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CEO가 6월 5일(현지시각)
2023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복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팀 쿡 애플 CEO가 6월 5일(현지시각) 2023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복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애플이 ‘꿈의 시총’으로 불리는 시가총액(시총) 3조달러(약 3937조원)를 세계 최초로 달성하며 상장사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 애플은 6월 30일(이하 현지시각) 뉴욕 증시에서 주가가 전날 대비 2.31% 오른 193.97달러(약 25만4500원)로 장을 마감했다. 시총은 3조달러의 기준선인 주당 190.73달러를 넘어서며 3조510억달러(약 4004조원)를 기록했다. 애플은 2022년 1월과 올해 6월 28일 장중에 시총 3조달러를 넘어선 적이 있지만, 종가 기준으로 시총 3조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76년 4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등이 애플을 공동 창립한 지 47년 만이다. 애플의 성장을 이끈 ‘아이폰’이 처음 세상에 공개된 2007년 이후 16년 만이기도 하다. 

애플의 시총 3조달러는 라이벌로 꼽히는 구글(1조5300억달러·약 2008조원)의 두 배, 한국 최대 기업 삼성전자(3637억달러·약 477조원)의 여덟 배 이상에 달한다. 또한 전 세계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순위와 비교하면 세계 7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2022년 국가별 GDP 순위에서 6위 영국(3조706억달러·약 4030조원)과 7위 프랑스(2조7829억달러·약 3652조원) 사이다. 한국 GDP(1조6652억달러·약 2185조원)와 비교하면 1.8배 수준이다. AP통신은 미국 부동산 기업 질로우가 집계한 2022년 평균 판매 가격 기준, 미국에서 900만 채의 집을 살 수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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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전문가 팀 쿡, 반도체 자체 개발 기반 생태계 확장

애플은 2018년 시총 1조달러에 도달하는 데까지 42년이 걸렸지만, 2조달러(2020년)를 돌파하는 데는 그로부터 2년이 걸렸다. 다시 약 3년 만에 ‘꿈의 시총’ 3조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애플의 고속 성장 중심에는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쿡은 2004년 잡스가 췌장암 수술을 위해 두 달간 CEO 자리를 비웠을 때 임시 CEO를 맡았고, 이후 2011년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정식 CEO에 올랐다. 미국 기술 전문 매체 와이어드 편집장 출신 리앤더 카니는 2019년 저서 ‘팀 쿡’에서 쿡을 ‘애플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린 천재’로 묘사한 바 있다. 애플이 미국 기업 최초로 시총 1조달러를 돌파한 직후였다.

쿡은 세계 최고 혁신 제품으로 불리는 아이폰의 성공 스토리를 기반으로 생태계를 확장하고, ‘애플 실리콘’으로 알려진 반도체 자체 개발로 원가 절감과 모든 애플 제품 간 연결성을 강화했다. 미·중 갈등 충격을 완화할 중국 중심 공급망 재조정 전략도 펼치고 있다. 

애플워치(2015년), 에어팟(2016년) 등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로 제품군을 확대하는 생태계 확장 전략은 올해 복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 공개로 이어졌다. 6월 5일 열린 2023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공개된 비전 프로는 2014년 애플워치 이후 애플이 9년 만에 내놓은 야심작으로, 1000명이 넘는 개발자가 7년 넘게 개발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착용형 공간 컴퓨터’, 아이폰 이후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의 시작’이라고 강조하며 내년 초 출시를 예고한 상태다. 쿡은 이날 비전 프로를 공개하며 “우리는 증강현실(AR)을 큰 아이디어이고, 심오한 기술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꽤 오래전부터 연구해왔다”며 “비전 프로는 기술의 다음 장(next chapter)이자, 큰 도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나 TV, 스포츠에 몰입하면서 거기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며,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서 추억을 소환해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애플은 2005년부터 자사 컴퓨터에 인텔 칩셋을 사용했지만 생태계 확장과 부품 내재화를 위해 자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2020년 10월 공개한 PC용 칩셋 ‘M1’이 신호탄이 됐다. M1은 아이폰에 탑재된 A14 바이오닉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온칩(SoC)이다. 모바일 기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애플의 A시리즈를 포함해 ARM의 설계를 주로 쓴다. 이로써 아이폰 앱을 컴퓨터에서 쓰는 연결성이 강화됐다. 

공급망 관리 전문가인 쿡 CEO는 아이폰 생산 기지가 중국에 몰려있는 공급망을 인도 등 다른 나라로 분산하는 전략을 차츰 실행에 옮기고 있다. 올 4월 인도에서 첫 매장을 연 것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 투자 업체 시노버스 트러스트의 댄 모건 선임매니저는 “애플은 모든 투자 시나리오에서 투자자의 안식처로 여겨진다”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투자자들이 사들이는 기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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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 “미래 애플 제품 계속 AI 입힐 것”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 인공지능(AI)이 촉발한 ‘테크주 열풍’도 애플 시총 3조달러 돌파를 견인했다. 애플이 시총 3조달러를 넘긴 6월 30일, 미국 나스닥 지수는 1만3787.92에 거래를 마쳤다. CNBC방송에 따르면, 올해 6개월간 나스닥 지수는 31.7% 급등해 1983년 이후 40년 만에 상반기 최대 폭 상승 기록을 세웠다. 

애플은 올 들어 주가가 49.3% 올랐고, 세계 시총 2위(2조5320억달러·약 3323조원)인 마이크로소프트(MS) 주가는 42%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 주가는 196% 치솟으면서 세계 첫 시총 1조달러가 넘는 반도체 기업으로 등극했다. 테슬라와 메타의 주가도 올 들어 각각 142%, 130% 올랐다. 

월가에선 애플이 향후 2년 안에 시총 4조달러(약 5250조원)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티은행은 6월 29일 애플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수’로, 목표 주가를 240달러(약 31만5000원)로 제시했다. 현 주가 대비 20% 이상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웨드부시증권도 6월 28일 애플의 목표 주가를 220달러(약 28만8700원)로 제시했다. 대니얼 아이브스 웨드부시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성장 스토리가 깨졌다고 판단한 월가는 애플의 성장을 과소평가했다”며 애플이 6월 공개한 비전 프로가 큰 이벤트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전 프로와 앱스토어 간 진지 구축이 애플이 생성 AI 앱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다”며 2025 회계연도까지 애플의 시총이 최고 4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5월 쿡 CEO는 AI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면서도 AI를 이미 활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애플 제품에 주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