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8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세계 최대 바이오 행사인 ‘2023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이 열렸다. 미국 바이오협회(BIO)가 주최하는 바이오USA는 JP모건 헬스케어콘퍼런스, 바이오 유럽과 함께 대표적인 글로벌 바이오 행사로 꼽힌다. 기술이전·연구개발 협업, 인수합병(M&A), 투자 등 논의 초기부터 파트너십 체결까지 다양한 미팅이 진행된다. 둘째 날인 6일 ‘바이오 기업의 치료제 개발 전략’이라는 주제의 대담 세션(Fireside Chat)에 참석한 누바르 아페얀 모더나 공동설립자 겸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 회장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모더나는 현재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다”며 “캐나다와 영국, 호주에 백신 생산 공장을 먼저 지을 계획이며, 한국도 어느 정도 조건이 맞는다면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페얀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초 미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찾아가 만난 인물이다. 그는 “올해 들어 이 회장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다섯 번 이상 만나 바이오산업 육성 전략에 대해 토론했다”라며 “이 회장이 바이오 생태계 육성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회장은 바이오 벤처 생태계를 키우는 데 진심”이라고 말했다.
아페얀 회장은 미국의 거물급 바이오 벤처투자자다. 지난 1999년 미국 벤처캐피털(VC)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을 설립해 20여 년간 100여 곳을 설립하거나 투자했다. 이들의 합산 기업 가치는 지난해 기준 1000억달러(약 128조원)에 달한다. 자기자본으로 누적 31억달러(약 4조원)를 투자했고 190억달러(약 24조원)를 외부에서 조달했다. 그는 지난해 기준 약 54억달러(약 6조9500억원) 규모 9개 펀드를 조성했다.
지난 2010년 아페얀 회장은 데릭 로시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로버트 랭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창업한 초기 모더나에 투자하고, 프랑스 진단기기 업체 비오메리외의 스테판 방셀 회장을 모더나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현재 모더나는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의 투자 포트폴리오 회사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됐다. 2010년까지 매출이 없던 작은 연구소이던 모더나를 10년 만에 전 세계 백신 업계 2위로 키운 것이다.
아페얀 회장은 캐나다 맥길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MIT 화학공학과 박사 학위를 받고 1989년 바이오 장비 전문 바이오텍인 ‘퍼셉티브’를 창업했다. 이후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을 포함한 수십 개의 바이오 기업 창업에 참여했다.
아페얀 회장은 “해결책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아페얀 회장은 최근 반도체를 이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를 점찍은 이재용 회장에 대해 “주력 사업을 바이오로 전환하면서 빠른 성장을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아페얀 회장과 일문일답.
이재용 회장과는 얼마나 자주 만나나.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몇 번일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것보다는 많이 만났다. 올해는 한국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비롯한 공식 행사가 많아서 다섯 번 정도 만났다. 오프라인 미팅 말고 온라인으로는 더 자주 만난다.”
주로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나.
“나와 대화할 때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온통 바이오뿐이다. 바이오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키우려고 내게 조언을 구하고는 하는데, 사실 조언이라는 표현보다 동료로서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바이오산업에서만 36년간 일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분야에서는 내가 그의 멘토가 되고 그가 나의 멘티가 된다.”
삼성그룹이 반도체에 이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를 택했다. 어떻게 보나.
“이 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을 세계 수준으로 키운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쉽지 않았을 거다. 자신의 기업만 키우는 게 아니라 바이오 벤처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육성한다는 전략도 긍정적으로 본다. 삼성이 한국 바이오 생태계를 만들 거라고 본다.”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은 어떤 기업인가.
“전통적인 의미의 투자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바이오 기업도 아니다. 각자의 고유성이 있는 회사를 만들어내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니크한 제품 탄생의 핵심 기술인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거다. 우리는 건강과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담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사를 구상하고 창조하는 것을 추구한다. 우리는 매년 6~8개의 플랫폼 회사를 설립하고 있다. 요즘 새로 눈에 띄는 기업은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이 특히 눈여겨보는 기술이 있나.
“아무래도 플랫폼 기술이다. 모더나가 mRNA 백신을 만든다고 했을 때 다들 그게 뭔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매출을 포기하면서까지 플랫폼 R&D(연구개발)를 했기 때문에 지금 빛을 보게 됐다. 현재 모더나의 자체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 중인 후보물질만 50개 정도다. 최근 항암 백신도 세계 최초로 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은 개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꼭 투자해야 하는 기술이다.”
최근 한국에 많은 바이오 기업들이 탄생하고 있다. 국내 기업에 투자 계획이 있나.
“최근 한국에 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관심은 아주 크지만, 아직 누가 어떤 분야에서 잘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신약 개발이나 유전자치료제 같은 새로운 모달리티(치료법) 분야는 한국이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 바이오에 투자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면 난 아직 대답할 준비가 안 돼 있다. 다만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최근 모더나가 미국 케임브리지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 제조 공장 구축에 나섰다. 한국도 후보에 있나.
“모더나가 현재 mRNA 백신 파이프라인을 늘리고 있는데, 기본적인 생산 공장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캐나다, 영국, 호주가 가장 먼저 진행될 예정이고, 조건을 충족한다면 한국도 검토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다만 mRNA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 극소수다. DP(완제의약품)와 DS(원료의약품) 생산이 모두 가능한지, 얼마나 다양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지가 공장이 들어설 나라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풀려면 우선 현재 뭐가 부족한지, 어떤 게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시장을 모른다면 자국의 투자자들을 만나는 것도 좋다. 그들은 굉장히 많은 기업을 만나면서 시장이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안다. 투자자들의 반응을 끌어내고 인정받는 기술이라면 그 회사는 성장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