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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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에서는 ‘정치적 스트레스(political stress)’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치적 스트레스는 일반적인 스트레스와 전개 과정은 비슷하지만, 그 유발 원인이 색다르다. 사람들이 국내외의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사건 등에 노출되면서 상당한 불안을 느끼거나 뭔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감정을 느끼는 등 스트레스의 특수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사회·정치적 스트레스(sociopolitical stress)’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받은 스트레스가 대표적인 정치적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걸핏하면 터지는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 인종 갈등에서 유발된 폭동에 가까운 폭력 시위로 인한 스트레스도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아버지 부시-클린턴-아들 부시-오바마-트럼프-바이든 순서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숨 가쁘게 정권을 교체해 온 미국의 복잡한 선거지형도 미 국민에게는 정치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모양이다. 몇 년 전 미국심리학회(APA)가 자국민의 스트레스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조사 대상의 66%가 미국의 국가 미래가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라고 답했다. 또 57%는 현재의 정치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미국인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시사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선입관과는 꽤 거리가 있는 뜻밖의 결과였다.

두통, 불면 등 신체적 증상 호소

정치적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불안, 걱정, 긴장 등의 정서적인 스트레스와 아울러 두통, 불면, 소화장애 등의 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 하지만 다른 스트레스와 달리 정치적 스트레스는 그 원인이 사회·정치적인 것에서 연유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이라는 전 지구적 현상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국내외의 정치적인 문제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해서 권력자를 맘대로 바꿀 수도 없고, 권력자의 마음조차 바꾸기 쉽지 않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는 몇 년에 한 번씩 치러지고, 그 선거에서 내가 원하는 후보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총기 난사나 인종 폭동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외국의 한 미치광이 독재자가 전쟁을 일으켰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거대한 문제만 정치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스트레스가 미국인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소소한 듯 보이는 일상에서도 정치적 스트레스는 음험한 뱀처럼 어두운 한구석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가 틈만 나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선배는 내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내가 요즘 거의 미칠 지경이야.” “왜요?” “내가 관리자로 있는 카톡방에 특정 정파의 주장을 담은 글을 퍼 나르는 사람 때문에….” “전체 회원들을 위한 공지 사항 말고는 올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 되잖아요.” “그렇게 상식적으로 말한다고 들을 사람이면, 애초에 단체방에 그런 글을 올리지도 않아!”

하긴 나도 연전에 그런 비슷한 일을 몇 번 당한 적이 있다. 여러 사회·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서 툭하면 자신들만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며 낄낄거리는 무리가 있었다. 젊잖게 몇 번 주의를 줬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런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도 대개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불편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공통의 화제만으로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전혀 앞뒤 맥락 없이 자신의 극단적인 정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적인 문제나 종교적인 문제는 논리가 아니라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개 사람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그런 문제로 부딪히는 걸 꺼리거나 피한다. 그러나 몰지각한 일부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이 자신들의 행태를 불편해하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

어떤 때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성향과 비슷한 사람이 올리는 글이나 사진에는 즉각 무수한 댓글을 달면서 희희낙락하지만, 아무리 진지하고 공정한 주장을 하더라도 자신들과 유사한 정치 성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의 글에는 묵묵부답한다. 불문곡직하고 득달같이 떼를 지어 달려들어 상대방을 집단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때로는 욕설과 비방, 인신공격이 함께 하기 일쑤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소셜미디어(SNS) 계정에서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으면, 평소의 친분과 무관하게 무례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친구 관계를 끊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그래 당신 멋대로 살아봐라. 나는 내 갈 길 간다!’하고 무시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회사의 선배나 동료이고, 가까운 지인 혹은 친인척이거나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이라면 진퇴양난이 되는 것이다. 내 친구 A는 자신의 아버지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흘이 멀다 하고 개인 카톡으로 특정 정치 성향의 정보를 보내오는 아버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제는 A가 성격이 워낙 괄괄해서 아버지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기본적인 예의만 지켜주면 될 텐데, 늘 아버지에게 맞서면서 아버지에게는 ‘버르장머리 없는 놈’으로 찍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어떤 정치적, 종교적 의견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쉽지 않다는 것이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타인과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을 수긍하고 넘어가기보다는 끝끝내 상대방을 향해 ‘네가 틀렸다!’면서 항복 선언을 받아내려고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정치적 스트레스를 받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온라인이나 소셜 미디어에서의 토론은 정치적 토론의 무례함과 양극화를 극적으로 부채질한다.

디지털 휴식 취해야

이런 정치적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뉴스 및 SNS로부터의 정보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다. 음식은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되, 과식은 금물이다. 정보도 마찬가지다. 최신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되, 정보의 홍수에 빠지지 않도록 정보 수집을 하는 시간을 줄이고 특정 시간에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른바 ‘디지털 휴식(digital rest)’을 취하라는 것이다. 말이 디지털 휴식이지 이 말에는 오프라인상의 정보 수집에도 휴식을 취하라는 뜻까지 당연히 포함한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좌우 양쪽의 신문을 꼭 챙겨보며 대조하는 버릇이 있다. 균형 잡힌 시각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터넷 시대인 지금도 주요 사안은 꼭 찾아서 비교해 본다. “내 편이라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고, 남의 편이라도 맞는 건 맞는 것이다”라는 말이 내 인생의 중요한 모토 중의 하나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내가 지구를 구하는 독수리 5형제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다. 세상이라도 뒤집을 듯 돈키호테형 과대망상에 빠지면 종국에는 무기력감만 남는다. 하루 종일 뉴스 따라잡기만 하지 말라. 그렇게 해서 남는 시간에 취미생활이나 건전한 커뮤니티 활동, 운동이나 명상, 음악감상 등을 하거나 가족이나 친구하고 함께 보내기를 권한다. 우리는 연결을 ‘맺을 권리’가 있듯 ‘끊을 권리’가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충분한 예의와 상식은 필수적인 기본 전제이다. 

셋째, 앞에서 예를 든 그런 부류의 몰상식과 무례의 대명사들을 생각하면, 많이 어렵고 때로는 절망적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타인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들과 공통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열띤 토론은 절대 피하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려는 노력까지만 해도 좋다. 그럼 나는 어떠냐고? 독자 여러분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중년을 훌쩍 넘기고 있는 지금, 허망한 인간관계에는 더 이상 쓸데없이 감정을 소비하지 말자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얘기만 하고 살기에도 모자라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