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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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과 구리의 위기

1990~2000년대 국내에서는 10원짜리 동전(銅錢)이 화폐가 아니라 고물로 유통되거나 녹여서 구리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 10원권의 소재 가치가 액면가치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학 교과서에서 전제하고 있는 합리적 경제인(Homo Economicus)이라면 누구나 10원권을 화폐로 유통하기보다는 이를 녹여서 구리로 파는 것이 이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은행이 자사의 설립 목적인 물가안정을 제대로 달성했더라면 10원권의 구매력이 유지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10원권을 녹여서 구리로 파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로 전전긍긍하던 한국은행은 자사의 정책 실패는 논외로 하고 주화 용해 행위를 처벌하는 입법을 추진했다. 2016년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서 ‘주화를 훼손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비트코인, 가격일까 환율일까

17세기 영국은 복본위제, 즉 ‘이중 금속화폐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은화는 소액권, 금화는 고액권으로 사용됐는데, 은화와 금화는 사전에 정해진 환율에 따라 교환할 수 있었다. 원래 환율이란 화폐 간 교환 비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국가 내에 여러 가지 종류의 화폐가 존재하면 대내 환율, 즉 내국 화폐 간의 교환 비율이 존재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국가가 한 종류의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외 환율, 즉 자국 화폐와 타국 화폐 간의 교환 비율만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날 환율이라고 말하면 당연히 대외 환율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기존 화폐와 비트코인의 교환 비율을 가격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환율이다. 정책 당국자들이 비트코인의 화폐성을 부인하고 자산으로 분류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가격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1=₩1266.86’으로 표시하고 비트코인 가격은 ‘1=$3만226.70’으로 표시한다. 동일한 표기법 아닌가.

17세기 영국이 복본위제를 사용했다는 것은 런던 타워에 있는 왕립조폐청이 두 금속화폐의 시장 환율과 공식 환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장 환율은 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서 형성되는 환율을 의미하고, 공식 환율은 국가가 설정해서 고시하는 환율을 의미한다. 시장 환율과 공식 환율의 차이가 벌어지면 투기적인 차익 거래의 문이 열리게 된다. 수십 년 동안 은의 시장 가격이 은화의 액면가보다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자, 영국 내에서 은화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그레셤의 법칙

이 문제는 당시 영국 내에 만연했던 주화 깎아내기 관행에 의해서도 악화됐다. 사람들은 주화의 가장자리에서 소량의 귀금속을 깎아낸 후 이를 녹여서 판매했다. 따라서 시중에 남아 있는 주화는 은의 함량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원래 주화의 조각에 불과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는 그레셤의 법칙은 원래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토머스 그레셤은 유럽의 머니센터였던 앤트워프에 파견된 영국 왕실의 금융 대리인이었다. 1558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를 계기로 그레셤은 여왕에게 편지를 보낸다. “좋은 주화와 나쁜 주화는 함께 유통될 수 없습니다. 주화의 타락으로 인해 여왕님의 모든 황금이 왕국을 떠나 외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레셤의 법칙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그레셤이 아니다. 그보다 40년 전인 1519년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논문 ‘화폐 주조의 원리(Monetae cudendae ratio)’를 통해 “나쁜 주화는 좋은 주화를 유통에서 몰아낸다. 나쁜 주화를 좋은 주화로 교환하고 이것을 녹여서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22년 프로이센 의회에 직접 참여해 보고하기도 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레셤의 법칙을 그레셤-코페르니쿠스 법칙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레셤-코페르니쿠스 법칙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코페르니쿠스가 아니다. 문헌상 남아 있는 최초의 인물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였다. 그는 자신의 희곡 ‘개구리’에서 그레셤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문학적으로 풀어썼다. 

“그녀(헬라스)는 훌륭한 고대의 은과 훌륭한 최신의 금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헬라스(그리스인)가 좋은 돈만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바바리(야만인)가 나쁜 돈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좋은 돈은 모양이 예쁘고 소리가 좋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은 돈은 숨기고 나쁜 돈만 이 손 저 손 옮겨 다니게 한다. 우리는 정직한 삶과 고귀한 이름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구리를 경멸한다.”

환율 조작 반대한 존 로크

17세기 영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즉 전반적인 물가 상승 현상이 만연했다.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물가 상승이라고 설명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설명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은 상품 가격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풍선을 부풀리기 위해서는 공기 주입이 필요하듯이, 물가를 부풀리기 위해서는 화폐의 주입이 필요하다. 인플레이션은 돈이 너무 흔해져서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맞은편에는 항상 물건이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물건 가격의 상승과 동시에 화폐가치가 하락한다. 물가가 상승하면 화폐소득에 의존하는 급여 생활자가 가난해지고 상품을 보유한 자산가들이 부유해진다.

돈의 가장 큰 특징은 표면에 새겨진 액면가대로 시장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17세기 말 영국에서는 돈이 이러한 특성을 잃고 있었다. 1694년 영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따라서 정부는 새로운 형태의 은화를 발행하기로 했지만 ‘이전 수준의 함량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더 낮은 수준으로 바꾸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후자의 대안은 중상주의자들이 선호했다. 이들은 주화의 낮은 가치가 낮은 대외 환율을 형성하고, 자국 상품의 상대적 생산 비용을 줄임으로써 영국 상품의 수출을 늘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논쟁의 반대편에는 철학자 존 로크가 우뚝 서 있었다. 로크는 국가의 역할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고, 재산권은 국민의 핵심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아무것도 아니다. 농부가 그 사과를 따냄으로써 비로소 가치가 탄생한다”고 말해 재산권에 자연권적 지위를 부여했다. 로크에게 화폐는 이런 가치를 구체화하는 방법이자 재산권을 보장하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그는 ‘국가가 경제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중상주의적 사고에 크게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