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 지바고’ 장면들. 사진 IMDB
영화 ‘닥터 지바고’ 장면들. 사진 IMDB

벌써 한낮의 땡볕이 따갑다. 춥다고 불평하던 입에서는 왜 이렇게 덥냐는 불만이 튀어나온다. 마음은 성급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하얀 자작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진 설원을 달린다. 러시아 전통악기 발랄라이카로 연주하는 ‘라라의 테마’가 들리는 것 같다.

시대의 폭풍에 휩쓸려 아내와 자식은 조국에서 추방되고, 마음에 품었던 연인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남자. 계단을 뛰어올라 얼어붙은 창을 깨고 저 멀리 한 점이 되어 사라지는 라라를 바라보던 유리 지바고. 그의 젖은 눈동자를 찌르던 새하얀 햇살이 먼 시간을 날아와 우리의 6월 한가운데 파편처럼 쏟아진다.

토냐와 결혼 후 행복하게 살고 있던 유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참전한다. 그곳에서 종군간호사가 된 라라를 운명처럼 만난다. 두 사람은 모스크바에 있을 때부터 인연의 실타래로 연결돼 있었다. 사선을 함께 넘나드는 시간은 그들을 더 강한 줄로 엮어놓는다.

유리는 아내를 사랑했고, 라라는 남편을 찾아 전쟁터를 전전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전쟁이 마무리되고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자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역사의 거친 소용돌이는 저만치 멀어지게 했던 두 사람을 또다시 만나게 할 터였다.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전쟁과 혁명이 흔든 유리 지바고의 삶

전쟁과 혁명은 유리의 삶을 뿌리째 뽑아 내동댕이쳤다. 친구와 이웃은 죽거나 추방됐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던 혁명가들은 당과 인민이란 명분을 앞세워 황제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수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사라진 유리의 아버지처럼, 오랜 영광을 지켜온 러시아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유리가 어렸을 때 땅에 묻힌 어머니처럼,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할 조국은 더 이상 그를 품어주지 못했다.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유리는 집과 재산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몰려 언제 숙청될지 모를 처지였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향한다. 헛간 같은 오두막에 초라해진 삶을 내려놓고 농사짓고 글을 쓰며 숨죽인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라라와 재회한다. 유리는 방탕하거나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라라를 본 순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죄 없는 죄인이 되어 궁지로 내몰린 데다 시인의 긍지마저 꺾여버린 유리는 가슴에 쌓인 분노와 절망에서 벗어날 비상구가 간절했다. 라라에게도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줄 존재가 절실했다. 죄책감으로 심장이 짓눌리면서도 유리는 아내와 라라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혁명의 불길이 유리만 피해 갈 리 없다. 그는 빨치산에게 납치돼 2년 넘게 끌려다닌다. 목숨 걸고 탈출했지만 가족은 모스크바로 소환됐다가 해외로 추방된 뒤였다.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허락되는 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가 존립할 수 있을 때뿐이다. 자기 의지로 부모를 잃은 게 아니듯 이제 유리에겐 조국도, 직업도, 가족도 없었다. 빨치산 탈영병이란 오명까지 뒤집어쓴 그가 혁명군의 총탄을 피해 국경을 넘어 가족을 되찾을 가능성은 없었다.

불륜이니 외도니 하는 비난조차 그에겐 사치였다. 유리는 라라와 함께 짓밟힌 삶을 이어간다. 매일 매 순간 춥고 배고팠지만 육체의 고통이 커질수록 그의 영혼은 폭설로 뒤덮인 대지처럼 순결하고 투명해졌다. 유리는 영감과 재능이 폭발한 듯 시를 써낸다. 그러나 운명이 허락한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라라 어머니의 애인이었으면서도 라라를 탐했던 코마로프스키는 혁명의 광란 속에서도 요직에 앉자 다시 라라를 욕심냈다. 지식인이자 탈영병, 조국을 등진 추방자의 가족이었던 유리, 그리고 새로운 권력자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과격 혁명 전사 스트렐니코프의 아내 라라는 당이 감시하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언제 총살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라라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며 코마로프스키는 유리를 회유한다. 혁명은 끝내 유리의 삶을 지탱해 주던 마지막 사랑마저 훔쳐 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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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소설 원작자의 삶을 관통한 죽음과 공포의 시대

영화 ‘닥터 지바고’는 1957년 소련의 탄압을 피해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작가는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출판을 불허했던 소련은 수상마저 거부하도록 압박했다.

죽음과 공포의 시대를 그려낸 소설인 만큼 유리의 삶은 작가의 생과 똑 닮았다. 출판 편집자이자 연인이었던 올가는 라라의 모델이었지만 소설 속 그녀의 최후가 그랬던 것같이 오랜 수용소 생활을 견뎌야 했다. 숙청되거나 추방되진 않았어도 작가동맹에서 제명당한 파스테르나크는 유리와 똑같이 심장병을 앓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유리의 장례식처럼 그의 문학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이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었다.

영화는 ‘밀회’ ‘콰이강의 다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65년도 작품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린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오마 샤리프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유리 지바고의 눈빛을 영화 팬들의 가슴에 새겨주었다. 완전한 평등은 지구가 생겨난 이래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다. 소수의 통치자는 현재가 영원하길 바라고, 억압당하는 다수의 대중은 체제 전복이 미래의 정의를 가져올 거라 믿는다. 하지만 세상이 뒤집어지면 권력자의 얼굴만 교체될 뿐,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구조는 반복된다.

레닌이 모스크바에 입성했을 때도 대중은 평등한 세상이 왔다고 환호했지만 그들은 평등하게 더 비참해졌다. 그렇게 소련에서 출발한 분열과 고통과 죽음의 불꽃은 오랜 시간, 먼 길을 달려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을 전쟁의 화마로 뒤덮었다.

세상은 시공을 뛰어넘어 촘촘히 연결된 거대한 그물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소설과 영화도, 역사가 된 이념과 전쟁도, 가슴을 움켜쥐고 죽어간 먼 나라 작가의 인생도 우리와 이어져 있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건 이념이나 전쟁이 아니다. 우리의 착한 마음, 당신의 눈동자에 담긴 웃음과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