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은 언제나 변질이 골칫거리였다. 술의 보존성과 저장성을 높이려는 인간의 노력은 원래 술과는 다른 장르의 술을 만들어 냈다. 우리에게는 과하주(過夏酒)가 있다. 봄여름 사이에 곡류로 술을 빚어 발효시킨 다음 거기에 소주를 넣어 저장성을 높였다. 여름에도 상하지 않는, 그래서 여름을 건널 수 있다 하여 과하주다. 16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이 프랑스 코냑 지방의 와인이 항해 중에 변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와인을 아예 증류한 것이 브랜디다.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원래의 와인에 와인을 증류한 주정을 더하는 방식도 있다. 보존성이 좋은 주정 강화 와인의 대표는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이다. 포트 와인은 포르투갈 북부 지방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항구인 ‘오포르투(Oporto·영어로는 the port)’, 지금의 ‘포르투’에서 선적했다고 해서 ‘포트(Porto)’가 이름에 붙게 됐다. 17세기 후반 영국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영어 발음인 포트 와인으로 불리고 있다. 포르투갈은 1990년대 들어서 포르투갈산 포트 와인의 명칭을 포르투로 못 박았다. ‘지리적 표시제(Geographical Indication)’의 강화였다.
지리적 표시제는 특정 상품의 품질, 특징 등이 본질적으로 그 상품의 원산지로 인해 생겼을 경우 그 원산지 이름을 상표권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지식재산권협정(TRIPs)을 채택하면서 생겨났다. 이 협정에는 ‘원산지를 오인하게 할 수 있는 상표는 각국이 등록을 거부하거나 무효로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리적 표시제가 강화되면서 ‘샴페인’이라고 통칭했던 발포성 와인도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영어식으로 읽으면 샴페인) 지역의 것만 샴페인으로 부른다. 프랑스는 지리적 표시제에 엄격하다. 제조법을 그대로 따르더라도 샹파뉴에서 만든 것이 아니면 ‘크레망’이라 부른다. 제조법도 제조 지역도 다르면 ‘뱅 무소’라고 부르게 한다. 한국에서는 2000년에 지리적 표시제가 전면 실시됐다. 2002년 보성 녹차가 지리적 표시 1호로 등록됐으며, 순창 고추장, 횡성 한우고기, 단양 마늘, 해남 고구마 등 100여 개 품목이 등록돼 있다.
스위스의 지독한 브랜드 관리, 스위스니스
지리적 표시제를 훌쩍 뛰어넘는 강력한 브랜드 관리를 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스위스다. 이미 스위스는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를 국가 인증 브랜드처럼 쓰고 있었다. 스위스 메이드는 스위스에서 만든 특정 제품에만 붙일 수 있는 인증 마크와도 같다. 이 라벨의 자격을 갖추려면, 생산 비용의 60%가 스위스에서 발생해야 하고 제조 공정의 50% 이상이 스위스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 그래서 ‘메이드 인 스위스(Made in Switzerland)’와는 다르다. ‘메이드 인 스위스’는 스위스에서 조립된 제품도 포괄한다. 대부분 부품이 다른 곳에서 제조된 다음 조립을 위해 스위스로 수입된 제품에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스위스 메이드 제품의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시계다. 스위스가 아닌 곳에서 제조한 후 스위스에서 조립한 시계라면 ‘메이드 인 스위스’는 붙일 수 있어도 ‘스위스 메이드’를 붙이지는 못한다. 원산지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 것이다.
올해 3월, 삼각기둥 모양 초콜릿으로 유명한 ‘토블론(Toblerone)’이 심볼 마크인 마터호른(Matterhorn)산의 이미지를 앞으로는 쓰지 못하게 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토블론은 1908년 스위스의 베른(Berne)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베른의 마터호른산을 브랜드 상징으로 사용해왔다. 지극히 스위스적인 브랜드인 토블론이 마터호른산을 상징으로 못 쓰게 된 것은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2023년 말부터 생산 물량의 일부를 스위스가 아닌 슬로바키아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하게 되면서 생겨난 변화다. 제조사인 몬데레즈(Mondelez)는 현재 쓰고 있는 마터호른산 이미지를 일반적인 알프스 이미지로 바꾼다고 밝혔다. 포장지에 있는 문구도 바뀐다. 그동안 썼던 ‘스위스산(of Switzerland)’이라는 문구 대신 ‘스위스에서 설립된(established in Switzerland)’이라는 문구가 들어가게 된다.
이는 2017년 도입된 ‘스위스니스(Swissness)’ 법안 때문이다. 스위스니스는 ‘스위스다움’이란 말이다. 제품 원산지를 스위스로 표기해서 마케팅 효과를 얻고 싶으면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라고 요구하는 브랜드 관리 정책이다. 이를 어기면 스위스 국기는 물론 스위스를 상징하는 지표조차 제품에 사용할 수 없다. 식품의 경우 원재료 80%를 스위스 내에서 조달해야 하고, 주요 가공 과정 또한 스위스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스위스 상징물을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스위스니스 법안은 제품 포장, 디자인, 홍보 문구 등 마케팅 용도로 스위스산임을 표기하거나 스위스 국기를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스위스 메이드나 스위스니스 모두 스위스라는 국가 브랜드가 이미 강력한 자산 가치를 구축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시에 이토록 지독하게 관리하기에 강력한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것도 맞다. 스위스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山’을 비주얼 모티브로 삼은 브랜드

파타고니아
전설적인 등반가, 서퍼, 환경 운동가인 이본 시나드(Yvon Chouinard)는 1973년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설립하면서 본인이 가장 아끼는 아르헨티나의 산, 피츠로이(Cerro Fitz Roy) 지형을 형상화해 파타고니아 로고를 만들었다. 이 로고는 클라이밍, 서핑 등 카테고리에 따라 물고기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쿠어스
쿠어스는 미국 콜로라도주(州) 골든 지역이 원산지인 맥주다. 두 개의 봉우리가 겹쳐 있는 산의 모습이 디자인 모티브다. 이 산은 콜로라도주 텔루라이드 근처에 있는 윌슨 피크(Wilson Peak)를 나타낸 것인데, 이곳은 쿠어스 브루잉 컴퍼니(Coors Brewing Company)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패키지 디자인은 눈으로 덮인 산을 배치하면서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묘사한다.
AIA생명
‘히말라야산맥처럼 영원한’이란 이전의 슬로건처럼 언제나 고객 곁에 머무르며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함께 산맥에 포함된 수많은 최고봉처럼 시장에서 정상을 차지하겠다는 의지 역시 담고 있다. 에베레스트산을 포함한 히말라야를 모티브로 한 로고다.
에비앙
워드마크 위에 산봉우리가 놓여 있는 로고 형태다. 스위스 제네바 호수의 남쪽 해안에 있고, 알프스산맥으로 유명한 에비앙 원산지 ‘에비앙 레 벵(Evian-les-Bains)’의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스페이스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5센트 동전을 발행하면서 뒷면에 존 뮤어(John Muir)와 하프돔(Half Dome)을 새겨 넣었다. 존 뮤어는 국립공원의 아버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환경 보호론자다. 환경 보호 단체 시에라 클럽을 만들고 요세미티 등을 국립공원으로 지정받게 한 사람이다. 미국 51개 주가 각자 가장 내세우고 싶은 주의 상징과 자랑거리를 담아 만드는 주별 주화에서 캘리포니아주는 요세미티를 선택했다.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노스페이스 로고 역시 요세미티의 하프돔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프돔은 그 독특한 모습으로 요세미티의 상징이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로고는 ‘웅장한 산’이라고 흔히 불리는 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파라마운트를 함께 세운 공동 제작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유타의 산, 벤 로몬드(Ben Lomond)에서 영감받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