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8명으로, 전 세계를 통틀어 사상 최저치를 나타냈다. 외국인을 포함한 한국의 총인구는 이미 2021년 5173만8000명을 기록한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인구 요인 등으로 2025년 이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가파른 출산율 하락 속도는 인구 경제학을 연구하는 세계경제 석학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의 과제로 다뤄진다. 6월 20~21일 정책평가연구원(PERI) 주최로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PERI 심포지엄 2023’에 참석한 경제 석학들은 한국 경제가 인구 감소로 인한 저성장에 빠지지 않기 위한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정책평가연구원은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경제수석 등을 지낸 안종범 원장이 설립한 민간 연구기관으로, 한국의 브루킹스연구소를 지향하고 있다.
“韓, 인구 유지 위한 적정 출산율은 2.04명”
한국의 저출산은 정상 궤도에서 얼마나 이탈한 것일까. 미국 인구학회 회장을 역임한 로날드 리 미국 UC 버클리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한국에서 정부가 균형적인 공공 지출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이 2.04명에 도달해야 한다”면서 “경제 주체들의 소비와 생산성을 최대치로 올린다고 가정하더라도 출산율이 1.55명을 유지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공급 부족은 경제 주체들에게 막대한 사회 보장 지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 교수는 “한국의 사회 보장 지출은 규모만 놓고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낮은 수준이지만, 매년 5%씩 늘어나는 지출 증가 속도는 최상위권”이라면서 “현 추세라면 한국인은 세금이나 사회보장을 위한 이전 지출로 개인소득의 30% 이상을 지출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전 지출 비중이 소득의 30%를 넘으면 근로 의욕이 저하하는 등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폭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산성 높은 여성 노동력 활용 늘려야”
전문가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저성장을 피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고령층 노동력 활용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젠더 및 공공 정책 분야 권위자인 도나 긴서 캔자스대 교수는 OECD 통계 등을 인용하며 “2022년 한국의 25~54세 노동시장 참여율은 여성이 67.2%, 남성이 88.1%였다”면서 “여성의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은 저출산과 함께 한국 경제의 저성장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긴서 교수는 “대졸자 비중 등으로 측정되는 한국 여성 노동인구의 생산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장시간 노동, 높은 자영업자 비중 등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낮추고 있다”면서 “여성 고용률을 올리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국민의 이전 지출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재 60세인 고령층의 은퇴 시기를 70세 수준으로 늦추고,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은퇴 시기가 근접한 세대에 대한 재교육을 강화해서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노동시장 경직성 타파해야 출산율 반전”
경직적인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를 유연하게 개혁해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고령화 및 사회복지 분야 연구의 권위자인 이상협 하와이대 교수는 “한국은 교육열이 높은 만큼 아동을 양육하는 데 많은 시간이 투입된다”면서 “현재의 경직적 노동시장 구조에서는 자녀를 키울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에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고령층·여성의 경제활동을 높이기 위해서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등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완화하고, 근로자의 근로 시간 선택권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산장려금·육아휴직, 저출산 완화에 도움 됐나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 전국 곳곳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출산장려금 지급을 늘리고 있는 가운데, 5월 4일 충청북도 괴산군이 넷째 쌍둥이 자녀를 출산한 부부에게 1억원을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했다. 2000만원이었던 괴산군의 출산장려금을 2023년부터 5000만원으로 올린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출산장려금 1억원 시대’가 열렸지만, 인구 경제학계 석학들은 재정 지출 위주의 저출산 대책 효과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도나 긴서 캔자스대 교수는 “한국 여성의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은 낮은 파트타임 일자리의 비중 등 제도적 요인에서 발생한 측면이 있다”면서 “육아휴직제, 출산장려금 등 정부 정책 효과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긴서 교수 연구팀 분석 결과, 한국에서는 2012년 이후 파트타임 근로자에게 육아휴직을 허용하고, 휴직 가능 자녀 연령을 8세로 확대하는 등 세 차례 제도 개선을 했음에도, 여성 고용률은 하락했다. 긴서 교수는 “2012년 제도 개혁 이후 첫째 자녀 출산 여성의 고용률이 1년 후 34%, 5년 후 14% 하락하고, 마지막 자녀 출산 여성의 고용률은 1년 후 18%, 5년 후는 13%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에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은 “한국에서 출산·육아휴직 활용도는 기업·산업 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서 “대기업과 공공 부문은 휴직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지만, 중소·영세기업에서는 제도 활용에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육아휴직제가) 여성의 재취업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긴서 교수는 출산장려금의 경우 “농촌 지역에서 둘째 아이 출산이 늘어나게 하는 데 유의미한 영향이 있었으며, 첫째 아이 출산도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장려금의 출산율 제고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로날드 리 UC 버클리 교수는 “스웨덴 정책 중 (출산장려금과) 비슷한 지원이 있었는데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높아졌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시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아동 수당, 양육비 지원 등 정부 재정 지원이 출산율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상협 하와이대 교수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원금을 줄 게 아니라 근로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노동 정책 전환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출산장려금 등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하다는 게 다수 국내 연구 결과”라면서 “데이터에 기반한 사후 평가로 (출산장려금 등) 정책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