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화물선. 사진 셔터스톡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화물선. 사진 셔터스톡

최근 ‘용병의 반란, 모스크바 턱밑에서 멈추다’ ‘바그너그룹, 벨라루스로’ ‘프리고진, 푸틴의 리더십에 타격’ 등 헤드라인이 뉴스 매체의 국제면을 장식하고 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가 고용한 용병 회사인 바그너그룹의 수장으로서 우크라이나 최대의 격전지였던 바흐무트를 점령하면서 유명해졌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보수를 받는 이외에도 솔레라르 소금 광산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참가했다고 한다. 러시아 당국은 왜 민간 기업인 바그너그룹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맡겼을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16세기의 유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16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금과 은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스페인이 남미에서 들여온 금과 은이 유럽 전역으로 흘러들어감에 따라 하층민들도 주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더 많은 사람이 경제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개인들의 자의식도 커졌다. 중세의 지방분권적 봉건국가는 점차 중앙집권적인 민족국가로 대체됐다. 화폐경제의 발달과 함께 민족국가는 중상주의라는 새로운 이론을 토대로 국가 경제를 조직했다.

중상주의는 생산 활동을 늘리기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귀금속을 축적하고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국가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중상주의의 토대가 되는 사상은 금속주의(metalism)다. 금속주의란 화폐의 실체를 귀금속에서 찾는 태도를 말한다. 그레고리 맨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 교과서 ‘경제학 원론’에서 화폐를 내재 가치(intrinsic value) 여부에 따라 실물화폐와 법정화폐로 구분하고, 실물화폐의 사례로 금, 은을 들고 있다. 이러한 맨큐의 구분법에는 금속주의적인 잔재가 남아 있다.

동인도와 서인도

중상주의적 시각에서 봤을 때, 스페인은 좋은 예이자 동시에 나쁜 예에 해당한다. 스페인은 귀금속을 획득하는 데는 능숙했지만, 귀금속을 유지하는 데는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상주의 노선에 따라 완벽하게 조직된 최초의 국가는 영국이었다. 금과 은의 매장량이 적었던 영국은 무역, 탐험, 해적 행위, 힘든 노동을 통해 귀금속을 획득했다. 영국인은 스페인 정복자들과 마찬가지로 험한 일들은 주로 민간 부문에 맡겼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대표적이다.

인도는 하나뿐인데 왜 동인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인도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한동안 유럽인은 쿠바 연안을 인도라고 생각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통해서 쿠바 일대가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유럽인은 아시아의 인도와 신대륙의 인도를 구별할 필요가 생겼다. 따라서 그들은 유럽의 서쪽에 있는 신대륙을 서인도, 동쪽에 있는 아시아를 동인도라고 부르게 됐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한 동인도는 오늘날의 인도 대륙에 한정되지 않는다. 유럽인은 인도를 포함하여 그보다 훨씬 동쪽에 위치한 인도차이나반도, 특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일대를 모두 동인도라고 불렀다.

글로벌 공급망

영국 동인도회사는 1600년 설립된 주식회사로서 동인도 지역의 무역에 대한 왕실의 특허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허란 법률 용어로서, 모든 행위를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국왕이 승인하는 경우에만 그 행위를 허용하는 권력적 국가 작용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특허제도는 그대로 살아남아 한국은행, 산업은행, 마사회 등 독점기업을 만드는 데 주로 이용된다. 

특이하게도 영국 동인도회사는 정부가 아닌 특권층이 소유한 민간 기업이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한 세기 동안 인도를 통치한 군사 조직이기도 했다. 심지어 영국 동인도회사는 자체적으로 화폐를 주조해 유통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인도의 표준 화폐인 루피가 됐다. 또 영국 동인도회사는 아프리카 노예를 북미 식민지로 운송하는 노예무역에도 관여했다. 중상주의 시절 유럽의 국가들은 다양한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자신의 저서 ‘정치·경제의 원리에 관한 연구’를 통해 ‘수요와 공급’이라는 문구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했다. 그는 기업을 전제정치에 대항해 발명한 가장 효과적인 굴레라고 말했다. 국왕과 기업의 공생관계로 인해 국가의 폭력성이 완화된다는 의미다. 스튜어트 생존 당시 영국에서는 삼각무역이 성행했다. 영국은 무기, 철, 직물을 아프리카에 가져가서 노예와 교환한 뒤, 다시 노예를 북아메리카에 데려가서 금, 은, 설탕, 담배와 교환했다. 그리고 북아메리카에서 교환한 상품을 유럽에 가져와서 팔았다. 영국~서아프리카~북아메리카의 교역 항로를 이어보면 삼각형 모양이 되기 때문에 삼각무역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이라는 개념은 이미 16세기에도 삼각무역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뮤턴트

영국 정부가 동인도회사 같은 민간 회사를 이용해 식민지를 경영하면 국제법상 커다란 이점이 있었다. 동인도회사의 용병들이 벌인 전쟁은 사인(私人)이 벌인 전쟁이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전쟁에 개입할 필요가 없고 책임질 이유도 없었다. 영국이 인도에 정규군을 투입하면 프랑스와 국제적 분쟁이 발생하지만, 동인도회사의 용병을 투입하면 개인들 간의 사적 분쟁이 되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투입된 바그너그룹도 알고 보면 영국 동인도회사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러시아의 민간 기업인 것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영국의 사례에 따라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그중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회사는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일부 특권층이 사유화한 반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모든 국민에게 공개됐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식은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일반에 거래됐다. 스페인의 전제정치에서 독립한 네덜란드는 모든 국민이 평등한 공화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형태의 직업이 존중받았고 누구나 주주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는 네덜란드를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주식을 쉽게 사고팔 수 있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네덜란드 기업들은 주식시장을 통해 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곧 믈라카해협의 향신료 무역을 장악하고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뛰어난 후추, 정향, 육두구 등 향신료의 원산지였다. 당시 유럽에는 냉장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국왕도 반쯤 썩어 냄새나는 스테이크를 먹어야 했다. 고기의 냄새를 잡아주는 후추, 육두구 같은 향신료가 유럽에 도입되자 왕실의 식탁에 혁명이 발생하게 된다. 최근 출간된 장하준 교수의 ‘먹는 경제학(Edible Economics)’의 뿌리는 16세기 유럽에 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 덕분에 조선을 비롯한 연관 산업이 호황을 누렸고, 그 결과 네덜란드 해군은 한동안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 이들보다 300년 늦게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도 식민지 경영을 위해 동인도회사와 유사한 민간 기업을 만들었다.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동양척식회사, 만주를 침탈하기 위해 만든 만주철도회사 등이 그러하다. 다만 일본의 경우, 군부의 강한 거부감 때문에 민간 기업이 직접 군사력을 보유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