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춘천의 수제맥주 전문 양조장인 감자아일랜드의 시그니처 메뉴(대표 제품)는 감자맥주다. 감자아일랜드는 최근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몰 지하에 새로 팝업매장을 냈다. 강원도 특산물인 감자를 아낌없이 넣은 감자아일랜드피자를 비롯해 춘천닭갈비 피자 등이 인기 메뉴다.
이곳에서 내놓는 음식 식자재 대부분은 강원도 농산물이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강원도 춘천에서 대학을 다닌 청년 둘이 만든 기업이 지난 5월 말부터 운영하는 임시 매장이 이곳 롯데월드몰 지하 1층 감자아일랜드다. 강원도 춘천에 본사를 둔 감자아일랜드는 2021년에 설립한 신생 맥주 양조장이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고객들이 음식과 함께 누구든 공통적으로 시키는 음료가 하나 있다. 이곳 업장의 시그니처 맥주인 감자맥주다. 강원도 감자를 맥주 부재료로 넣은 맥주다. 청량감과 함께 쌉싸름함이 특징인 수제맥주에, 그런데 감자라니? 감자맥주 맛은 과연 어떨까?
그런데 웬걸? 감자 향이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라거 같은 에일맥주 스타일이다. 목 넘김이 좋지만, 홉에서 느껴지는 쌉싸름함이 마시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잘 만든 수제맥주다. 하지만, 감자 맛이나 향이 느껴지지 않는 감자맥주는 좀 이상하다. 감자 향이 안 나는 맥주에 굳이 감자는 왜 넣었을까 싶기도 하다. 고향인 강원도 농산물인 감자 소비를 위해? 세상에 없는 맥주를 만들고 싶어서? 또, 생각해 보면 감자 맛이 나는 맥주는 호불호가 나뉠 것 같았다.

사실, 감자는 술 재료로 각광받는 농산물이 아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보드카를 제외하고는 감자가 들어간 술은 찾기 어렵다. 전 세계 맥주 시장 전체를 둘러봐도 감자맥주 개발 기록은 일부 있지만, 시판 중인 감자맥주는 어디에도 없다. 감자아일랜드는 강원도의 대표 작물인 감자를 활용한 수제맥주를 만드는 청년 스타트업이다. 춘천의 강원대 독어독문학과 선후배인 김규현, 안홍준 두 청년이 공동 대표다. 강원대 재학 중에 수강한 창업강좌가 계기가 됐다. ‘해마다 버려지는 감자를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지역 수제맥주 양조장으로 이어졌다. 인터뷰는 김규현 대표 혼자 응했다.
우선, 궁금했던 감자맥주 개발 스토리를 물었다. 감자를 넣고도 감자 맛이나 향이 안 나게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감자는 특유의 이취가 있다. 이 냄새는 사실, 술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감자의 이취를 최대한 줄이는 게 관건이다. 아직 감자 특유의 이취를 완전히 잡지는 못했다. 감자 함유량을 더 늘리지 못하는 이유다. 감자 함유량은 전체의 2%가 못 된다. 하지만, 이게 적은 게 아니다. 맥아 투입량의 40% 수준이다.”
하지만 감자맥주 개발에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감자의 이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자에는 전분이 많다. 이 전분이 당분으로 바뀌고, 이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는 과정이 바로 발효다. 그런데, 맥주의 알코올은 맥아(싹을 틔운 보리)에서 나온다. 맥아가 갖고 있는 전분이 당분으로, 또 알코올로 바뀌는 것이다. 감자맥주는 맥아에도 전분이 있고, 감자에도 전분이 있으니, 알코올 만들기가 더 쉬웠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발효 공정이 너무 어려웠다. 감자 전분의 당화 발효, 알코올 발효가 예상치보다 훨씬 낮았다. 발효에 문제가 있는 데다 ‘꼬리꼬리한’ 향이 나서, 도저히 술로서는 빵점이었다. 경기대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맥주 양조를 배웠지만, 공동 창업자 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전문 양조인도 영입하고, 또 강원도 농업기술원 도움도 받았다. 감자 알코올 발효는 몇 가지 효소를 넣어서 어느 정도 해결했고, ‘꼬리꼬리한’ 이취는 상당 부분 잡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감자를 맥주에 넣기가 그렇게 어렵다면, 감자를 안 넣으면 될 일 아닌가. 어차피 감자는 부재료에 불과하지 않은가. 맥주 맛을 결정하는 건 감자가 아니라, 맥아와 홉이다. 그런데 두 청년의 생각은 달랐다. 맥주 양조를 포기했으면 했지, 감자맥주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강원도의 특산물로 감자만 있는 게 아니듯이, 감자아일랜드가 감자맥주만 만드는 건 아니다. 강원도 홍천의 옥수수를 넣은 옥수수맥주, 영월의 팥과 사과를 넣은 팥맥주와 사과맥주 그리고 춘천의 복숭아를 넣은 복숭아맥주도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감자아일랜드 제품 가격은 일반 수제맥주에 비해 싸지 않다. 355 한 캔에 6000원 정도다. 500 네 캔에 1만원, 1만1000원 하는 편의점 수제맥주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김규현 대표는 입장이 명확했다.
“우리 제품을 편의점에 판매할 생각이 없다. 편의점의 저가 공세에 맞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편의점이 수제맥주 시장을 키운다는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반대라고 여긴다. 편의점 맥주 매대를 한번 가보면 금방 안다. 어떤 수제맥주가 새로 나왔는지 고객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또 다른 제품들로 교체된다. 신제품 교체를 너무 빨리하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브랜드를 제대로 알리기 어렵다. 이건, 수제맥주 시장을 죽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특히, 편의점 본사에서 너무 낮은 단가를 요구하다 보니, 결국 품질 좋은 수제맥주들은 편의점에 진출할 수 없고, 소비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제맥주들은 재료를 아낀 제품들일 수밖에 없는 게 지금 현실이다.”
강원도 농산물 활용을 목표로 감자아일랜드를 창업했다고 하지만, 감자아일랜드의 지역 농산물 소비는 아직 미미하다. 우선 맥주 재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맥아와 홉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끝으로 김규현 대표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물었다. “우리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서 맥주를 만들어, 지역과 상생하고, 이 맥주들을 국내 전체와 나중에는 해외에까지 퍼뜨릴 욕심을 갖고 있다. ‘감자 섬’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 우리가 현재 만들고 있는 감자아일랜드 브랜드 전체를 판매할 것이다. 여기에는 맥주뿐 아니라 다양한 음료, 의류, 굿즈들도 있을 것이고, 지역의 우수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다양한 지역 브랜드도 선보일 생각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과 해외로 진출한 뒤, 다시 지역으로 돌아와 지역 경제와 또 다른 차원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