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버킨과 버킨 백. 사진 제인버킨데일리 인스타그램
제인 버킨과 버킨 백. 사진 제인버킨데일리 인스타그램

‘고마워요, 제인 버킨(Merci, Jane Birkin)’ ‘제인 영원히(Jane Forever)’. 제인 버킨의 장례식장 앞에 몰려든 수많은 추모객이 들고 있는 배너에 쓰인 문구다. 장례식에는 제인 버킨의 두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 루 드와이옹 외에 배우 카트린 드뇌브, 가수 바네사 파라디 등 여러 유명 인사가 참석했는데, 그중에는 프랑스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도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제인 버킨을 ‘프랑스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애도했다. 세계가 사랑한 배우, 가수, 모델이며 세기의 스타일 아이콘인 제인 버킨. 그녀가 모두에게 작별을 고한 날은 7월 16일(현지시각)이었고, 나이는 76세였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어머니, 평범하고 이성적이지 않아서 감사해요.” 배우이자 가수인 제인 버킨의 딸 루 드와이옹이 남긴 애도사는 제인 버킨의 삶과 스타일을 함축한다. 제인 버킨은 언제나 독특했다. 버킨과 함께 레르 드 리앙 향수를 론칭했던 밀러 해리스는 ‘단지 독특한 정도가 아니라 숨 막히도록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제인 버킨의 영혼은 날개를 단 듯 자유로웠고, 그녀의 패션은 예측불허였다. 애써 꾸미지 않았고, 노출에 구애받지 않았고, 유명 브랜드에 속박되지 않았다. 그런 제인 버킨의 자유로운 패션 영혼은 꾸미지 않은 듯한 흐트러짐이 근사한 ‘프렌치 시크’를 탄생시키고 완성시켰다.
1 화이트 티 또는 셔츠, 청바지, 컨버스 스니커즈, 빅 뱅의 긴머리는 제인 버킨의 아이코닉 스타일이다. 
2 제인 버킨 룩의 상징이 된 라탄 백. 사진 속 아기가 샤를로트 갱스부르다. 사진 제인버킨데일리 인스타그램
1 화이트 티 또는 셔츠, 청바지, 컨버스 스니커즈, 빅 뱅의 긴머리는 제인 버킨의 아이코닉 스타일이다. 2 제인 버킨 룩의 상징이 된 라탄 백. 사진 속 아기가 샤를로트 갱스부르다. 사진 제인버킨데일리 인스타그램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 제인 버킨

놀라운 점은 제인 버킨이 영국 태생이라는 것이다. 1968년 프랑스로 건너와 영화 ‘슬로건’의 오디션을 볼 때까지도 버킨은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그녀의 프랑스어 발음이 완벽하지 못했음에도 프랑스인은 버킨만의 신선한 매력에 반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운명의 연인 세르주 갱스부르를 만났다. 18세란 나이 차이를 잊고 불같은 사랑을 했으며 12년간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며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낳았다. 제인 버킨에겐 세 딸이 있는데, 영화 ‘007’의 메인 테마 작곡가 존 배리와 결혼해 낳은 케이트 배리(2013년 아파트 난간에서 추락사했다), 세르주 갱스부르와 낳은 샤를로트 갱스부르, 이후 영화감독 자크 드와이옹에게서 낳은 루 드와이옹이다.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루 드와이옹은 모두 엄마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가수이자 배우가 됐다. 또한 제인 버킨의 스타일 헤리티지를 잇는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이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제인 바이 샤를로트(Jane by Charlotte)’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버킨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74세 이후 제인 버킨의 삶과 스타일을 세계적인 ‘잇걸(It girl)’인 딸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제인 바이 샤를로트’는 2021년 칸 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다. 인상적인 건 두 모녀의 칸 영화제 룩이다. 버킨은 버튼을 풀어 헤친 헐렁한 화이트 버튼 업 셔츠에 통이 넓은 빈티지 청바지를 입고 검정 컨버스 스니커즈를 신었으며, 갱스부르는 생로랑의 데님 재킷과 팬츠를 입고 갈색 벨트로 포인트를 주었다. 샤넬, 발렌시아가, 디올 등 전 세계의 화려한 쿠튀르 드레스들의 경연장이 되는 칸 영화제에서 두 모녀가 보여준 캐주얼 레드카펫 룩은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전 세계 주요 패션 미디어들은 ‘세기의 모녀 스타일 아이콘다운 그리고 지극히 제인 버킨적인 선택이었으며, 언제나처럼 근사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제인 버킨은 느슨하게 넥타이를 맨 슈트를 입거나 평범한 버튼 업 셔츠, 청바지, 스니커즈 조합만으로도 늘 멋스러웠다. 또한 브래지어를 거의 입지 않는데 결코 저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줬다. 2021년 칸 영화제처럼 공식 석상 룩에서도 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룩을 보여주었다. 속이 비치는 시스루(see-through) 톱에 짧은 반바지를 입거나 미니 드레스에 라탄 백을 들고 참석하기도 했다. 제인 버킨의 자유로운 패션 영혼의 심벌은 라탄 백이다. 백이라고 하지만 바구니에 가까운 디자인이다. ‘버킨 룩’의 키 아이템으로 손꼽힐 만큼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라탄 백을 들고 다녔으며, 정원 손질이나 피크닉용이었던 라탄 백을 힙한 패션 아이템으로 신분 상승시켰다. 아이러니하게 그녀의 소박한 라탄 백은 초고가의 에르메스 ‘버킨 백’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1984년 버킨은 파리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타는데 좌석 승급을 받아 앞자리에 앉게 됐다. 당시 아기 엄마였던 버킨은 라탄 백에 아기용품을 비롯해 많은 잡화를 가득 담고 다녔는데, 뚜껑이 없어 바닥에 엎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비행기 안에서 라탄 백이 엎어지며 물건이 쏟아졌다. 우연히 동승한 에르메스의 최고경영자 장 루이 뒤마는 그녀에게 포켓이 있는 백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제인 버킨은 “왜 켈리 백의 네 배 크기로 열려 있는 가방을 만들지 않나요?”라고 반문했고, 장 루이 뒤마는 즉석에서 멀미용 봉투에 20세기 초 탄생한 에르메스 최초의 백 ‘오트 아 쿠르아(Haut à Courroies)’를 변형한 스케치를 그려 보여주었다. 초고가 하이엔드 백의 첫 스케치는 비행기 멀미용 봉투에 그려졌다. 세기의 패션 아이콘 제인 버킨이 최고 명품 백의 이름이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버킨 백’ 이름의 주인공은 백과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버킨 백의 소재가 되는 악어가죽을 위해 악어가 잔인하게 도살된다는 사실을 알고, 백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 청구했던 유명한 에피소드도 있다. 또한 버킨은 버킨 백을 대하는 태도도 남달랐다. 버킨 백이 무겁고 가죽이 유연하지 않다면서 두 발로 밟고 양손으로 짓눌러서 일부러 주름을 내, 들고 다녔다. 그리고 손잡이와 모서리 가죽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낡은 대로 버킨 백을 들고 다녔다.

에르메스가 제인 버킨의 이름을 사용하는 로열티로 제공되는 연간 4만달러(약 5100만원)는 그녀가 원하는 단체에 기부되었다. 또한 제인 버킨이 소유한 버킨 백은 5개인데 자선 경매를 통해 기부됐고, 마지막에는 단 하나의 버킨 백도 소유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제인 버킨

프렌치 시크와 패션 아이콘으로 제인 버킨은 가장 화려할 거 같지만, 화려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해 왔다. 부와 명성을 쌓고 호사스럽게 과시하기보다는 그녀가 좋아하는 대로 노래하고 입으며 자유롭게 살았다. 다큐멘터리 필름 ‘제인 바이 샤를로트’에서 완벽하게 닮은 두 모녀의 일상 패션은 대충 입은 듯 멋스러운 프렌치 시크의 정수를 보여준다.

블랙 브이넥 니트와 셔츠, 캐주얼 팬츠를 입은 채 늘어진 회색 니트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딸 갱스부르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빗지 않은 듯 부스스한 머릿결, 노 메이크업 그리고 나이에 따라 늘어나는 주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추지 않는 70대의 버킨과 50대의 갱스부르. 그렇게 제인 버킨의 스타일은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정의되며,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은 딸들에게 유산이 됐다. 제인 버킨은 떠났지만, 그녀의 딸들을 통해 버킨 스타일을 더 오래 추억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