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위기(polycrisis)’는 여러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더 큰 위기를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프랑스 철학자 에드가 모랭이 1990년대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2016년 장 클로드 융커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시리아 난민과 영국의 EU 탈퇴 등을 두고 다중위기를 말했고,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칼럼 등에서 언급하며 알려졌다. 최근 다중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기후변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인플레이션 충격 등이 이어지면서다. 올해 1월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2023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행사에 앞서 발표한 ‘세계위험보고서 2023’에서 “세계가 다중위기에 직면했고 다중위기가 무력 충돌 등 파국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투즈 교수는 “우리가 지금 직면한 갖가지 다른 유형의 충격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같이 어우러지지 않는 성분들이 섞여 소화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포럼 참가자들은 다중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광범위한 협력과 다자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포럼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이 빠지면서 의미가 퇴색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필자는 현재 우리가 마주한 다중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인공지능(AI), 기후변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을 지목하며 이는 곧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어려운 시대다. 많은 일이 빠르게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컬럼비아대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이를 ‘다중위기’라고 불렀다. 다중위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다중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AI, 기후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세 가지를 꼽는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회장
런던정경대 철학 석사, 
퀀텀 펀드·오픈 소사이어티 펀드 설립자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회장
런던정경대 철학 석사, 퀀텀 펀드·오픈 소사이어티 펀드 설립자

원인 1│AI

2022년 11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가 챗GPT를 무료로 공개하며 AI는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챗GPT는 구글의 비즈니스 모델에 위협이 됐고, 구글은 하루라도 빨리 경쟁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얼마 후 AI 대부로 여겨지던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이 구글에서 사임했다. 새로운 기술이 초래할 위험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AI를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힌턴은 AI가 더 강력해질수록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강한 기계를 만들 수 있지만 아직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보다 더 똑똑한 기계를 개발한다면?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으려면 5년에서 20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AI는) 강력해질수록 목표를 더 잘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힌턴의 말은 괴테의 시 ‘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를 떠올리게 했다. 마법사의 제자는 스승이 가르치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승이 바닥 청소를 시키자 빗자루에 마법을 건다. 빗자루는 제자의 마법에 따르지만, 제자는 빗자루가 청소를 위해 물통을 계속 가져오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집은 침수되고 만다.

필자는 AI를 규제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그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강제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전 세계는 정반대되는 두 가지 거버넌스 시스템이 대립하고 있어 공통의 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 개방형 사회와 폐쇄형 사회는 규제 대상과 그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개방형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고, 폐쇄형 사회에서 개인의 역할은 통치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AI는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평범한 인간의 지능으로 이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I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AI가 폐쇄형 사회에는 도움이 되지만 개방형 사회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AI는 폐쇄형 사회가 구성원을 감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통제 수단을 만드는 데 특히 능숙하기 때문이다. 

AI 개발자 대부분은 AI 규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미국 의회와 조 바이든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AI 기술 발전 속도는 미 정부 당국보다 훨씬 더 빠르다. 바이든 행정부는 몇 가지 행정 조치를 취했지만, 앞으로 ① ‘AI 권리장전(AI Bill of Rights)’ 같은 것을 제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가 있다. 2024년 미국과 영국에서 총선이 예정돼 있다. AI는 허위 정보와 가짜 정보를 생성하는 데 매우 능숙하기 때문에 이를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급증할 수 있다.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

원인 2│기후변화

다중위기의 두 번째 원인은 기후변화다. 인간의 개입, 특히 온실가스, 이산화탄소, 메탄 사용이 크게 늘면서 글로벌 기후 시스템이 교란되고 있다. 2015 체결된 ② 파리기후협정에는 21세기 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모든 노력에도 온난화 속도는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현재의 기후 정책으로는 2100년까지 지구가 2.5~2.7도가량 더 뜨거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학자들은 이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 온도가 지난 400만 년 이래 최고치로 올라가고, 이로 인해 그린란드, 히말라야 및 서남극의 빙상이 완전히 녹고 해수면이 10m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록스트롬(Johan Rockström)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장은 “열대우림과 많은 온대림 등 지구상의 모든 대형 생물 군계가 붕괴될 것이며, 영구동토층이 갑자기 녹으면서 해양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되고, 생명체가 살고 있는 육지 상당 부분이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 사람들의 생계를 방해할 때, 사람들은 생계를 지키고 싶어 한다. 일례로 독일과 네덜란드의 농부들은 질소 배출 규제 때문에 소를 키울 수 없다는 이유로 규제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에서 승리해 EU를 흔들고 있다.

우리는 기후변화와 싸우는 것에서 예정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 우리는 기후과학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것을 실행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빠르게 줄이고, 과도하게 배출한 대기 중 온실가스를 제거하고, 북극을 다시 얼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공동체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가능한 한 빨리 이뤄져야 한다.

원인 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식량 공급에 차질을 빚고, 주요 지정학적 재편을 초래하는 등 전 세계에 부정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우크라이나 군대는 영웅적으로 저항했고, 미국과 유럽의 강력한 지원으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형편없는 지휘 아래 완전히 부패한 러시아 군대는 종이호랑이(paper tiger)였다. 민간 용병 부대인 와그너 그룹이 한동안 침공을 지원했지만 결국 그들도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서방이 약속한 모든 무기와 장비가 인도되는 즉시 반격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성공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해군의 본거지인 크림반도와 러시아와 육로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다. 물이 없는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러시아 연방의 많은 지역이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독재 정권 아래서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번 사태로 러시아 연방을 완전히 거부할 수도 있다. 푸틴의 꿈인 러시아 제국의 부활은 붕괴되고 더 이상 유럽과 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식은 전 세계에 긍정적인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제 침체기인 중국은 미국과 협상을 더 수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정권 교체가 아니라 대만의 현 체제 유지를 원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패배하고 미·중 긴장이 완화하면 세계 지도자들은 기후변화와 싸우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로 가는 길은 좁고 험하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다중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점을 갖는 것이 적절하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10월 ‘AI 권리장전(AI Bill of Rights)’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권리장전은 AI 기술 개발과 사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여기에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개인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권리 △AI 작동 방식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을 권리 △AI 대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등 5가지 원칙을 담았다. AI 권리장전 청사진은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AI의 부작용을 언급하고, 이를 막기 위한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법적 효력이나 구속력이 없어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15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본회의에서 195개 당사국이 채택한 협정.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주도로 체결된 협정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탈퇴했으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가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