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 등 중소 규모 지역은행의 파산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국 정부가 은행의 건전성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을 전망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7월 10일(이하 현지시각) 마이클 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은 “총자산 1000억달러(약 126조9000억원) 이상의 은행들이 자기자본을 더 많이 확보하도록 의무화하겠다”라며 규제 강화 방침을 밝혔다. 중형 규모 은행들로 건전성 규제를 확대한다는 의미다. 이는 국제결제은행(BIS) 바젤은행감독위원회가 2025년 시행 예정인 은행 자기자본 비율 규제의 최종안으로 구현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6월 26일에는 기타 고피나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가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 참석해 “현재 은행의 수익 일부를 자본으로 추가 적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권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는 데 드는 비용과 어려움을 너무 낙관적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앙은행이 대비하기 어려운 안정성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부총재를 지냈던 필자는 이에 대해 “자본 적립 등 거시 건전성 정책은 훨씬 더 신중한 검토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가 자본 적립은 은행의 대출 비용을 높이고 자금 조달 유동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SVB, 크레디트스위스(CS) 등 은행의 파산 위기는 자본 건전성에 대한 감독으로 막을 수 없었던 사태였다고 지적한다. 필자가 자본 규제보다 감독 당국의 ‘감독 재량권’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할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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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연례 포럼에서 고피나스 IMF 수석 부총재는 ‘통화정책을 위한 세 가지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연설했다. 정말 이 연설은 다소 듣기 거북했다.

고피나스 부총재가 말한 첫 번째 진실은 인플레이션율을 목표치로 낮추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으며,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될수록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고피나스 부총재는 연설 중 “자본 완충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도움 될 것”이라며 “은행은 현재의 높은 수익 중 일부를 자본으로 적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청중을 놀라게 했다. 과연 이것이 누구에게 도움 될까. 은행이 수익의 일부를 자본으로 적립할 경우 (안정성은 높아지지만) 신용 대출 여력이 줄고 (대출받는 기업의) 대출 비용이 더 많아질 수 있다. 

다만 고피나스 부총재는 금융 건전성 관점에서 “은행 시스템 전반의 자본 및 유동성 비율은 견고하다”고도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7월 12일 영란은행이 “은행은 심각한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검사)를 견딜 수 있는 충분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확인됐다.

하워드 존 데이비스 
전 영란은행(BOE) 부총재
현 냇웨스트그룹
(옛 RBS그룹) 회장, 전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하워드 존 데이비스 전 영란은행(BOE) 부총재
현 냇웨스트그룹 (옛 RBS그룹) 회장, 전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고피나스 부총재는 금리 인상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수단으로 ① 거시 건전성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거시 건전성 정책은 금융 시스템 내 취약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해결책이다. 최근 바 연준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은 “② 경기 대응 완충 자본의 목표는 좋은 시기에 자본을 추가 적립해, 안 좋은 시기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거시 건전성 정책을 결정하는 데는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려는 고피나스 부총재의 목적보다 훨씬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2017년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한 논문은 “은행 자본 비율에 대한 오랜 데이터를 검토하고 이를 금융 불안정 사례와 연결한 결과, 자본 비율은 시스템적 금융 위기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라며 “거시 건전성 정책은 금융 위기를 예방하지는 못하지만 금융 위기로 인한 비용을 낮출 수는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은행의 재무 건전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최근 미국과 스위스 은행 시스템에서 발생한 문제가 전반적으로 자본을 더 확충해야 했던 사례에 해당하는 게 맞는지 따져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SVB와 CS는 모두 위험에 크게 노출된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했었다. SVB는 특정 시장에 과도하게 집중한 데 따른 불안정한 경영 모델을, CS는 리스크를 추구하는 투자은행 모델을 채택해 위기에 빠졌다. 연준은 SVB 감독에 대한 내부 평가에서 SVB의 실패를 ‘부실 경영의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실패 원인을 자본 취약성이라고 분석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말 스위스국립은행은 CS의 재무 건전성이 충분하고, 국제 수준과 비교해도 평균 이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CS의 강력한 자본력은 올해 초 투자자와 예금자의 신뢰를 잃었을 때 이를 극복하는 데 도움 되지 못했다.

두 은행의 실패는 책 ‘롬바드 스트리트(Lombard Street)’에서 “잘 운영되는 은행은 자본이 필요하지 않고, 아무리 많은 자본을 투입해도 부실하게 운영된 은행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한 월터 바지호트의 견해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여기서 ‘은행이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가 결정할까. 투자자는 몇 년 동안 CS 주가를 떨어트렸지만, 부실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진 못했다. 그렇다면 감독 당국은 과연 부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까.

③ 보통주자본비율(CET1) 지표로 자본 건전성을 가늠하는 현재 감독 당국의 접근 방식은 최근 두 사례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은행이 최소 자본을 충족하고 있더라도 감독 당국에 의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났을 때, 감독 당국의 판단에 따라 은행을 개선 절차에 넣을 수 있을까. 감독 당국이 이런 판단을 섣불리 내린다면 주주들은 이를 분명 비판할 것이다. 집단 소송 등 사법적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다.

이런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자본 확충’이라는 대책은 대출의 신용 가용성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들고 불만족스러워 보인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의 훌륭한 인재들은 엎친 데 덮친 격인 자본 규제보다 ‘감독 재량권’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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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전체 경제에 중대한 손실이 초래되지 않도록 금융 시스템 전반의 장애를 예방하거나 조기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 규제 및 정책을 통칭한다. 우리나라는 금융기관의 자본 유출입 변동 범위를 축소하거나, 전세 대출 보증 한도를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확산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회원국에 권고한 규제. 금융기관들이 신용 확장기에 위험 가중 자산의 최대 2.5%까지 자본을 추가로 쌓도록 하는 것. 완충 자본을 포함한 자본 비율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배당 등 이익 배분을 제한함으로써 실질적 자본 규제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5월 24일부터 은행에 위험 가중 자산의 1%를 추가 자본으로 적립하도록 하고 있다.

총자본에서 보통주로 조달되는 자본 비율을 말한다.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 중 하나로, 위기 상황에서 금융사가 지닌 손실 흡수 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보통주 자본을 위험 가중 자산으로 나눠 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