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 모차르트의 작품이야 워낙 유명하니 라디오나 TV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듣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방송 당일 필자는 모차르트의 작품 중 단조 조성의 작품만 골라 연주를 해봤다.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음에도 600곡이 훨씬 넘는 작품을 작곡했다. 그가 작곡한 작품의 조성을 살펴보면, 밝고 온화하고 또 즐거운 느낌으로 가득 찬 장조의 작품이 많다. 그에 비해 슬픈 기운이 감도는 단조 조성의 작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에 비해 꽤나 적은 편이다. 그렇기에 모차르트의 단조 작품을 찾아보고 연주해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클로버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는 듯한 진귀한 행운과 기쁨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단조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러 매체에서 “어린아이같이 해맑고, 천사같이 순수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라고 모차르트를 소개하고 있다. 필자도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그런 이가 가진 마음속 그림자를 이해하고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주자로서 모차르트의 단조 조성 작품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해야 할지는 늘 오르지 못할 산과 같은 난제였다.
필자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어린 시절부터 무척 좋아했다. TV나 라디오에서 그의 음악이 나올 때면 따라서 흥얼거리며 노래하고 춤을 췄던 기억도 있다. 그중 떠오르는 재미있었던 기억은 바로 한 오렌지 주스 TV 광고인데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가 배경음악으로 나온 것이었다(이 아리아는 비록 단조 조성이지만 광고에는 중간에 장조 부분만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이 아리아는 기술적인 난도가 너무 높아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는 콜로라투라소프라노에게도 여간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한다. 음역대가 워낙 높고 빠른 템포에 음정의 도약도 넓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듣기에 아름답고 또 워낙 유명한 아리아인지라 현시대 대중에게도 여전히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당시 어린 필자도 이 작품이 상큼한 오렌지 주스와 잘 어울릴 정도로 맑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이렇듯 명랑하고 해맑은 줄만 알았던 모차르트 음악에 대해 필자의 관점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몇몇 사건이 후에 있었다. 필자가 모차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유학을 가서 독일어를 배울 시기에 잘츠부르크 여름음악축제에서 오페라 ‘마술피리’를 처음으로 관람할 때였다. 그때 그 유명한 ‘밤의 여왕 아리아’를 직접 눈과 귀로 보게 됐는데, 당시로서 너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비로소 독일어로 가사를 이해하며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가사는 바로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Tod und Verzweiflung flammet um mich her”였다. 우리말로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에서 끓어오르고 죽음과 절망이 나를 에워싸고 불타오르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필자가 어렸을 때부터 오렌지 주스만큼 상큼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멜로디는 밤의 여왕의 분노에 찬 절규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오페라가 징슈필(Singspiel)이라는 장르고 희극적인 요소를 띠지만, 그럼에도 가사에서 엄청난 감정이 느껴졌다. 모차르트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은 여전했지만, 가사의 뜻을 이해하고부터 그 아리아의 선율은 필자의 마음에서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러한 모차르트의 아름다우면서도 극적인 음악적 표현에 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모차르트가 살던 고전 시대에는 보통 음악이 궁정에서 연주됐기에 아무리 화가 나도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위는 당시 궁정 예법에 어긋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당시 시대에 맞는 취향과 에티켓 안에서 감정을 다듬어 표현했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필자가 겪은 또 다른 사건은 2월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를 수년 만에 다시 찾았을 때였다. 이곳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모차르트의 얼굴이 그려진 ‘모차르트 초콜릿’을 한 바구니 집어 들고 계산을 마친 후 포장지를 벗겨 달콤한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기뻐하는 사이, ‘내가 지금 즐거워하고 열광하는 것은 쓴 카카오가 아닌 그 쓴맛을 정제하기 위해 듬뿍 넣은 설탕과 버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비유를 들어 그간 즐겨 감상하고 연주했던 모차르트는 필자가 지금껏 편견으로 고정해 놓은 모차르트 이미지인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음악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모차르트가 마음속 깊이 감춰 놓은 인생의 그림자, 슬픔, 고통, 비애는 설탕 같은 달콤한 맛에 가려져 있었다. 필자는 그간 이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자기 삶과 치열하게 살다 간 한 인간이었다. 물론 하늘이 내려준 천부적 재능이 있었고 아버지의 열성적인 교육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유럽 사교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오며 신동이라는 극찬을 늘 받았지만, 장성한 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녀야 했고 그럼에도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파리로 향하던 중 그를 도우러 함께 떠난 어머니가 객사한 것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잘츠부르크를 떠나기 위해 몇 번이고 간청했지만 이를 끝내 방해했던 대주교로부터 거절 편지를 받는 쓴 순간도, 또 현재는 걸작으로 추앙받는 오페라 작품이 당시는 관객의 별 반응 없이 막을 내리는 실패의 순간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도 실패를 비롯해 인생의 쓰고 비통한 맛을 보는 대다수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러한 모차르트의 삶을 간과한 채 필자는 그간 그의 인생에 있어 영광스러운 밝은 부분만 보려 했다. 그러니까 영광만 가득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그를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밝은 음악을 들려주었던 그가 어쩌다 한 번 조심스럽게 마음의 그림자를 살짝 보여줬을 때, 엄청난 낯섦을 느낀 게 아닐까. 그간 필자가 가지고 있었던 모차르트의 이미지를, 편견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그의 진심을 피하고 부정하려 하지 않았나, 고백해 본다.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모차르트
아다지오 나단조 K. 549
포르테 피아노 리처드 이가(Richard Egarr)
최근까지 필자가 연주하기 너무도 어려워했고 불편해했던 모차르트의 단조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을 두고 형식이 그리 복잡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기술적인 난도가 높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함, 외마디의 짧은 탄식과 외침, 칠흑같이 어두운 숲속에 살며시 비치는 동경에 찬 빛 등, 평소에 자주 접하는 모차르트 음악과는 다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작곡 당시인 1788년쯤 모차르트가 살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전쟁으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며 음악 이벤트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작곡 의뢰와 연주로 생계를 유지했던 모차르트의 수입은 자연스럽게 급감했고, 재정적인 어려움에 힘들어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당시 ‘대관식 피아노 협주곡’ 등을 발표하며 커리어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 단조 작품을 들어보면 인생의 희망과 의지라는 빛에 가려진 한 인간의 나약한 슬픔이 살며시 엿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