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관련 정부 TF(태스크포스)가 만들어진 지 거의 6년 만인 6월 30일, 가상자산 시장의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정안이 드디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법에는 고객 예치금 및 가상자산을 가상자산거래소의 자산과 분리 보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은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조항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주식 같은 금융투자상품의 경우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이나 시세조종, 부정 거래 등의 불공정거래행위가 금지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을 받는다. 얼마 전 발생한 라덕연 사태와 바른투자연구소 운영자 강기혁씨의 주가조작 사태는 당연히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을 제외하고는 제도적 규제 장치가 전무한 상태였다. 법이 있어도 주가조작 사태가 버젓이 발생하는데, 법이 없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가상자산의 가격을 조작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을 것이다.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의 주가조작 사건이 서울남부지검에서 조사 중인데, 이처럼 자본시장의 사기꾼들이 가상자산거래소와 가깝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파다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핵심 단어인 불공정거래행위라는 용어가 어렵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가상자산을 거래소에서 거래할 때 사기를 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동안은 가상자산거래소 이용자들이 주문창을 통해서 보고 있는 호가창에 올라 와있는 호가가 진짜인지, 체결되는 거래가 진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주문창에서 보는 정보가 시세조종 세력이 만들어 놓은 거래량과 가격인지를 확인할 수 없이 깜깜이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황당한 현실이었다. 따라서 이번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 유통시장의 사기 행위를 규율하기 위한 최소한의 내용만 담고 있는 법이다.
이번 법안이 발의된 것이 2022년 10월 말이었는데, 본회의에서 통과되기까지도 8개월이나 걸렸다. 여야 정치적 대립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때문에 오래 걸렸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기간 글로벌 금융시장은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40년 만에 가장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얼어붙었고, 마찬가지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시가총액은 약 70% 증발하였다. 얼어붙은 투자 심리와 가상자산에 대해 줄어든 거래량, 코인 투자와 연관된 강남 납치살인사건, 김남국 의원의 비상식적인 코인 투자 등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법이 통과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번 제정안의 통과는 유럽연합(EU) 의회의 가상자산포괄규제법안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의 통과(2023년 4월)와도 맞물리면서 국내 규제가 글로벌 규제 도입 속도와도 발맞추어 가게 되었다. 물론 국내의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입법 방향이 단계적 입법 형태(1단계 법 도입 후 2단계 법 도입)를 취한다는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번에 통과된 1단계 법에서는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발생하는 거래행위, 즉 가상자산 유통시장에 관한 내용을 규율한다. 2단계로 추진하는 전체 법안에서는 발행부터 공시, 사업자의 영업 규제, 협회 관련 사항 등을 담는다는 계획으로 판단된다. 사기를 치지 말라는 내용만 담은 1단계 법안의 통과도 쉽지 않았는데, 2단계에서 담으려는 모든 내용을 담으려고 시간을 끌었다면 가상자산 이용자들의 피해는 지금도 매일매일 지속되고 있었을 것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2009년 비트코인의 등장, 2017년 ICO(Initial Coin Offering·암호화폐 공개) 시장의 활황, 2021년 코로나19로 인한 양적완화로 인한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으로 세 번의 사이클을 경험했다. 흥미롭게도 글로벌 규제 당국에서 가상자산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뇌리에 깊이 새긴 사건이 2022년 5월 내국인 권도형이 만든 테라라고 불리는 스테이블코인의 붕괴다. 해외의 경우 금융기관들이 가상자산과 관련된 업무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와 달리 가상자산 시장의 붕괴가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험으로 전이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저명 학자들이 가상자산 시장의 위험이 금융시장으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 중인 점도 우리가 반드시 참고할 부분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기관들의 가상자산 업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상자산 투자 비중을 갖고 있는 점은 부담이다.
우리나라 가상자산 업계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많은 투자 피해자를 양산시킨 데 따른 책임감을 느끼길 바란다. 현재 거래량 2위로 알려진 빗썸은 주가조작과 지배구조 관련 문제로 수사를 받고 있다. 거래량 3위로 알려진 코인원의 경우도 상장 수수료를 받고 상장시켜 준 후 시세조종세력을 방치한 직원이 구속됐다. 이 직원을 업무방해행위로 처리하면서 코인원에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행동한다. 거래량 1위인 업비트의 경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본인들의 지위가 독점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거래량 5위의 고팍스의 경우, FTX 파산의 여파로 고파이에 묶인 투자자들의 자금 566억원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코인거래소들은 실명계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지난 5년간 가상자산 업계가 사회에 미친 해로운 외부 효과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정운찬 전 총리는 ‘나의 화폐경제학공부’라는 특별강연에서 “돈 넣고 돈 먹기 경제, 카지노 경제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좀먹는 마약 같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성실하게 일해서 번 만큼 소비하고 미래를 위해 한 푼 두 푼 저축하라’는 당연한 경제활동 원리가 아니라 인생 실패자의 넋두리가 되었다고도 했는데, 통감하는 바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가상자산거래소들은 법이 시행되기까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히 했었어야 할 자기 거래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사기 행위를 모니터링할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이제는 거래소의 반성의 시간이 시작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