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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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바리사이파들이 함정을 파 예수를 고발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다. ‘데나리온(Denarion)’은 당시 로마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땅에서 통용되던 로마 돈의 한 종류다. 이는 은으로 만든 주화로 무게가 4g 정도 나간다. 우리가 쓰고 있는 돈에는 종이로 만든 ‘지폐(紙幣)’와 금속을 녹여 만든 ‘주화(鑄貨)’가 있다. 이 중 주화는 흔히 ‘동전(銅錢)’으로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는 구리로 만든 것이어야 하지만 국어사전에도 ‘구리, 은, 니켈 및 이들의 합금 등으로 만든 동그랗게 생긴 모든 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나오니, 주화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 동전의 역사는 꽤 길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원형의 돈 중앙에 구멍을 내어 줄로 꿸 수 있었는 데 반해, 앞서 언급된 데나리온처럼 서양에서는 음각이나 양각으로 인물 등의 형상이 들어가 있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이렇듯 금속으로 만들어진 돈은 서방의 경우 기원전 7세기쯤에 오늘날 튀르키예(옛 터키) 지방에 있는 ‘리디아’란 나라에서 처음 나왔다. 금과 은을 섞은 이 주화에는 사자 머리가 새겨져 있어, 이 돈을 ‘리디아의 사자’라 불렀다. 이 주화는 표준화된 무게와 함량을 지켜 매우 믿음직한 교환 수단이 됐다고 한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현 세종대 부총장, 전 대성
합동지주 사장,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현 세종대 부총장, 전 대성 합동지주 사장,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2│ 주화 또는 동전은 인류의 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가장 작게는 세계 제일의 통화인 달러의 사인 ‘$’이 볼리비아산 동전에서 비롯된 사례를 들 수 있다. 더 큰 예는 로마를 비롯한 대제국들이 이런 주화에 들어가는 금, 은 등의 함량을 갈수록 줄이면서 화폐의 공신력을 잃어버리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세수 부족이 생기며 멸망의 길을 걸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데나리온도 ‘아스(as)’라는 기존의 동전 남발로 인해 그 가치가 떨어지자 이 동전 10개 가치에 해당하는 새 동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신대륙 발견 이후 대규모 은광이 속속 개발되면서 이제는 은의 가치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자 각국이 금 본위제로 전환했다가 금 공급이 달리자 아예 금이나 은 등과 관계를 끊고, 구리 등 비교적 싼 금속으로 만들되, 법으로 그 가치를 정하는 소위 ‘법정통화’ 즉 ‘피아트 머니(Fiat Money)’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3│주화나 동전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코인(coin)’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쿠네우스(cuneus)’다. 이는 ‘쐐기’나 ‘모서리’ 등을 뜻한다. 로마제국 시절 주화는 금속 덩어리나 금속판 위에 쐐기 모양의 정을 올려놓고 망치로 쳐서 문양을 새겨 만들었다. 당연히 이 정의 밑바닥에는 주화 표면의 문양이 반대로 새겨져 있었다. 이 단어가 영어에 도입된 후 14세기 말에는‘찍어 눌러 만들어진 것’에서‘쪼가리 돈’으로 의미가 발전하며 주화 또는 동전이라는 오늘날의 의미와 유사한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요즘 암호화폐로 불리는 신생 코인이 큰 문제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이 이 코인 거래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국회 일정 중에 코인을 거래했다는 정황과 함께 코인 발행·거래의 주체와 얽힌 뇌물 수수 의혹은 물론, 그 거래 자금의 출처 및 용도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정치 거물을 위한 돈세탁 주장도 제기되는 등 그와 그가 속했던 당이 궁지에 몰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코인’은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물론 우리 주위에 카드 사용 등으로 ‘진짜’ 동전 사용이 갈수록 줄어간다. 1원짜리 동전은 아예 볼 수 없고 10원짜리 동전이 예전의 1원짜리 동전 크기로 발행되고 있다. 대신 ‘암호화폐’라는 이름의 새 형태의 ‘코인’들이 각광받은 지 꽤 됐다.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정체가 모호한 일본인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창안한 온라인 암호화폐 즉 디지털 통화인 ‘비트코인’이 그 효시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코인은 가격이 폭등하며 수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였고 국내에서도 이를 통해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회자됐다. 이에 따라 우후죽순 격으로 여러 암호화폐가 발행됐으며 국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 코인을 위한 전문 거래소도 여럿 생겼고 이에 따라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도 무시 못 할 정도가 되었다. 세계적으로도 비트코인 등을 정식 결제 수단으로 받아주는 기업이 많이 생기게 됐고, 달러 패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암호화폐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러시아, 중국 같은 미국의 잠재적 적성국)들도 생겨 세계경제에 주는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 

이런 ‘코인’들의 긍정적 효과는 또 있다. 보통 비트코인 등이 통화 발행 기본 룰로 삼는 ‘블록체인(개인 간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공개된 장부에 새로운 기록이 추가돼 거래 참여자들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금융, 국제결제, 투표 등 민간 및 공공 분야에 이미 널리 적용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는 2022년 기준 블록체인 기술의 시장 규모가 111억달러(약 14조5021억원)이며 2030년까지 4695억달러(약 613조4017억원)로, 연평균 약 60%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성경의 ‘시편’에 나오는 “집 짓는 이가 버린 돌이 모서리 돌이 됐다”라는 말처럼 ‘코인’은 그 어원대로 ‘모서리’ 돌, 경제의 주춧돌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들 신종 ‘코인’이 경제에 ‘쐐기’를 박는 경우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미국 등 주요국에서 ‘법정통화’로 인정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달러 같은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나라는 소위 ‘시뇨리지’ 즉 ‘발권 이익’을 누릴 수 없는 데다, 그 거래 이익에 대한 과세도 힘들기 때문이다. 마약 거래 같은 범죄의 결제 수단을 쓰이기 시작한 이 ‘코인’들을 인정하기란 더욱 힘들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텔레그램이 발행한 토큰’이라는 암호화폐의 증권거래소 상장이 거부돼, 이 회사가 발행을 포기한 것이 그 예다. 게다가 금이나 은처럼 오랫동안 인류에 의해 가치 개념이 생성돼 온 귀금속도 아니어서 그 가치는 거래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가치가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코인’의 가격 변동이 매우 심했으며 국내에서도 무리하게 대출까지 받아 투자한 수많은 사람이 큰 손실을 보고 사회적 문제가 되는 상황도 벌어졌다. 특히 요즘처럼 세계적으로 급격한 금리 인상 기조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심지어 민간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전술하다시피 이 ‘코인’들은 범죄 및 자금 세탁과도 연결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어, 소위 ‘부정적 외부 효과’가 커지고 있다. ‘코인’이 앞으로 경제에 주춧돌이나 쐐기 중 어느 쪽으로 더 크게 작용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필자도 그렇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에서 금을 캐러 서부로 몰려들던 사람 중 정작 금으로 돈 번 사람은 극소수이고 이들을 상대한 금 보관소, 청바지 업체 등만 큰 부자가 됐던 사실이 자꾸 뇌리에 스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