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위한 레드카펫을 깔고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한 국방 및 무역협정을 선언하며 양국 관계의 신기원을 환영했다.”
6월 23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해외 주요 언론들은 6월 20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진행되는 모디 총리의 방미 행사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2021년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외국 정상의 국빈 방문을 맞은 건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해 4월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모디 총리가 세 번째다. 2014년 집권한 모디 총리는 그간 미국을 다섯 차례 방문했으나, 국빈 초청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6월 22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로, 양국 관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긴밀하며 역동적”이라고 밝혔다. 모디 총리도 “양국이 글로벌 차원의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에서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었다”고 화답했다.
모디 총리는 6월 23일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도 나섰다. 이는 2016년 방미 때 이어 두 번째 합동 연설이다. 그간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두 번 이상 한 해외 정상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으로 손에 꼽힌다. 바이든 대통령이 모디 총리에게 ‘처칠급’ 초특급 예우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모디 총리는 한때 미국으로부터 외면받아온 인물이었다. 힌두교 민족주의자인 그가 인도 구자라트주 총리 시절인 2002년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유혈 충돌이 일어났을 때, 이슬람교도에 대한 폭력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당시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였다. 미국은 이를 이유로 2005년에는 모디 총리의 입국을 거부하기도 했다.
미국의 태도가 180도 바뀐 것은 중국·러시아와 대결 구도에서 인도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도는 러시아의 오랜 우방국으로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국제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에 등을 돌리지 않은 국가 중 하나다. 최근에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됐는데, 미국 입장에선 안보와 경제 영역 모두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핵심 국가인 셈이다.
모디 총리의 이번 방미 목적은 양국 간의 안보 협력 강화, 무역·투자 관계 개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인도를 포함한 외국 출신 노동자들이 가진 ‘전문직 취업 비자(H-1B)’의 미국 내 연장을 허용하기로 했다. 기존 H-1B 비자는 한 번 연장해 최대 6년까지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대신, 본국으로 귀국해서 연장 절차를 밟아야 했다. 작년 기준으로 H-1B 비자를 받은 외국 노동자 국적의 73%가 인도인 만큼, 이번 조치의 최대 수혜국은 인도다.
연결 포인트 1
방산·양자 컴퓨터 협력에
반도체 투자 유치까지
미국은 인도가 바라던 전투기 엔진 공동 생산과 관련한 기술 이전에 합의하고, 미국의 최첨단 드론을 인도에 판매하기로 했다. 오랜 기간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매해온 인도가 이번 방미를 계기로 방위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인 인도는 최근 수년간 러시아산 무기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인도는 무기 수입에서 러시아산 비중을 2013~2017년 62%에서 2018~2022년 45%로 낮췄다. 양국은 양자 컴퓨터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오픈랜 통신망 등 첨단 분야의 신흥 핵심 기술뿐 아니라 핵심 광물과 원자력에너지 협력도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6월 20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모디 총리를 만난 뒤 인도에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인도 정부는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의 27억달러(약 3조5343억원) 규모 반도체 패키징 공장 설립을 승인했다. 세계 반도체 장비 1위 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또 다른 반도체 장비 업체 램리서치는 각각 인도에 반도체 상용화·혁신센터를 세우고, 인도 엔지니어 6만 명을 교육할 계획이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도 모디 총리와 만나 각각 150억달러(약 19조6350억원), 100억달러(약 13조900억원)를 인도에 투자하기로 했다.
연결 포인트 2
모디 총리 환대,
바이든에게 ‘양날의 검’ 되나
이번 모디 총리에 대한 국빈 대우를 두고, 미국 내에서는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바이든 대통령이 정작 인도의 인권 탄압 등을 눈감아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올해 3월만 해도 미국 국무부는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인도 내 종교적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위협, 영장 없는 체포,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수형 시설 상태 등을 지적한 바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상·하원 의원 75명은 6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인도의 정치·종교 자유의 후퇴 등 우려 사항을 정상회담에서 다뤄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보내며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 의원은 모디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을 보이콧하며 반기를 들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모디 총리는 연설에서 “미국은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이고, 인도는 가장 큰 민주주의 나라”라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에 대해 “미국은 인도가 인도·태평양 역내 안보에 기여하고, 자국의 국익을 수호할 수 있을 정도로 부강해진다면 미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번 모디 총리의 방문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와 관계를 강화할 이익’과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의 전투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위험’이 동반된다”고 분석했다.
연결 포인트 3
모디 총리의 ‘요가 외교’,
기네스 신기록 세워
모디 총리는 백악관 정상회담에 앞서 6월 21일 ‘유엔 세계 요가의 날’을 기념해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 잔디밭에서 1000여 명을 상대로 요가 시범을 보였다. 모디 총리는 코브라 자세, 다운독 자세 등 다양한 요가 자세를 능숙하게 소화했다. 행사에는 135개국의 참가자가 모이며 ‘가장 많은 국적자가 참여한 요가 레슨’으로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모디 총리는 행사 후 소셜미디어(SNS)에 관련 사진을 올리고, “이 행사는 요가가 어떻게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 건강, 평화 그리고 조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요가 애호가’로 유명한 모디 총리는 취임한 첫해인 2014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세계 요가의 날을 제안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인도가 요가 종주국임을 세계에 알리며 요가 산업을 육성하고, 동시에 요가가 대표하는 평화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요가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