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인도양 국제무역 요충지로 주목받으며 고성장했던 스리랑카가 지난해 5월 부채를 갚지 못해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가운데, 1년여 만에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도 구제금융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주요 채무국인 중국에 대한 ‘고금리 빚의 함정’에 빠져 정작 나라 경제의 정상 회복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스리랑카는 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동참하면서 막대한 규모의 차관을 받았지만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다. 5월 29일(이하 현지시각) AFP통신에 따르면, ADB는 스리랑카에 대한 3억5000만달러(약 4572억원) 규모의 차관 제공안을 승인했다. 스리랑카는 앞서 지난 3월엔 IMF로부터 약 30억달러(약 3조9195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은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스리랑카에 돈을 빌려준 또 다른 채권국, 중국이다.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IMF와 미국이 줄곧 맡아왔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넘겨받으며 빚더미 국가들의 새로운 큰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22년까지 최빈국 74개국이 갚아야 할 채무 규모는 350억달러(약 45조7280억원)에 이르고, 이 중 40% 이상이 중국에 상환해야 하는 부채다. 스리랑카가 현재 중국 등 주요 채권국에 빚진 양자 채무 규모는 약 71억달러(약 9조2761억원)에 달한다. 이 중 중국에서 가장 많은 30억달러를 빌린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국유 금융사는 주로 변동 금리 방식의 대출을 저소득 국가에 제공했는데, 대출을 끌어다 쓴 국가들은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상환 부담이 거의 두 배로 늘어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저자는 “중국이 채무국에 대한 채무 조정을 꺼리고 있다”며 “IMF가 자금을 제공할 경우, 그중 일부는 단순히 중국에 빌린 자금을 상환하는 데 사용될 것이며 중국은 다른 채권국보다 더 유리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이 채무국의 부채 구조조정을 위해 보다 원활하고 신속한 프로세스를 고안하는 것이 자국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깨닫길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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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이슈를 살펴보면 글로벌 부채 위기를 예고하는 듯하다. 미국은 이미 취약한 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뜨리는 자해적 디폴트의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다. 이집트, 가나, 파키스탄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고, 이탈리아와 일본의 부채 부담도 더욱 커지고 있다. ② 국제통화기금(IMF)은 41개국을 부채 수준 심각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은 저소득 국가들의 부채 구조조정 이슈와 관련해 다자간 노력을 지연시키고 방해하고 있다. 

저소득 국가의 경우, 실제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을지 혹은 얼마나 상환 가능한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는다. 부채가 많은 저소득 국가 중 상당수는 이미 감당이 불가능하거나 지속 불가능한 부채를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는 상환을 미루거나 채무 상환을 중단해야 한다고 발표했고, 민간 대출 기관은 추가 대출을 거부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부채를 안고 있는 국가 집단들은 또다시 두 그룹으로 더욱 세분화할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관련 지출을 충당하고자 빚을 냈고, 더 많은 부채가 생기기 전까지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위치에 있었다. 국제 금융기관은 이러한 국가들이 신속하게 추가 자금을 확보하고 경제 회복에 맞춰 정상적인 자금 조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특별한 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앤 크루거 
미국 경제학회 회장
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현 스탠퍼드대 
국제개발센터 선임연구원, 전 IMF 수석 부총재
앤 크루거 미국 경제학회 회장
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현 스탠퍼드대 국제개발센터 선임연구원, 전 IMF 수석 부총재
하지만 그 외 다른 그룹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이미 많은 부채를 안고 있었고, 이 부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수익률이 낮거나 마이너스인 프로젝트에 무리하게 투자한 탓이다. 대표적 사례가 스리랑카다. 스리랑카는 2019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금을 대폭 인하했고, 이미 규모가 상당했던 재정 적자 폭과 부채 규모를 더욱 키웠다. 스리랑카는 (한 푼의 외화라도 아끼기 위해) 농약 같은 농자재 수입 금지 등 잘못된 국내 정책을 펼쳤고, 이는 농업 생산량 급감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스리랑카 당국은 외환보유액을 모두 소진한 후 더는 빌릴 수 없을 때까지 주로 중국에서 높은 이자율로 대출받곤 했다. 부채가 많은 국가는 필수 식료품, 의약품, 중간재 등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수입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 스리랑카 사례처럼 공장 폐쇄와 경제활동의 급격한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 피해를 본 국가가 수입을 재개하는 데 필요한 외환을 확보할 때까지 생필품은 계속 부족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IMF는 관련 국가의 정부와 협력해 국가 경제성장률과 신용도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한다. IMF가 해당 국가에 연관된 개혁을 계속해서 요구하지 않는다면 국가 부채는 늘고 피할 수 없는 심판만 늦출 뿐이다. 채무국의 개혁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IMF는 일반적으로 개혁이 진행되는 데 맞춰 지원 자금을 분할 지급하고, 초기 지급으로 수입 흐름과 부채 상환이 재개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위기가 빈곤국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한 일부 관찰자는 국가에 극심한 부채를 안긴 정책 실패를 바로잡는다는 조건 없이 부채 감소를 위한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로운 대출이 빈곤층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이들은 이것이 종종 ‘밑 빠진 독에 물 붓기(throwing good money after bad)’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많은 경우 국가가 가난한 이유 중 하나는 이전에 누적된 부채가 생산성 낮은 투자에 사용됐기 때문이다.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동의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긴 하나 프로그램 확정 후에도 추가적인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IMF가 한 국가의 부채 부담이 너무 커 채무 상환 요건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부채 구조조정은 합의된 IMF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민간 및 공공 채권국들과 협상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때로는 채무국의 개혁과 IMF 자금이 한 국가의 성장을 회복하고 부채 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다른 경우에는 부채가 너무 많아 국가가 부채 상환을 완전히 재개하는 것을 기대하는 게 불합리한 선택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권국 정부 관계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채무 액면가 인하, 원금 상환 일정 조정, 유예 기간 등을 포함한 부채 구조조정 조건에 합의한다. 통상적으로 민간 채권자들도 이 같은 회담에 참여해 미결제 채무 삭감에 동의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최대 채권국으로 부상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중국은 (대상국의) 채무 조정을 꺼리며 채무국의 의무(부채 상환)를 다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이든 빌려주겠다고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IMF가 자금을 지급할 경우, 그중 일부는 단순히 중국에 빌린 자금을 상환하는 데 사용될 것이며 중국은 다른 채권국보다 더 유리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결국 모든 채권국이 부채 구조조정에 합의할 때까지 IMF 프로그램은 실행될 수 없다. 중국이 대출금 삭감을 거부한 탓에 스리랑카는 몇 달 동안 IMF로부터 자금을 받을 수 없었다. 대신 중국은 스리랑카가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즉 스리랑카에 더 많은 돈을 빌려줘 중국에 대한 전체 부채가 늘어나도록 하기를 원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③ 잠비아의 부채 구조조정도 2020년 11월 이후 지연되는 중이다.

중국은 마침내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 있도록 여러 국가와 몇 가지 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부채 국가들은 합의된 IMF 프로그램에 따라 정책 개혁을 수행해야 하므로 더욱 많은 지연이 예상된다. 중국이 채무국의 정책 개혁과 부채 구조조정이 더 원활하고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프로세스를 고안하는 것이 자국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깨닫기를 희망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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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창해 시작된 중국의 경제 영토 확장 사업. 육상과 해상에서 옛 실크로드를 재현해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하겠다는 포석이다. 2022년까지 150여 개국이 일대일로에 참여했다. 일대일로 선언 이후 중국 정부의 이들 국가에 대한 누적 투자액은 9320억달러(약 1217조65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대일로 자금을 받은 저개발 국가 중 부채 위기를 겪는 나라들이 늘고, 국유 자산을 중국에 넘기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일대일로는 부채 위기 제조기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세계적인 주도권을 잡은 미국은 자유무역의 안정적인 성장을 주장하며 가트(GATT) 체제를 출범시켰고, 동시에 국제 유동성 확대 보장을 목적으로 1945년 12월에 이 국제기구를 설립했다. 190개 회원국을 두고 있다. IMF는 디폴트에 빠진 국가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공기업 민영화,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정부의 재정 지출 대폭 삭감 등을 요구한다. 

잠비아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프리카 국가 중 처음으로 국가 디폴트에 빠졌으며, 최대 170억달러(약 22조2110억원)에 달했던 대외 부채 3분의 1 이상을 중국에 빚지고 있다. 잠비아의 부채 구조조정 이슈는 주요 20개국(G20)이 합의한 ‘공동 프레임워크’의 중요 대상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서방 채권국들과 중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지난해 6월 첫 회의 이후 진척이 더디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