. 주류 유통을 주제로 한 소프트웨어 회사는 우리뿐이어서 여러 오해를 받았다. 투자사를 만나면 우리가 잘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기도 전에 주류를 다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한 기술지주회사는 ‘우리가 우유를 팔고 있어 주류 스타트업은 지원하기 힘들다’고 했고, 한 투자자는 본인이 종교가 있다면서 ‘세상을 더럽히는 산업에 투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깡패들이 하는 업종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고, 투자사 미팅이 잡혔는데 40도가 넘는 날 건물 밖에서 기다리다 돌아간 적도 있다. 벨루가브루어리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주제가 술일 뿐이다. 그러다 우리의 가능성을 크게 본 스파크랩에서 과감히 초기 투자를 결정해 줬고, 카카오벤처스에서도 두 번의 투자를 받았다. 벤처캐피털인 500글로벌에서도 공급사 입장에서 벨루가를 써본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해 줬다.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벨루가의 목표는 무엇인가.
“올해 목표는 풀필먼트 물류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잘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유통 방정식에 공감하는 파트너사를 최대한 많이 입점시키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1인 창업자도 벨루가를 통해 주류 유통에 도전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좋은 상품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그 외의 것들은 벨루가가 해결해 주는 것이 비전이다. 시작은 주류였지만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품목으로 서비스를 넓힐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회사명 벨루가브루어리
본사 서울
창업자 김상민
설립 연도 2017년
주요 사업 주류 유통·물류 플랫폼 ‘벨루가’
주요 투자사 카카오벤처스, 500글로벌, 미래에셋벤처투자, 스파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