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월 30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 56번지. 신속통합기획안 주민설명회를 알리는 현수막 뒤로 노후 주택가가 자리하고 있다. 2 서울 종로구 창신동 23번지 일대. 
경사지를 따라 노후 주택들과 가파른 계단이 있다. 3 창신동 23번지의 한 골목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직물을 가득 싣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 조은임 기자
1 6월 30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 56번지. 신속통합기획안 주민설명회를 알리는 현수막 뒤로 노후 주택가가 자리하고 있다. 2 서울 종로구 창신동 23번지 일대. 경사지를 따라 노후 주택들과 가파른 계단이 있다. 3 창신동 23번지의 한 골목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직물을 가득 싣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 조은임 기자

종로 03번 마을버스가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그 뒤를 직물 더미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 두 대가 뒤따랐다. 그 오른편 경사지를 따라 세월을 알 수 없는 주택들이 구불구불 줄을 지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 그 위를 어지럽게 뒤덮은 전봇대의 전선들. ‘신속통합기획안 주민설명회’를 알리는 현수막 뒤로 펼쳐진 서울 종로구 숭인동 56번지의 모습이었다.

최근 서울 지하철 6호선 창신역 4번 출구에서 내려 마주한 숭인동 노후 주택가는 잠잠한 분위기였다. 오전 11시가 다 되도록 도로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재개발 사무실에도 드나드는 발걸음이 없었다. 안쪽 주택가에서는 소규모 방직·봉제공장에서 재봉틀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6월 16일 이곳에는 960가구에 이르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개발안이 발표됐지만 기대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재개발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됩니까. 내가 여기 터를 잡은 게 20년 전인데 그때부터 나왔던 얘깁니다. 돼 봐야 아는 거지 뭐….”

4차선 도로 건너편의 창신동 23번지. 작은 봉제공장에 직원 한 명을 두고 일하던 A씨는 재개발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숭인동 56번지와 함께 신속통합기획이 진행 중인 이곳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신동 일대에만 1260가구, 숭인동과 합해 2000가구가 넘는 신축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이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B씨는 “2주 전쯤 설명회를 했다는 얘기는 들었다”면서도 “재개발 얘기가 하도 오랫동안 오락가락하니 딱히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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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23번지, 숭인동 56번지 일대는 17년 전인 2006년 창신·숭인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됐다. 당시 뉴타운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3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재정비촉진구역에서 해제됐고, 2014년 5월 1호 도시재생 선도 구역으로 선정됐다. 이후 투입된 예산만 1000억원이 넘었다. 하지만 이제는 군데군데 주민 공동시설만이 도시재생 사업의 흔적을 말해줄 뿐 열악한 주거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역사성 보존’이라는 명목 아래 주민들은 십수년 불편한 일상을 감내해야 했다. 1년에 수차례 화재가 발생해도 이곳에는 소방차 한 대가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이 일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2021년부터 신통기획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하지만 흔한 재개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투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토지 면적 6㎡를 초과하면 사실상 거래가 어렵기 때문이다. 창신 이수아파트 인근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금은 매물도 없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면서 “경계선 바로 접해 있는 매물도 평당(3.3㎡당) 3500만~4000만원 정도 한다”고 했다.

오랜 시간 사업이 오락가락하면서 이제는 주민들 사이의 이견도 적지 않다. 이미 3~4층 규모의 빌라에 세를 놓고 있거나 대로변에 점포를 가진 주민들은 재개발 공사로 이주가 시작된다면 월세를 받을 수 없고, 이후에도 아파트 한 채를 받는 것은 손해라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창신동 인근의 또 다른 중개업자는 “그래도 이번에는 재개발로 향하는 분위기이기는 하다”면서 “대로변의 점포들은 구역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고 했다.

Plus Point

1년 반 만에 창신·숭인 다시 찾은 오세훈 “사업 속도 내겠다”

오세훈(왼쪽) 서울시장이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신속통합기획구역 일대를 방문해 지역 주민의 애로 사항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오세훈(왼쪽) 서울시장이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신속통합기획구역 일대를 방문해 지역 주민의 애로 사항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시도 속도를 내 정비해서 시민 여러분들의 안전과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 드리도록 노력하겠다.”

7월 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23번지, 숭인동 56번지를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일대 주민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 빠른 사업을 약속했다. 이날은 서울시가 창신·숭인의 신속통합개발안을 확정지은 날이었다. 십여 년을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사업이 정체되면서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남아 있던 창신·숭인의 개발안이 결정된 것이다. 

이 지역은 신속통합기획을 통해서 기존 지형을 활용해 구릉지 특화 도심주거단지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규모는 10.5만㎡, 2000가구 내외다. 먼저 주거 환경을 저해하는 저이용·방치시설의 재배치·복합화로 공공시설의 활용성과 용량을 높이면서 효율적 토지이용을 도모한다. 공공시설의 고도화는 물론 주택용지를 확대하는 효과로 주거 환경 정비와 함께 사업 여건도 개선한다는 게 서울시의 목표다.

또 창신역에서 채석장전망대와 숭인근린공원까지 연결하면서도 최대 표고차(높낮이) 70m에 달하는 구릉지형에 순응하는 입체보행로를 조성해 인근 지하철역과의 보행 접근성을 높였다. 그간 단절된 창신-숭인 지역 연계성을 강화하고 노인·어린이 등 보행약자의 이동 편의성 향상을 위해 단지 내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경사로 등 수직 동선도 마련해 경사진 구릉지를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지형, 주변 특성을 고려한 영역별 맞춤 생활공간도 조성했다. 단지 안팎으로의 보행 동선과 연계해 데크 하부에 주민공동시설을 만드는 한편, 주변 공원과 연계한 단지 내 산책마당을 조성하는 등 주민 생활편의성을 높였다.

아울러 구릉지를 따라 건축물이 겹겹이 배치되는 중첩경관 등 서울성곽·낙산 등 주변과 어우러져 단지 전체가 구릉지의 새로운 도시경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구릉지 및 주변을 고려해 창신역 일대(고층), 청룡사 등 문화재·학교 주변(저층), 경사지(중저층) 등 영역별 맞춤형 높이 계획도 수립했다. 시는 이번에 수립한 창신·숭인 일대 신속통합기획에 따라 정비계획입안 절차를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정비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오세훈 시장은 “주민 여러분들이 총의를 모아주셔서 (재개발에) 속도가 붙었다”면서 “신속통합기획을 완성하는 단계에서 이제부터는 주민 여러분들의 단합된 의지가 필요한 단계”라고 했다. 이어 “(조합에서) 어떻게 밑그림을 그려서 구청을 통해 서울시에 요청을 해오느냐에 따라서 사업의 진척 속도가 달라진다. 총의를 모아 안을 빨리 내달라”고 했다. 

오 시장은 이날 방문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방치되고 주거와 삶의 질이 함께 무너진 현장”이라면서 “지난 암흑의 10년 동안 진보라고 자처하는 세력은 토목을 죄악시하고 사람이 먼저라고 듣기 좋은 구호를 외쳤지만 정작 이곳에서 사람 존중은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재개발이 약자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재개발의 정체(停滯)가 약자들을 힘들게 한다”면서 “주거 정책, 도시 공간 정책에 더 이상 이념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