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빛누리호를 타고 파로호를 유람해보자. 2 검은색이 인상적인 꺼먹다리. 3 아직 촬영 당시의 모습이 남아있는 원천상회 내부. 사진 최갑수
1 물빛누리호를 타고 파로호를 유람해보자. 2 검은색이 인상적인 꺼먹다리. 3 아직 촬영 당시의 모습이 남아있는 원천상회 내부. 사진 최갑수
춘천에서 30분 거리에 화천이 있다. 여행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의외로 볼 것 많고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이다. 유람선을 타고 유유자적 호수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산타클로스우체국에서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평화의 댐이 있는 파로호

강원도 화천 하면 떠오르는 곳이 평화의 댐이다. 1986년 북한의 금강산댐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몇 번의 수공(水攻)을 막아냈다고 전해진다. 파로호(破虜湖) 구만리 선착장에서 물빛누리호를 타면 파로호와 평화의 댐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구만리 선착장에서 출발한 유람선은 방천리와 동촌리 지둔지, 법성치, 비수구미를 차례로 지나 ‘세계 평화의 종 공원’까지 24㎞를 1시간 30분 동안 달린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제가 전력 생산을 위해 댐을 세우면서 만들어진 호수다. 면적이 과천시(35.86㎢)보다 더 큰(38.9㎢) ‘내륙의 바다’다. 10억t의 담수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호수는 보통의 인공호처럼 넓지 않고 강처럼 길쭉하다. 잉어며 붕어, 메기, 쏘가리 등 손맛 좋은 물고기가 많아 조사(釣士)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는 격전지이기도 했는데 수만 명의 중공군과 한국군이 수장됐다고 한다. 파로호라는 이름도 전쟁이 끝난 뒤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찔렀다’는 뜻에서 직접 붙였다.

댐 아래에 자리한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은 지구상의 모든 분쟁 국가에서 보낸 탄피와 철모를 녹여 만든 종이 전시되어 있다. 무게가 37.5t에 달한다.

화천은 자전거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다. 파로호 100리 산소길이라는, 북한강을 따라 조붓이 이어지는 42㎞에 이르는 자전거길이 있기 때문이다. 화천 시내에 바로 붙어 있는 붕어섬을 기점으로 화천교~대이리~딴산~화천수력발전소~살랑골~위라리~생활체육공원~거례리~원천리통통다리~아쿠아스틱리조트~서오지리연꽃단지~화천읍으로 이어진다. 전국 유일의 수상길(1.2㎞)과 숲길(1㎞) 등이 다양하게 조성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꺼먹다리라는, 말 그대로 시커먼 다리를 만난다. 산소길이 나면서 통행금지가 풀린 곳이다.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 만들어진 꺼먹다리는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 이름이 붙여졌다. 길이 4.92m, 폭 4.8m다. 영화 ‘전우’와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의 배경이 된 근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화천 읍내에는 유독 눈에 띄는 빨간 건물 한 채가 있다. ‘산타클로스우체국 대한민국 본점’이라는 큰 간판을 달고 있다. 실제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우체국이다. 1년 365일 언제든 보내도 된다. 우체국 내에는 산타클로스 인형과 크리스마스 관련 소품, 엽서, 기념품 등도 판매하고 있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서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보내면 답장을 받을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한다.

거례리에 사랑나무가 있다. 수령 4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는 이곳에서 사랑을 고백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변은 아를테마수목원으로 꾸며져 있어 여유로운 한나절을 보내기에 좋다.

거례리 사랑나무. 이 나무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원을 빌어보자. 사진 최갑수
거례리 사랑나무. 이 나무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원을 빌어보자. 사진 최갑수

마을의 평범한 슈퍼에서 인기 여행지로

최근에 화천의 가장 핫한 곳은 ‘원천상회’다. TV 예능 프로그램 ‘어쩌다 사장’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찾고 있다. ‘어쩌다 사장’은 인심 좋기로 소문난 사장 차태현과 ‘애매추어’ 셰프 조인성이 시골 슈퍼에서 보낸 일주일을 재미있게 담아낸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들이 일하게 된 슈퍼가 보통 슈퍼가 아니다. 시골에 있는 조그만 슈퍼라고 생각했던 차태현과 조인성도 실제로 슈퍼에 와보고는 깜짝 놀란다. 차표도 판매하고 가맥 코너도 만들어져 있고 라면 같은 간단한 식사 거리도 판다. 그러니까, 할 일이 참 많다는 거다.

TV를 열심히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은 챙겨서 보았다. 차태현과 조인성의 친절하고 다정한 미소와 마음이 참 보기 좋았다. 보는 내내 이런 작은 마을에서 슈퍼나 하나 꾸리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TV 프로그램이니까 저렇게 평화롭게만 보이지, 사실 사는 건 다 똑같은 것 아니겠어? 나름 힘든 점이 많을 거야’ 하고 지금의 삶을 변명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한다. 원천상회도 많이 변했겠지 하고 가게에 들렀다.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즘엔 관광객들이 많이 안 오나 봐요.” 아주머니는 웃기만 했다. “라면 하나 주세요. 근데 대게라면은 없네요?” “대게가 요즘 안 들어와요. 겨울이나 돼야지⋯.”

파가 많이 들어간 라면 하나를 먹었다. 맛있었다. 라면을 먹는 동안 학생이 음료수를 사 가고 동네 할머니가 차표를 사러 왔다. 토마토 살 만한 곳을 여쭈니 아주머니가 전화번호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여기 토마토 맛있어요.”

원천상회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을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다. 100원짜리 동전을 올려두었던 자판기에는 지금 ‘고장’이라는 종이를 붙여놓았지만, 다시 주민들에게 커피를 나눠줄 것이다. 사람들도 원천상회를 까마득하게 잊을 것이고 무심히 차표를 끊을 것이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와 아이스크림과 초코파이를 살 것이다. 오후 늦게 라면을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삶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여행수첩

먹거리 파로호 가는 길목인 간동면에 있는 화천어죽탕은 잡고기를 갈아 야채와 끓여내는데 담백하고 깊은 맛을 풍긴다. 화가인 주인장이 다양한 소품으로 꾸민 식당도 볼거리다. 대이리의 콩사랑은 콩 요리 정식, 모둠보쌈 등을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간동면사무소 앞에 자리한 유촌식당은 화천군민이 사랑하는 막국숫집이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직접 뽑은 메밀면을 가득 담아 내온다. 도토리 향이 진한 도토리전병도 맛있다. 압권은 감자를 직접 갈아 부쳐낸 감자전. 쫀득한 식감이 최고다.


백암산 케이블카 화천 백암산은 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다. 1953년 휴전을 앞둔 시점, 국군은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백암산을 확보하고 반격을 시작해 그해 7월 19일 금성천 이남 지역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적군 2만7216명을 사살하고 전상(戰傷) 3만8700명, 생포 186명 등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백암산 정상에 오르는 케이블카는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을 북상해 오가는 국내 유일의 케이블카다. 정상의 해발고도 역시 1178m로 국내에서 가장 높다. 백암산 정상에서 북 금강산댐까지 거리는 고작 16.69㎞다. 케이블카 내부 바닥 일부는 유리로 마감해 관광객들은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민통선 이북에 있는 백암산 청정 자연을 약 15분간 관찰할 수 있다. 군부대 작전상 이유로 백암산 케이블카는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제로만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