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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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부활하는 산업 정책이 경제성장의 강력한 동력이 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를 토대로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특히 반도체와 청정 기술 산업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이클 울프 
딜로이트 투쉬 토머츠 리미티드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메릴랜드 주립대 경제학, 컬럼비아대 경제정책 석사
마이클 울프 딜로이트 투쉬 토머츠 리미티드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메릴랜드 주립대 경제학, 컬럼비아대 경제정책 석사

산업 정책은 14세기에 영국이 모직물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관세 등 정책을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1816년 미국 관세법과 1970년대 한국 국민투자기금법 등을 거쳐 1980년대가 시작되기 직전 정점에 이르렀다. 이후 자유 시장의 힘에 따른 자원 배분을 강조하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지배적인 세계 질서로 자리 잡으면서, 정부 개입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됐다. 하지만 최근 공급망 붕괴와 지정학적 긴장을 겪은 각국 정부가 다시 산업 정책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배터리연합, 일본·호주·인도 공급망 복원 이니셔티브가 대표적이다. 본고는 전 세계적으로 산업 정책이 속속 도입되는 상황이 글로벌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산업 정책이란 관세, 무역 제한, 보조금 등 특정 분야나 산업을 지원 및 보호하기 위한 모든 정부 개입을 뜻한다. 새로운 산업이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정보 공유와 조직화 문제는 민간 부문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데, 산업 정책이 이 임무를 맡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 우선 산업 정책은 원가 구조 확인에 필요한 비용을 기업들에 지원하거나 초기 투자한 기업들을 보호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전후방 산업의 인프라 부족으로 특정 산업의 발전이 저해되지 않도록 조직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철강 공장이 생기려면 에너지 인프라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 식이다.

아이라 칼리시 
딜로이트 투쉬 토머츠 
리미티드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아이라 칼리시 딜로이트 투쉬 토머츠 리미티드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산업 정책, 단기 경제성장 동력 되기 힘들어

과거 산업 정책은 대부분 경제성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현재 산업 정책의 새로운 물결은 공급망 확보, 온실가스 감축, 기술 역량 강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경제성장에 도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과거 산업 정책을 도입했을 때 항상 의도했던 대로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무역 조치나 보조금 방식으로 시행된 산업 정책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지 않는 한 일자리 증가를 주도하지 못했다. 반면 민관 연구개발(R&D)에 초점을 맞춘 산업 정책은 일자리 창출에 훨씬 효과적이었다.

또 반도체 생산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과 같은 방식은 간접 및 기타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세제 혜택은 해당 지역에서 직접적 일자리 창출 외에 기타 고용을 거의 창출하지 못했다. 미국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의 경우 정부는 직간접 및 기타 고용을 합쳐 185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처럼 간접 및 기타 고용이 거의 창출되지 않는다면 실제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30만 개도 채 되지 않을 수 있다.

산업 정책의 기저에는 보호무역주의가 깔려 있고,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 생산 시설이 가장 효율적인 위치로 이동하지 못하고 자국 내에서만 이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이들 산업 정책이 국가 안보에는 도움 되겠지만, 생산 비용을 늘리고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심화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끌어내릴 수 있다.

인플레 둔화 효과 낮아⋯반도체 가격 하락

미국 IRA는 말 그대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재생에너지 투자로 장기적으로 에너지 물가가 하락할 수는 있지만, IRA의 일환으로 이뤄진 투자가 실제로 에너지 물가 하락으로 이어지려면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다. 그러는 동안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 감소가 오히려 에너지 가격 급등을 촉발할 수 있다. 수요가 줄면 투자도 감소하는데, 공급이 수요보다 빠르게 감소할 수 있어,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에너지 물가만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대만, 한국 등 각국 정부에서 인센티브가 쏟아져 나오는 만큼 과잉 공급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 정책으로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미국과 EU는 명시적으로 국내·역내 생산 장려를 목표로 하는데, 이들 지역은 오늘날 반도체 생산 중심지인 대만, 한국, 중국보다 인건비가 훨씬 비싸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몇몇 기업 리더는 미국 내 생산 시설을 신설한 후 인건비 때문에 비용이 늘었다는 불만을 이미 늘어놓고 있다.

기후 목표 달성과 반도체 산업 발전 전망

가장 대표적인 기후변화 관련 산업 정책은 미국 IRA다. IRA의 이행으로 탄소 배출량이 최대 20%포인트 감축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러한 추산이 현실화한다면, 미국은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큰 진전을 이루게 된다. 산업 정책 확산으로 가장 전망이 밝아진 것은 반도체 산업이다. 기술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원이 더욱 두둑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핵심 재료의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산업 정책은 혼재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우선 미국 반도체법이 글로벌 기업들을 강력히 유인해 미국 반도체 생산능력이 확대되면, 정치적 쇼크에 대한 공급망 취약성이 줄어든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첨단 반도체 칩을 대만산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핵심 기술 확보와 관련한 불안감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 결과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법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없도록 하고, 미국 정부는 첨단 반도체 칩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이러한 제약은 이미 중국에서 생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첨단 반도체 기업을 유인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유럽은 자체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구축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다. 반도체 칩 생산량을 늘려도 역내 수요로 흡수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배터리 생산능력 내재화 움직임은 공급 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핵심 재료를 외국에서 공수해야 하기 때문에 공급망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재료는 계속 바뀌고 있지만, 필요 광물의 공급 불안정은 공급망 회복력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 정책 부활로 정부 개입 도미노 예상

일부 국가는 경쟁국의 산업 정책에 맞대응하지 않고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싸우기를 택할 수 있다. 각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도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대만 등 경제 규모가 작아 미국처럼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할 여력이 없는 국가들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대외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여러 단점이 있지만 산업 정책은 분명히 부활하고 있으며, 지난 40년간 정부 개입 축소가 중심이었던 세계 질서는 현재로서는 끝을 보고 있다. 산업 정책이 확산하는 여건에서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대응에 나서야 한다.

1│최근 산업 정책들은 기업들의 기후 목표 달성을 장려하기 위해 광범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므로 기업들은 기후 및 탄소 감축 계획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 

2│기업들은 각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논의해 정부의 우선순위 추진과 함께 기업의 니즈도 충족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3│이미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원하는 스킬을 갖춘 인력을 유치 및 유지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필요한 스킬 종류가 변화하는 만큼, 기업들은 인적자원 정책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4│산업 정책이 확산하면 공급망 변화가 가속화되므로,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생산 기지 우방국 이전)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공급망 구조 재편을 계획할 때, 사업 규제 완화, 에너지 비용, 평균 임금, 물류 등 산업 정책에 따른 혜택과 제약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