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불공정거래 행위를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들도록 범죄행위 동기와 유인을 없애겠다.”
6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를 찾은 이원석 검찰총장이 취재진 앞에서 직접 한 말이다. 사상 최초로 거래소를 방문한 검찰 수장의 공언이었기에 법조계는 물론 증권 업계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검찰과 금융 당국이 ‘금융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시세조종과 미공개 정보 이용, 시장 질서 교란 행위 등 금융·증권 범죄를 지금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고 처벌 강도도 높이기로 했다. 6월 29일에는 불공정거래에 따른 과징금을 부당 이익의 두 배까지 부과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금융 범죄를 저지르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이 총장의 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금융·증권 범죄에 대한 검찰의 강경한 엄단 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불과 1년 전까지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며 서울남부지검에서 금융 범죄 수사를 지휘하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들이다. 작년 7월까지 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을 맡았던 법무법인 율촌의 김락현(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는 2020년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 수사를 이끌었으며,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검사 술 접대 의혹’ 진상을 밝혀낸 인물이다. 김기훈(34기) 변호사는 남부지검 형사6부장 출신이다. 2019년 해외 불법 재산 환수 합동조사단에서 활동하는 등 형사와 금융 사건에서 두루 활약한 베테랑이다.
7월 5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율촌 본사에서 금융조사 대응 태스크포스(TF) 변호사들을 만났다. 율촌 금융조사 TF에는 남부지검 출신 변호사들만 있는 게 아니다. ‘삼성 노조 와해 공작 의혹’ 등 노동 사건, 공안 사건 등을 주로 맡고 창원지검 통영지청장을 끝으로 율촌에 둥지를 튼 김수현(30기) 변호사, 9년간 검사로 일하며 특수·금융·조세 사건을 주로 담당하다 율촌에 와서 ‘7개 제강사 입찰 담합 사건’을 맡아 고객사 임원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이끌어낸 엄상준(변호사시험 2기)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포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금융·증권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여느 때보다 강한 듯하다. 기업과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이 어떤 점을 특히 유의해야 할지 조언한다면.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의 규율 대상이기 때문에 투자받는 쪽으로부터 금품이나 접대받는 걸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라임 사건에서도 라임자산운용 임직원들이 시세조종 세력이나 기업 사냥꾼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그 과정에서 각종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나. 이런 것들이 일종의 ‘관행’이라고 여긴다면,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나는 사실상 공무원 신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또 자산 운용 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펀드 자금 운용 시 항상 배임 위험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펀드 운용 과정에서 특정 펀드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은 사유로 손해를 가하면 자본시장법상 불건전영업행위에 해당한다. 이는 펀드 그 자체, 혹은 펀드 투자자들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
기업은 어떤 점을 특히 유의해야 하는지.
“투자받기 위해서라면 허위 공시나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도 불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투자 유치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하고 싶다. 최근 빗썸 실소유주 강종현씨 사건에서도 호재성 정보의 허위 공시 여부가 쟁점이 되지 않았나.
허위 공시는 특히 전환사채(CB) 발행과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상장사인 A사가 CB를 발행하고 이를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이 인수한다고 가정해보자. 전환권 행사까지는 보통 1년이 걸리는데, 그사이에 허위 공시나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주가를 부양할 수 있다. CB 인수자들은 전환권을 행사해 주식을 확보하고 그중 일부를 매각해 CB 인수 비용을 보전하고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한편, 나머지 주식으로 경영에도 관여할 수 있다. A사의 기존 주주이자 경영진은 주식을 완전히 팔고 나가서 막대한 돈을 벌곤 한다. 이런 불법 행위는 금융 당국의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SG증권발 사태가 그동안의 시세조종 범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 거대한 규모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소위 ‘돌려막기’에는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거대한 자금이 투입됐으니 시세조종이 끝나는 시점에서의 충격파가 너무 강력했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시세조종 범죄는 소위 ‘선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영역이었는데 이번 사태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병원장, 기업가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다 보니 파장도 컸다.
이 사건은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 어느 범위까지 공범으로 기소할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사건에서 ‘시세조종 범죄의 공범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정해지고, 이들에 대한 양형 기준도 설정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시세조종 범죄의 리딩 케이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입장에서 볼 때,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조사 단계와 검찰 수사 단계는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
“금감원은 자본시장법에 관련된 것만 조사한다면, 금감원 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넘어가면 횡령이나 배임 등 다른 죄명이 여러 개 붙는 경우가 많다. 또 수사 대상이 공범으로 뻗어나가고, 재산을 파악해 몰수·추징하거나 압수수색이 들어오기도 한다. 검찰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굉장히 넓다. 변호사로서 하고 싶은 조언은 금감원 조사 단계에서 ‘잘 막았다’고 생각하더라도 검찰 단계로 넘어가면 사건이 더 커질 수 있으니 섣부르게 안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 제정안이 6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향후 검찰 수사가 어떻게 이뤄질까.
“그동안 검찰은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봐서 자본시장법의 규제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번에 아예 가상자산에 특화된 법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가상자산도 사실상 자본시장법과 거의 똑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게 됐다. 주식처럼 미공개 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률 제정 등을 감안해 검찰에서도 남부지검에 가상자산합동수사단을 만들어 가상자산의 수사 기준을 세우고 전문성 있는 수사 인력을 집중 배치했다. 이제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가상자산이 기존 금융 상품과 유사한 수준의 규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코인을 소량 발행해 시세조종을 해 차익을 추구하던 소위 ‘잡코인’들은 앞으로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크다.”
범죄 수익 추징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나. 변호사 입장에선 의뢰인의 실제 범죄 수익만 추징되게끔 하는 게 중요할 텐데.
“갖고 있는 재산 중 합법적으로 보유하게 된 재산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남겨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 범죄 수익에서 유래한 재산이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죄와 무관한 제삼자로부터 송금된 내역, 동산의 양수도 계약서 등을 잘 갖고 있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래야만 정당한 재산이 몰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