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수근미술관 앞의 동상. 
2 양구백자박물관에는 
1000점의 백자가 
전시되어 있다. 
3 단아한 아름다움의 
조선백자. 사진 최갑수
1 박수근미술관 앞의 동상. 2 양구백자박물관에는 1000점의 백자가 전시되어 있다. 3 단아한 아름다움의 조선백자. 사진 최갑수
강원도 양구 하면 펀치볼과 두타연을 떠올리지만, 이번에 조금 다른 테마로 양구를 여행해 보자. 바로 그림과 도자기다. 화가 박수근이 양구에서 태어났고,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양구백자박물관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체험 시설도 많다.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대한민국 최고 화가의 고향

양구에 가려면, 화가 박수근에 관해 먼저 알고 가야 한다. 2007년 3월, 한 점의 그림이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낙찰된다. 낙찰가는 45억2000만원. 그 작품이 바로 박수근이 그린 ‘빨래터’다. 2006년 ‘노상’이란 작품이 10억4000만원에 팔렸고, 이듬해 3월 ‘시장의 사람들’이 25억원에 낙찰된 뒤 이어진 기록 경신이었다.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에는 가정 형편이 부유했지만, 아버지의 거듭되는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급속히 기울다가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 가난했던 탓에 미술교육을 받지는 못했던 그는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목탄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소년 시절, 밀레의 작품 ‘만종’을 보며 키웠던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모질게 이어가던 그는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마침내 재능을 인정받는다. 

박수근미술관은 그의 생가터인 양구읍 정림리마을에 세워졌다. 박 화백의 그림에서 주로 보이는 색감과 질감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짙은 화강석을 켜켜이 쌓아 지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그림이 1950~60년대 한국인의 질박한 삶을 녹여내고 있으며 가장 한국적이고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수근의 작품은 작은 유화 한 점이 수억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미술관을 개관할 당시 진품 유화는 한 점도 없었지만, 지금은 유화, 유채화, 드로잉, 판화, 삽화 등 여러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빨래터’ ‘노상’ ‘절구질하는 여인’ ‘애기 업은 소녀’ 등 그의 그림에는 궁핍하고 가난했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는 그의 말은 그의 그림이 지향하는 바를 명쾌하게 말해준다. 

가족이 담겨 있다는 것도 그의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이다. ‘절구질하는 여인’은 아내 김복순을 모델로 했고, ‘애기 업은 소녀’는 딸과 아들을 모델로 삼았다. 전쟁통에 이별과 만남을 거듭하다 가족과 극적으로 상봉한 후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유명한 ‘빨래터’ 그림 밑에는 박수근이 아내에게 보냈다는 연애편지가 적혀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빨래터에 가서 당신을 자세히 보고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박수근미술관은 산책하기에 좋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박수근 파빌리온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박수근 화백이 살았던 창신동의 판자촌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백자 역사를 간직한 곳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종류의 자기가 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다. 고려청자가 옥빛의 화려함으로 보는 이를 찬탄하게 한다면, 조선백자는 그윽하고 담백한 여백의 미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흔히 백자 하면 경기도 광주와 이천, 여주를 떠올리지만, 강원도 양구도 빠지지 않는 백자의 고장이다. 백자를 만드는 원료인 질 좋은 백토가 많이 나 조선시대 왕실의 백자를 생산했던 분원에 백토를 공급했다.

양구백자박물관은 백자 작품을 전시해 놓은 전시실과 백자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실로 나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시대순으로 백자가 전시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14~15세기 초, 고려 말 조선 초기 백자가 먼저 보이는데, 불순물이 섞여 있어 약간 노르스름하고 녹색을 띤다. 조선 중후기 백자는 백색 도는 회백색을 띠며 청화(靑畫)와 철화(鐵畵)로 그린 꽃, 풀, 물고기, 문자 등 다양한 문양이 나타난다. 

감탄이 나오는 곳은 현대백자실이다. 양구 백토를 이용하여 만든 현대 백자가 전시되어 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달항아리를 비롯해 백자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작품 앞에서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압권은 마지막 코스 ‘양구의 백토, 천 개의 빛이 되다’ 전시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1000점. 2019년에 시작해 2021년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창작된 1000점의 백자다. 우리나라 1000명의 도예가가 양구 백토 각 3㎏을 이용하여 각자의 방식(형태·기법·유약)으로 제작했다.

양구수목원. 사진 최갑수
양구수목원. 사진 최갑수

즐거운 목공 체험과 염색 체험

아이들과 함께 체험하기 좋은 곳이 있다. 양구수목원은 DMZ 휴전선 인근 신비의 자연생태를 재현해 놓은 곳. 총면적은 22만 7764㎡에 달한다. 양구에 자생하는 희귀 멸종위기식물의 보전과 증식을 통해 생태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리온실(분재생태관·교육체험실), 야외 분재전시원이 조성돼 있는데 눈여겨볼 곳이 1500여 종의 분재가 전시된 야외 분재전시원. 수령 400년의 ‘용 틀임하는 소나무’가 대표작이다. 

수목원 앞에 있는 목재문화체험장은 목재체험실, 목재전시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목공예 체험 프로그램 상시 운영으로 완구, 시계, 연필통, 도마 등 반제품 제작 체험이 가능하다. 집에서 사용할 도마를 제작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여행수첩

먹거리 제4 땅굴과 을지전망대에서 3~4㎞가량 떨어져 있는 최전방 지역인 해안면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해발 500m 이상의 고산 분지 지형.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분지 안에서 맴돌아 시래기 말리기에 적합한 곳이다. 시래원은 시래기 요리 전문점. 시래기밥을 비롯해 각종 나물이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온다. 각종 나물과 양념간장을 넣고 알차게 비비면 밥 한 공기 뚝딱이다. 양구재래식손두부는 양구산 콩만을 고집하며 재래식 방법으로 손두부를 만든다. 창업주 지영순 할머니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났고, 현재는 2세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양구에서는 사과도 난다. 사과의 생육 한계선이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지금은 철원과 양구까지 북상했다. 15도 이상 일교차가 나는 해발 500~600m의 고지대에서 생산된 양구 사과의 당도는 16Brix(브릭스) 이상이다. 양구 국토정중앙천문대 앞에 있는 까미노사이더리는 양구 사과를 이용해 주스, 식초 애플파이 등을 만든다.

백토 염색 체험 양구역사박물관에 자리한 ‘리아숲 자연주의 스토아’에서는 양구의 백토를 재료로 해 스카프와 손수건 등을 만들 수 있다. 백토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생긴 백색을 띠는 흙으로 백자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백토는 천연 염색의 재료로도 활용되는데, 국내에서는 양구 외에는 백토로 염색하는 곳을 찾기 힘들다고 한다. 백토를 푼 물에 스카프를 담가 조물조물 주물러 주면 예쁜 색상을 띤 나만의 스카프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