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더럼대 정치학 사진 나이트프랭크


나이트프랭크가 정의하는 ‘부자’의 기준은.
“나이트프랭크가 정의하는 부자는 자산 규모에 따라 크게 고액 자산가(HNWI·High Net Worth Individuals)와 초고액 자산가(UHNWI·Ultra High Net Worth Individuals)로 나뉜다. 고액 자산가는 순자산 100만달러(약 12억9000만원) 이상 보유자들, 초고액 자산가의 경우 순자산 3000만달러(약 386억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지난해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가 전년 대비 줄었다던데. 이유가 뭔가.
“지난해 초고액 자산가 인구는 전년 대비 3.8% 감소했고, 같은 기간 이들이 보유한 총자산 역시 10%가량 줄었다. 다만, 지역별로는 차이가 나타났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유럽의 초고액 자산가 인구가 8.5% 줄었고, 아시아 지역에서도 6.5% 감소했다. 반면, 중동 지역은 16.9% 급성장세를 보였으며, 아프리카가 6.3% 증가했고, 호주와 미주 지역 초고액 자산가 인구는 각각 0.7%, 0.2% 소폭이나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 인구가 줄어든 주요인은 주식, 채권시장의 부진이다. 초고액 자산가 대부분이 주식과 채권에 총자산의 5분의 2를 투자했지만, 지난해 월스트리트의 전통적 포트폴리오인 ‘주식과 채권 60 대 40’ 전략은 1930년대 이후 최악의 성과를 냈다. 코로나19 후폭풍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이에 따라 더 가팔라진 인플레이션, 주요국 금리 인상 등 여파였다.”
초고액 자산가가 오히려 증가한 지역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부동산과 럭셔리 투자 시장의 호황이 뒷받침된 결과로 분석된다. 나이트프랭크 조사 결과, 지난해 전 세계 주요 주거 시장 100곳의 (부동산) 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5.2% 상승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44.2% 상승률로 전년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미국 애스펀(27.6%),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25%), 일본 도쿄(22.8%), 미국 마이애미(21.6%)가 뒤를 이었다. 미술품, 자동차, 보석, 시계, 명품 가방, 와인 등 럭셔리 수집품 가격을 추적하는 럭셔리 투자 지수(Luxury Investment Index)는 지난해 16% 상승했다. 미술품과 클래식 자동차 지수가 각각 29%, 25% 오르며 성장세를 이끌었고, 시계(18%), 핸드백(15%), 와인(10%), 보석(6%), 가구(4%), 희귀 위스키(3%) 등도 상승세를 보였다.”
팬데믹 이후 세계 부동산 시장 동향은.
“나이트프랭크 주택 가격 지수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는 가운데 전 세계 집값은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조사한 올해 1분기 56개국의 연평균 집값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3.6%에 머물며 전 분기(5.7%)보다 낮아졌다. 이는 2015년 3분기 이후 가장 느린 상승세다. 국가별로는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튀르키예(옛 터키·132.8%) 집값이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으며 한국(-15.7%)은 조사 대상국 중 집값 하락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 분기 대비 분기별 성장률은 개선됐다. 2022년 4분기 세계 집값은 전기 대비 0.6% 하락했지만 2023년 1분기에는 1.5%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주택 시장 개선보다는 공급 부족, 투자 제한 정책 등의 영향인 것으로 분석된다.”
나이트프랭크는 매년 부자들의 자산 동향을 조사하고 있는데. 최근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궁금하다.
“지난해 12월 조사 기준 초고액 자산가들은 자산의 32%를 주거용 부동산에, 나머지 26%와 21%의 자금을 각각 주식과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채권(17%), 사모펀드·벤처캐피털(9%), 상업용 부동산 펀드(8%), 리츠(5%), 사치품(5%), 금(3%), 가상자산(2%) 등도 포트폴리오에 포함됐다.”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았지만, 부자의 포트폴리오에서는 부동산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구체적인 투자 대상은.
“작년 하반기는 비싼 금리와 경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기관 투자자들의 부동산 투자가 전년 대비 28% 줄었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초고액 자산가)의 부동산 투자는 전년 대비 8% 감소에 그쳤고, 이들은 전 세계 부동산 투자 총액(약 1조1200억달러)의 41%를 차지했다. 투자 대상은 주거용(43%), 사무실(18%), 물류 시설(15%)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해외 부동산 투자 시장에서는 런던과 싱가포르가 주목받았다.”
이런 투자 성향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나.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부자들이 주목하는 부동산 투자처는.
“(부동산) 투자 비중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체 조사 결과 올해 초고액 자산가의 약 3분의 1이 인플레이션 헤지 및 다각화를 위해 부동산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초고액 자산가 19%는 앞으로 1년간 상업용 부동산에 직접 투자할 계획이며, 13%는 간접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최선호 투자 대상으로는 헬스케어 관련 부동산(35%)을 꼽았고, 물류, 오피스, 주거용이 뒤를 이었다. 다만 금리 인상과 지정학적 이슈, 환율 변동 등은 주의해야 할 우려 사항으로 꼽혔다.
올해 주거용 부동산을 구매할 계획인 초고액 자산가는 전년보다 줄었지만, 현금 구매 비중(49%)은 높게 나타나 가격 상승세를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나이트프랭크는 올해 전 세계 25개 대도시의 초고가 주택 가격이 평균 2%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특히 UAE 두바이가 14% 상승률로 예측치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두바이에서 1000만달러(약 129억원) 이상의 초고가 주택 거래가 92건 발생했다. 두바이에서 1000만달러를 넘는 초고가 주택 거래는 5년 만에 17배 증가했다. 올 상반기 두바이에서 체결된 초고가 주택 거래 총액은 31억달러(약 3조9928억원)로 추산되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거래액(39억달러)에 가까운 수준이다. 두바이의 초고가 주택 거래가 급증한 것은 UAE 정부가 외국인 부동산 투자자에게 비자 혜택을 주는 등 부양 정책을 쓴 덕에 해외 투자자들이 몰린 가운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가해진 국제 제재를 피해 안전자산 피난처를 찾는 러시아 부유층의 두바이 유입이 급증한 결과로 분석된다.”
앞으로 전 세계 부자는 줄어들까, 늘어날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초고액 자산가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적응하면서 초고액 자산가는 다시 증가할 것이다. 다만 증가 속도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7~2022년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 인구는 약 44% 급증했는데, 앞으로 5년간은 28.5%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